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승자는 트럼프 며느리

2219

#트럼프 #탄핵 무죄 #형사책임은 아직

결국 이변은 없었습니다. 여러차례 뉴스레터에서 전망해드렸듯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두 번째 탄핵 심판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지난 주말인 13일 오후 상원은 최종 투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내란 선동 혐의에 대한 탄핵 표결에서 유죄 57표대 무죄 43표로 탄핵안을 부결했습니다. 이로써 하원에서 탄핵안이 발의된 지난달 11일이후 34일 만에 탄핵 2막의 드라마는 막을 내렸죠. 탄핵 심리 자체는 5일 만에 끝났는데요, 지난해 첫 탄핵 심리가 15일 걸린데 비교하면 속전속결로 끝난 셈입니다. 탄핵 심판의 무죄 선고 배경, 의미, 앞으로의 파장 등을 쉽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유죄표가 과반인데 왜 무죄라는 거야?

음…그러니까, 여러 번 설명을 드렸었는데요(뉴스레터에 관심 좀 가져주세요)
탄핵 심판에서 유죄 선고를 위해선 상원의원 100명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67표의 찬성이 필요합니다. 현재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 양분한 상태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가 되려면 공화당 쪽에서 17명이 민주당의 탄핵에 동조해야 했습니다. 이날 공화의원 7명이 찬성표를 던졌지만 탄핵안 가결에 여전히 10표가 부족했죠.

공화당 의원들이 무죄표를 던진 근거가 뭐야?

대다수가 트럼프 전 대통령은 탄핵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본 듯합니다. 헌법에 명시된 탄핵의 목적은 “대통령 혹은 공무원이 향후 국가에 더 큰 해악을 입히는 것을 막기 위해 파면하는 것”인데요. 이미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자연인이 된 트럼프는 공직자가 아니니 더이상 국익에 해를 끼칠 사유가 없어 탄핵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죠. 이날 상원의 무죄 결정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내란 선동 혐의에 대한 유무죄를 가렸다기보다는 헌법상 탄핵 대상에 대한 유권 해석을 내놓은 것에 더 가깝습니다.

누가 그래? 

표결 직후 상원의 공화당 1인자인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가 한 발언이 무죄표를 던진 공화당 43명 의원들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 같아 소개합니다. 들어보시죠.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금 현직에 있었다면 나 역시 유죄표를 던질 것을 심각히 고민했겠지만 그는 퇴임했으므로 탄핵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실질적·윤리적으로 그날의 사건(지난달 6일 폭도들의 의회 난입사건)을 부추긴 책임이 있다는데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다(There’s no question — none — that President Trump is practically and morally responsible for provoking the events of the day)”
즉,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내란 선동은 인정되지만, 현직 대통령이 아니니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거 궤변 아니야?

이 또한 민주주의입니다. 비록 당파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 표결이지만 국민을 대표한 상원의원 100명의 판단이죠. 또 탄핵 심판의 전권이 상원 의원들에게 있다는 헌법에 따른 결과이기도 합니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합법적으로 진행된 절차를 ‘사기’라고 주장해선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무슨 말인지 눈치챈 사람이 있으려나)
비록 무죄표를 던졌지만 매코널 의원의 발언들은 공감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또 뭐라고 했는데?

민주당 의원인가 싶을 정도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강력하게 비난했죠. 몇몇 부분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들어보시죠.
“국가의 지도자라는 사람이 뚜렷한 근거 없이 암흑의 세력이 국가를 찬탈하려 든다는 주장을 몇 주 동안이나 퍼부어놓고선 지지자들이 이를 믿고 무모한 행동을 저지르자 발을 빼고 있다. 수치스러운 직무 유기다. (탄핵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고 해도) 그는 대통령 재직 당시 잘못에 대한 형사적 책임에선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무슨 뜻이야?

매코널 의원의 발언대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민ㆍ형사상 소송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형사사건들부터 설명드리면 조지아주와 뉴욕, 워싱턴 DC에서 각각 별도의 검찰 수사가 진행중입니다. 먼저 조지아주 검찰은 대선과 관련된 압력 의혹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2일 브래드 래펜스버거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투표 결과를 뒤집도록 종용한 의혹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가 작년 12월 콥 카운티 투표사기 조사를 주도한 조사관에게 전화해 ‘사기를 찾아내면 국가적 영웅이 될 것’이라며 압력을 가한 의혹입니다. 기소 여부를 정할 대배심원단은 3월에 소집됩니다.

다른 지역 수사도 뭔지 말해줘.

