쿠데타의 명분은 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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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쿠데타 #다시 갇힌 수지

미얀마가 또다시 격랑 속에 빠졌습니다. 미얀마 군부가 1일 새벽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수지(Aung San Suu Kyiㆍ75) 국가고문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을 구금하고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미얀마는 5년 전 민주진영 총선 승리로 53년 만에 군부독재의 사슬을 끊고 문민정부가 들어섰죠. 어렵고 위태롭게 궤도에 오른 문민정부는 군부가 겨눈 총구 앞에 5년 여 만에 또 위기에 처했습니다.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미얀마 쿠데타 사태를 쉽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지금 어떤 상황이야
쿠데타로 다시 권력을 잡은 군부는 문민정부의 장차관들을 대거 교체했습니다. 문민정부 장·차관 24명의 직을 박탈하고, 군사정부에서 일할 국방·외무부 11개 부처 장관을 새로 지명했죠. 또 언론도 장악했습니다. 국영TVㆍ라디오방송은 ‘기술적 문제’로 방송을 할 수 없다고 발표했고, 인터넷과 전화도 끊겼습니다.

왜 쿠데타를 일으킨 거야?
미얀마군 TV는 1일 발표한 성명에서 “선거부정에 대응해 구금조치들을 실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선거란 지난해 11월8일 치러진 총선을 말합니다. 당시 선거에서 아웅산수지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전체 선출 의석 476석 가운데 396석(83.2%)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군부는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불복해왔죠.(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린데, ‘트’자가 생각나)

부정선거라는 근거가 뭐야?
유권자 명부 860만 명가량이 실제와 차이가 있다는 주장인데요. 전체 유권자(3700만 명)의 약 23%에 해당합니다. 선거 결과가 뒤바뀔 수 있는 숫자죠. 군부는 선거 부정을 명분으로 앞세우고 있지만 근본 원인은 뿌리가 깊습니다. 외신들은 불완전한 민주주의로 인한 예고된 사태였다고 분석하고있습니다.

불완전한 민주주의라니?
지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정부는 사실 2기 문민정권입니다. 앞서 지난 2015년 총선에서도 대승을 거둬 53년 만에 군부독재를 종식한데 이어 또 국민 지지를 얻었죠. 정권을 재창출했지만 군부정권이 2008년 만든 신헌법안의 독소조항 때문에 문민정부와 군부는 불편한 동거를 이어왔죠.

어떤 독소조항이 있는데?
신헌법은 군부에 상ㆍ하원 의석의 25%가 할당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방부·내무부·국경경비대 등 주요 3개 부처 장관 지명권도 군부에 주어졌죠. 치안 및 안보, 국방 관련 등 실질적인 권력은 여전히 군부가 장악하고 있죠. 여기에 비상사태 때는 군부가 정권을 넘겨받을 수 있는 권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군부가 선거부정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앞세워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도 이를 악용한 것입니다.

문민정부가 그동안 왜 헌법을 개정안한거야?
헌법 개정시엔 필요한 찬성표가 75%가 되어야 하는데요. 의회 의석의 25%를 군부가 쥐고 있으니 개헌은 원천봉쇄될 수밖에 없죠.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원인중 하나가 신헌법 개헌이 추진되어 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무슨 소리야?
수지 고문은 지난 총선에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군부에 할당된 의석수를 15년에 걸쳐 줄인다는 계획이 담긴 개헌안이었죠. 이런 가운데 NLD가 작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문민정부 2기가 탄생하자 군부의 위기의식이 커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밥그릇 뺏으려니 총든 군대)

맞다, 수지 고문은 괜찮아?
감금된 수지 고문은 성명을 통해 국민에게 쿠데타를 거부하고 항의 시위에 나설 것을 촉구했죠. 이 성명은 사전에 작성된것으로…

