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인터뷰, 아무말 대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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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인터뷰 #대참사 #해부

이번 주 내내 주류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 인터넷매체 액시오스(Axios) 인터뷰 때문에 들썩거렸습니다. 
3일 HBO 유튜브 채널에 게재된 37분짜리 인터뷰 동영상 의 조회 수는 1100만 회를 넘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 오갔기에 이렇게나 흥행이 된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트럼프 대통령이 논란의 발언들을 쏟아냈기 때문입니다. 
조너선 스완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이 아니거나 호도한(misleading) 답변이 최소 17건입니다.
인터뷰는 반트럼프 성향 언론들에겐 최고의 먹잇감이었습니다. 
CNN은 “너무 수치스럽다(shameful)”, 허핑턴포스트는 “만개한 미친 짓(Full-Blown Lunacy)”이라고까지 비난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층에서도 “안 하니만 못한 인터뷰”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친트럼프 성향인 폭스뉴스는 보수 정치평론가인 가이 벤슨의 발언을 빌려 “형편없는(terrible)”, “정치적 과오(political malpractice)”라고 표현했습니다.
발언의 진위 여부보다  관심을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입니다. 사실이 아닐 수 있는 말을 하는 배경에는 정말 그렇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문제가 된 발언들을 하나하나 짚어드리겠습니다.

 *문답 영어 전문 보기 

① “사람들이 죽고 있다. 사실이다. 어쩔 수 없다(It is what it is)”
아마도 이 발언이 인터뷰중 가장 문제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앞뒤 상황은 이렇습니다.


트럼프(이하 트): 현재 상황에서 코로나19은 잘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완(이하 스): 어떻게요? 매일 1000명씩 죽고 있는데요.
트: 사람들이 죽고 있죠. 그건 사실입니다. 어쩔 수 없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통제하고 있다고 봅니다.
스: 정말 최대한 통제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하루 (평균 사망자가) 1000명인데요?
트: 우선 우린 최고로 (대처를) 잘했습니다. 우린 주지사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다 지원했는데 그들이 자기 할 일들을 못한 겁니다.


아직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전염병에 의한 사망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국가 위기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야하는 것이 대통령의 임무입니다. 보수 평론가 가이 벤슨 조차 “상황에 맞는 답변이 아니었다”고 한 이유입니다. 또, 대통령이 책임을 통감하기 보다 주지사들이 잘못한 거라고 떠넘기는 말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② “미국 코로나19 사망률이 전세계에서 가장 낮다”


트: (차트를 건내며)보세요. 미국이 최하위죠. 우리가 가장 잘 대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최고입니다.
스: 어떤 부분에서요?
트: 다시 한번 잘 보세요.
스: 아, 환자수 대비 사망률이군요. 이건 다르죠.
트: 아니, 정확히 보도해요 조나선.
스: 그러고 있습니다만…


미국이 사망률 최하위라는 발언은 사실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최하위라고 한 통계는 감염자 대비 사망률을 말합니다. 통상 전염병 치명률은 전체 인구 대비 사망자를 따집니다. 10만명당 사망자는 미국이 48.37명으로 4번째로 높습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감염자 대비 사망률도 미국이 가장 낮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감염자 최다 20개국 중 미국은 13위(3.3%)입니다.

③ “한국에서 감염이 급증하고 있다”