뉴욕 검찰은 트럼프그룹의 보험·금융 사기, 탈세 혐의를 놓고 광범위한 수사를 진행중입니다. 특히 트럼프그룹이 대출과 보험 적용 범위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자산 가치를 부풀렸는지 조사하고 있습니다. 워싱턴DC 검찰은 의회 난입 폭동과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수사하고 있습니다. 탄핵심판의 형사재판 버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탄핵 심판에서 검사 역할을 맡았던 하원 소추위원단이 제출한 다수의 증거가 워싱턴DC 형사재판에서 고스란히 사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가 무죄라면 의회에서 더이상 조치는 없는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당은 2가지 방법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먼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향후 공직 출마를 금지할 표결을 추진중입니다. 기억하시죠? 근거는 공직자가 폭동이나 반란에 관여한 경우 공직에 취임할 수 없다고 규정한 수정헌법 제14조 3항입니다. 공직 취임 금지는 상원에서 과반 찬성만으로 통과되기 때문에 탄핵 유죄 선고보다 상대적으로 쉽죠. 또 민주당은 연방 의사당 난입 사태를 규명하기 위해 ‘9·11 테러’를 조사했던 것과 유사한 독립적 위원회를 설치할 방침입니다. 의회폭동 조사위가 구성되면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태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 맞다, 무죄 판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뭐라고 했어?

그동안 조용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무죄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즉각 반격에 나섰습니다. 이날 상원의 탄핵안 부결 결정 직후 성명을 내고 상원의 탄핵 심판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마녀사냥의 또 다른 단계”였다고 했죠. 그러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ㆍMAGA)’라는 우리의 역사적이고 애국적이며 아름다운 운동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고도 했습니다. 향후 정치적 행보를 가속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번 탄핵 부결은 그가 퇴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화당 상원의원들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다는 걸 뜻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라고 한 공화당 의원들은 누구야?

트럼프 전 대통령 입장에선 배신자들이지만, 민주당 입장에선 양심적 동료의원이라고 할 수 있죠. 공화당 반란파가 된 7인방은 리처드 버(노스캐롤라이나), 빌 캐시디(루이지애나), 수전 콜린스(메인), 리사 머카우스키(알래스카), 밋 롬니(유타), 벤 새스(네브래스카), 팻 투미(펜실베이니아) 상원의원입니다. 이들은 벌써부터 각자의 지역구에서 역풍을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당 눈치 안보고 소신대로 유죄표를 던질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뭔데?

다들 정치 생명에 큰 위협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7명 중 내년에 치러지는 중간선거 대상이 되는 인사는 머카우스키 의원이 유일합니다. 상원은 2년마다 전체 정원의 3분의 1씩 선거를 치릅니다. 머카우스키 의원은 중간선거 대상이긴 하지만 그는 지역구내에서 독보적인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에 재선에 큰 무리가 없습니다. 캐시디, 콜린스, 새스 의원은 2026년에나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앞으로 6년 임기를 보장받습니다. 버 의원과 투미 의원은 이번 임기를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합니다. 롬니 의원도 2024년 상원 의원직을 내려놓기 때문에 눈치볼 이유가 없죠.

이번 탄핵심판 승자, 누구라고 생각해?

주류 언론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니라 엉뚱한 사람을 최고 수혜자로 꼽고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며느리인 라라 트럼프(38)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차남 에릭의 아내입니다.

이건 또 무슨소리야?

좀 전에 말씀드렸던 반트럼프 공화당 7인방 중 리처드 버 상원의원의 소신투표 기억하시죠? 버 의원의 반기로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공화당 트럼프 지지층이 격노하고 있습니다. 당장 주 공화당위원회는 불신임안 표결을 강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버 의원은 어쨋거나 내년 중간선거에 출마하지 않습니다. 무주공산이 된 이 지역구에 라라 트럼프가 출마하는 시나리오에 급속도로 힘이 실리고 있죠. 탄핵 심판의 스포트라이트는 검사역할을 했던 하원탄핵소추위원단이나, 피고였던 트럼프 전 대통령, 배심원단인 상원의원 100명이 아니라 가만히 관중석에 앉아 재판을 지켜만 보던 라라가 차지하게 된 상황입니다.

마지막 질문, 다른 사람들도 이번 탄핵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인지 궁금해.

ABC뉴스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58%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판결을 받아야 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답변은 지지 정당에 따라 당파성이 극명하게 구별됐죠. 민주당 지지층의 88%가 트럼프가 유죄판결을 받아야 했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공화당 지지층에서는 14%에 그쳤습니다. 소속 정당과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는 결과도 있었습니다. 응답자의 77%는 상원의원들이 자신이 속한 당의 입장에 따라 투표했다고 답했죠. 유죄든 무죄든 소신대로 투표한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죠. 어떠세요, 공감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