잠깐, 수지야 수치야 수찌야 이름 표기가 여럿이던데?
좋은 질문입니다. 먼저 버마식 이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버마 이름에서는 성씨가 따로 없다고 합니다. 이름만 있고 그마저도 본인 마음대로 바꿀 수도 있죠.‘아웅산수지’ 여사의 이름에서 ‘아웅산’은 버마의 독립 운동가이자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자신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고, ‘수지’는 ‘모으다’는 뜻의 ‘수’와 ‘맑다’라는 뜻의 ‘지’를 합친 말이라고 합니다. 영국 유학 등으로 인해 성씨가 필요해서 아버지 이름에 자기 이름을 붙여서 지은 것으로 알려졌죠. 외래어 표기법 기준으로는 버마어 이름이므로 음절 단위로 끊어서 ‘아웅 산 수 치’로 표기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수치’라는 말이 한국어에서 ‘수치스럽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을 알게된 수지 고문이 수지 혹은 수찌로 바꿔달라고 요청했었다고 합니다.

아웅산이라는 단어 낮익은데?
아직 젊은 세대는 아웅산이 산의 이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씀드렸듯 아웅산은 수지 고문의 부친 이름입니다. 그런데 ‘아웅산’이라는 단어는 한국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에 남아있죠. 1983년 10월9일 미얀마에서 발생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입니다. 당시 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일행의 암살을 시도한 북한의 폭탄테러였죠. 전두환이 도착하기 전인 이날 오전 10시 30분에 폭탄이 터져 아웅산 장군의 묘소에 미리 도착해있던 서석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등 한국 정부 수행원 17명이 사망했습니다. 테러를 벌인 북한 공작원 3명중 신기철은 체포과정에서 사살되었고 2명은 붙잡혔죠. 김진수는 1984년 사형이 집행되었고, 강민철은 수사에 협조한 점을 참작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5년간 미얀마 인세인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2008년 5월 18일에 중증 간질환으로 옥사했습니다.

수지 고문에 대해 좀 더 말해줘
그녀의 75년 인생역정은 참 드라마틱합니다. 1945년 미얀마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난 그는 2살 때 부친이 암살당하자 인도와 영국에서 성장했습니다.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하고 뉴욕 유엔본부에서 일하다가 1972년 영국인 마이클 에엉리스와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죠. 주부로 살던 그녀는 1988년 4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말에 미얀마에 왔다가 인생이 뒤바뀌었습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 학생, 승려들이 군대 총칼에 죽어 가는 모습을보고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죠. 그해 8월 그녀는 50여 만 명이 운집한 양곤에서 유명한 연설로 ‘민주화의 꽃’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어떤 연설인데?
제목은 ‘공포로부터의 자유’인데요.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는 명연설입니다. 연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부패한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공포이다.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부패시키고, 권력의 채찍에 대한 공포는 거기에 복종하는 사람을 타락시킨다.”

가택 연금도 당하지 않았어?
귀국한 이듬해인 1989년부터 15년간 그녀는 군정에 의해 가택연금돼 창살없는 감옥에 갇혔죠. 1990년 그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가 압승을 거뒀지만 군부는 정권이양을 거부했습니다. 1991년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에 선정됐지만 가택연금상태라 남편과 두 아들이 대신 수상했습니다. 수치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직접 평화상 수락연설을 한 건 21년 뒤인 2012년입니다. 1995년 처음 석방됐지만 여러 차례 석방과 가택연금을 오간 끝에 15년만인 2010년 온전한 자유의 몸이 됐죠. 그 사이 국제사회와 각국은 수많은 인권상과 명예시민권을 그에게 안겼고, 국민들은 ‘아메이 수(어머니 수치)’라는 영예를 선사했습니다. 2015년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그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죠.

