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한국배우 수상 오스카, 그 뒷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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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세 윤여정 #당당하고 멋진 최초

지난 78호 뉴스레터의 제목 기억하시나요? ‘25일 오후 5시 TV를 켜자’였습니다. 오스카 시상식이 시작되는 서부시간을 알려드려 부디 시청하시라고 부탁드린 ‘낚시성(?)’ 제목이었습니다.
시상식을 마음 졸이며 지켜보신 분들 많으셨을 텐데요. 전세계에 생중계된 아카데미 무대에서 102년 한국 영화사 최초로 한국인 배우가 수상하는 장면을 볼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이날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윤여정(73)씨는 여러가지면에서 단연 돋보였습니다. 윤씨 수상소식 외에도 여러 이야깃거리들이 많았죠. 오스카 시상식 정리했습니다. 윤여정씨의 수상 장면 놓치신 분들이 있다면 일단 동영상부터 먼저 보시죠.

오스카 수상 동영상

소감을 영어로 말했어?

일흔을 넘긴 한국 여배우의 영어 소감을 지켜보면서 그 당당함이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우리말로 통역을 통했더라면 더 매끈한 소감이 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비록 유창한 영어는 아니었다 해도 한마디 한마디에 더 진심이 전달됐다고 생각합니다. 뉴욕타임스가 시상식 이튿날인 26일 ‘최고의 수상 소감’으로 꼽은 것도 아마 그래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감은 시작부터 윤여정씨 특유의 유머가 빛을 발했죠. 여우조연상은 브래드 피트가 시상자로 나섰는데요. 이름이 호명된 뒤 무대에 오른 윤여정씨는 피트를 향해 “드디어 만났네요. (도대체) 털사에서 우리가 영화를 찍을 동안 어디에 계셨나요?(Finally, nice to meet you. Where were you, when we were fliming in Tulsa? Still honor to meet you)”라고 농담을 건넸습니다. 피트는 영화 ‘미나리’의 공동제작사인 플랜B의 설립자입니다. 영화 촬영중 제작자인 피트를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는 걸 익살스럽게 표현했죠.

그외에도 여러 말들을 했던데?

윤여정씨의 영어 소감은 ‘콩글리시’가 아니라 어감을 충분히 이해한 표현들이었습니다. 돋보인 소감들을 하나씩 말씀드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정신 좀 차릴게요(let me pull myself together)”

유럽인 대부분이 제 이름을 ‘여여’라고 부르거나 어떤 사람들은 ‘유정’이라고 부르는데요. 오늘 밤만은 모두 용서하겠습니다(Most of European people call me 여여, some of them call me 유정. but tonight, you are all forgiven)”

제가 어떻게 글랜 클로스를 이길 수 있겠어요. 그러니 모든 다섯 명의 후보들 모두가 각자의 영화와 각자의 역할에서의 승자입니다. 우리는 서로 경쟁한 것이 아닙니다. (How can I win over Glenn Close. I‘ve been watching so many performance. so this is all the, all the nominees. five nominees we are the winner for the different movie, we play the different role. so we can’t not compete each other)”

그리고 저를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제 두 아들에게도 감사하고 싶습니다.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And. I‘d like to thank you to my two boys. I would like to thank my two boys. Who make me go out and work. This is the result of mommy’s hard work.)

윤여정씨 어떤 분이야?

1947년생으로 데뷔 56년차인 원로배우입니다. 초등학교 양호교사였던 어머니는 그가 열 살 무렵 남편을 여의고 홀로 세 딸을 키웠다고 합니다. 맏딸인 그는 이화여고를 나와 한양대 국문과에 입학하자 등록금을 벌기 위해 TBC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주변 권유에 대학 1학년때 1966년 TBC TV 탤런트 공채에 합격해 데뷔했습니다. 개성 강한 외모와 톡톡 튀는 말투. 타고난 끼는 봄꽃처럼 만개했습니다. 1967년 드라마 ‘미스터 곰’에서 신인탤런트상을 타며 스타덤에 올랐고, MBC로 이적해 71년 주연 드라마 ‘장희빈’에선 표독스러운 장희빈으로 변신했죠. 분노한 시청자들이 벽에 붙은 얼굴 사진마다 눈에 구멍을 뚫는 통에 첫 모델로 발탁됐던 ‘오란씨’ 음료광고에서 이듬해 잘렸을 정도라고 합니다.