스: 제 말은 전체 인구 대비 사망률이 미국이 무척 안좋다는 것을 말씀드린 겁니다. 한국, 독일보다 훨씬 나쁜 상황이죠.
트: 그렇게 따지면 안되죠. 환자수 대비 사망률로 봐야죠. 
스: 예를 들어 한국을 보세요. 인구 5100만 명 중 사망자가 300여명입니다.(6일 현재 302명)
트: 그건 모르는 거죠.
스: 그럼 한국이 통계를 조작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트: 거기까진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국과 관계가 좋으니까요. 하지만 모르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한국에서 (환자가)급증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환자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발언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4월 이후 하루 사망자가 5명을 넘은 적이 없고 3월 이후 확진자수가 200명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④ “미국은 테스트를 많이 했기 때문에 환자가 많다”
이 발언은 앞뒤 맥락을 살펴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사실이 아닙니다. 전염병의 확산 여부는 테스트 결과로만 알 수 있습니다. 테스트를 해서 양성이 많이 나왔다면 오히려 실제 감염자수가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테스트와 환자수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통계가 또 있습니다. 4~6월 사이 테스트수는 크게 늘었지만 양성 환자수는 오히려 줄었습니다. 그러다 6월에 양성 환자가 다시 증가했죠.
대통령은 “사망자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7일동안의 하루 평균 사망자수를 살펴보면 사실이 아닙니다. 지난주는 1004명, 그 전주는 800명, 그 전주는 700명이었습니다.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죠.
이런 발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⑤ “많은 일이 생길 수 있다”
선거 관련 발언입니다. 대통령은 우편투표로 대선 결과가 조작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선이 치러지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달이 걸릴 수 있는데 대통령은 그동안 많은 일(lots of things)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 겁니다.
이 ‘많은 일’이라는 건 상당히 우려되는 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3일 대선에서 지더라도 대통령 권한을 11주(77일) 더 행사할 수 있습니다. 결과에 불복한다면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죠. 
CNN에 따르면 그 첫 번째는 우편투표의 부당함을 들어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현재 대법원 구성은 보수성향 대법관이 5명, 진보성향이 4명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에 유리하죠.
또 앰허스트칼리지의 로렌스 더글러스 법대교수는 가디언지 기고문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로 양 후보 지지 세력간의 무력충돌 가능성을 들었습니다. 소요 사태가 발생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폭동 진압법(Insurrection Act)’을 발효할 수 있고, 정국은 유례없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논리죠.

⑥ “그녀가 잘 지내길 바란다” 
보수 평론가들은 이 발언을 뼈아픈 실수라고들 합니다. 여기서 그녀는 제프리 엡스타인과 미성년 성범죄를 공모한 혐의로 체포된 엡스타인의 전 여자친구 길레인 맥스웰을 말합니다. 그녀의 혐의는 엡스타인을 위해 14세 소녀 등 미성년 소녀들을 모집하는 포주 역할을 한 것인데요. 맥스웰은 트럼프 대통령과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친분이 있다 해도 현재 구치소에 있는 성범죄범에게 잘 지내길 바란다는 말이 적절한 걸까요?

⑦ “역대 대통령중 에이브라함 링컨을 제외하곤 내가 흑인 커뮤니티를 위해 가장 많은 일을 했다”
이 발언에 스완 기자가 질문합니다. “정말 대통령께서는 민권법(Civil Rights Act)을 제정한 린든 존슨 전 대통령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시나요?”
트럼프 대통령은 “맞습니다”라고 재차 답합니다.
1964년 제정된 민권법은 공공장소, 고용, 노동조합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또 이듬해 린든 전 대통령은 흑인들의 자유로운 투표를 보장하는 투표법도 만들었습니다.
미국 역사의 이정표가 된 법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설사 트럼프 대통령이 한 일이 많다해도 대통령의 업적은 임기를 마친 뒤 역사가 평가합니다. 평가의 주체는 대통령 자신이 아니라 국민이죠.

이외에도 사실과 다르거나 호도될 수 있는 발언들은 더 있습니다만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인터뷰 동영상을 수십번은 본 듯)
트럼프 대통령의 사소한 실수들을 침소봉대한다는 의견도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은 아마 이런 가정을 하면 생각이 다소 달라질 수 있을 듯합니다. 만약, 한국의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처럼 답변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예를 들어 기자가 “매일 1000명씩 죽어 나갑니다.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었는데 “어쩔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고 가정해보세요. 한국의 모든 방송, 신문, 인터넷매체 가리지 않고 집중포화가 이어졌을 겁니다.(아찔한 상상)
이념 편향적 사고가 왜곡된 사실에서 눈을 가리게 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의 관점은 상식적이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대통령의 관점은 지극히 상식적이어야만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