왜?
군부가 신헌법에 그녀를 콕 집어 넣은 또 다른 독소조항 때문입니다. 외국 국적의 배우자를 둔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조항입니다. 그래서 2016년 NLD의 대통령 후보인 틴초 대통령이 당선됐죠. 이후 그녀 역시 계속 비판을 받게됩니다. 헌법에도 없는 국가고문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대통령 위에 군림하면서입니다. 뿐만 아니라 수지 고문은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과 박해, 그리고 미얀마군에 의한 인종청소를 묵인 또는 비난했다는 비난도 받고 있죠. 여러 도시들이 그의 명예시민 자격을 철회했는데요. 한국의 광주시 역시 광주인권상을 철회했죠. 하지만 그녀가 만약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더라면 훨씬 빨리 쿠데타가 일어났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이번 쿠데타를 다른 나라들이 보고만 있진 않을텐데?
그렇습니다.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죠. 조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영국, 호주, 유럽 등 서방의 각국이 수지 고문 등의 즉각 석방을 요구하면서 규탄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시아국가들은 각 국의 입장에 따라 공식 반응이 갈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규탄해야 하는거 아닌가?
미얀마 최대 무역 파트너로 미얀마에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는 중국은 “미얀마 각측이 헌법과 법률의 틀에서 갈등을 적절히 처리하면서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고 짤막하게 답했죠.
중국의 영향력에 맞서고 있는 인도 역시 비난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철권 통치자들이 이끄는 태국, 캄보디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도 미얀마 국내문제라면서 간섭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죠. 자국의 이익 앞에서 민주주의는 ‘대의’가 아닌 모양입니다.

미얀마 국민들만 불쌍하네
하루아침에 정권이 뒤바뀌면서 미얀마는 혼돈에 휩싸였죠. 양곤 시청 청사 바깥에는 군인들이 배치됐고 시민들은 시장으로 달려가 쌀, 컵라면, 기름 등을 사재기하고 있습니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는 돈을 뽑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고 은행들은 영업을 일시 중단했습니다. 미얀마 내 모든 여객기 운항도 중단됐죠. 양곤 국제공항이 5월까지 폐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참 버마야 미얀마야? 헛갈려
공식 호칭은 아직도 뜨거운 감자입니다. 1988년 미얀마로 개칭하기 전에는 ‘버마(Burma)’라고 불렀습니다. 위의 왼쪽사진 국기가 버마 연방시절이고, 오른쪽이 현재 국기입니다. ‘버마’는 미얀마에서 가장 많은 민족인 버마족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버마족이 약 68%에 달하지만 무려 135개나 되는 소수민족이 함께 살고 있죠. 그래서 여러 민족을 아우른다는 의미로 미얀마 연방 공화국으로 바꿨습니다. 국가명을 변경했는데도 미국에서는 여전히 버마로 부릅니다.

왜? 
군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제사회 여론 때문입니다. 미국 등 여러 나라가 미얀마는 군정부가 임의로 개칭한 국호라 군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버마를 고수하고 있죠. 그런데 따지고 보면 버마와 미얀마 중 어느 쪽이 옳다고 단언하기가 어렵습니다. 원래 버마 이전 이름이 미얀마였는데, 영국이 식민 지배를 하면서 버마족의 이름을 따와 버마라고 바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미얀마→버마→미얀마로 돌아온 것이죠. 또 미얀마의 어원은 버마족에서 기원합니다. ‘버마’든 ‘미얀마’든 버마족을 지칭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군부는 일단 1년간 비상사태를 선언했습니다.(정해진 수순이잖아 말이 1년이지 1년만 해먹겠어) 1년이 지나면 새로운 총선을 실시해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군부가 계엄령 등 강력한 압제로 여론과 민의를 막을 경우 새 총선이 민주적으로 치러지기 어렵죠. 국민들은 시위로 들고 일어설 것이고 군부는 나라 안정을 핑계로 다시 무력을 사용해 탄압하겠죠. 이미 태국 등 세계 각국으로 이민을 간 미얀마 국민들은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국제사회가 개입하면 더 큰 희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 난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