영화 데뷔는 언제야?

같은 해 1971년 김기영 감독의 ‘화녀’였죠. 윤여정은 시골에서 상경해 식모살이하던 집의 유부남(남궁원)과 기이한 외도 끝에 파국에 이르는 명자를 연기해 시체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대종상 신인상 등을 차지했습니다. 꽃길을 걷던 그에게도 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왜?

1970년대 중반 가수 조영남과 결혼한 그는 미국에 건너가 두 아들을 낳으며 은퇴하는 듯했지만 이혼 후 13년 만에 귀국하며 생업전선에 나섰습니다. 미국에서 최소 시급 2.75달러짜리 슈퍼마켓 점원으로 일해선 먹고 사는 데 답이 안 나왔다고 합니다. ‘이혼’ 딱지가 주홍글씨 같던 시절, 한국에서 배우로 복귀한 그는 환영받지 못했죠. ‘시청자 거부감 1위’란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배우 그만두려고 했다. 내가 뭐 잘못한 것도 아니고 타고난 목소리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게 인권유린 같았다”고 2013년 SBS 토크쇼 ‘힐링캠프’에서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조ㆍ단역을 가리지 않고 연기했다고 해요. 오랜 친구인 김수현 작가의 ‘사랑과 야망’ ‘작별’ ‘목욕탕집 남자들’ 등 TV 히트작에 연달아 출연했고, 시청률이 60%를 넘나든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1991)에선 사회적 성공 대신 결혼을 택하려는 딸(하희라)에게 “널 확실하게 빛내면서 살라”며 설득하는 엄마로 큰 인기를 얻었죠.
현재까지 출연한 작품은 영화 40여편, 드라마 100여편이 넘는다고 합니다.
노희경 작가가 윤여정씨를 극찬한 표현이 있는데요. “지문 하나 없이 ‘…’만 있어도 그녀는 미치게 연기를 해낸다”고 했습니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이야?

미주한인 이민진 작가의 애플TV 미국 드라마 ‘파친코’가 기대됩니다. 또 임상수 감독의 지난해 칸영화제 공식 선정작 ‘헤븐: 행복의 나라로’(가제)도 곧 개봉된다고 해요.

다른 이야깃거리는 뭐야?

올해 오스카는 특히 여성들의 약진이 두드러졌습니다. 총 70명의 여성이 76건의 후보 지명을 받아 오스카 역사상 최다를 이미 기록했고, 이날 시상식에서는 모두 15명의 여성 영화인이 감독상, 각본상, 미술상 17개 부문에서 수상해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가운데 여성 수상자가 가장 많은 해로 기록됐습니다.
또, 다양성도 크게 확대됐습니다. 남녀 주·조연상 후보에 지명된 총 20명의 배우 중 9명이 흑인이나 아시아인 등 유색인종이었습니다.

감독상도 여성이 받았어?

네, 또 하나의 오스카 사상 최초가 탄생했죠. 중국 출신인 클로이 자오 감독이 아시아 여성으로는 처음이자 여성으로서는 두번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 ‘노매드랜드(Nomadland)’는 작품상도 함께 받았습니다. 대단한 쾌거지만 정작 중국에선 조용했다고 합니다. 중국 트위터인 ‘웨이보’나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 등 중국내 인터넷상에서는 그의 수상 소식을 찾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와 홍콩에서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아예 중계도 되지 않았었죠.

왜?

그의 과거 발언 때문입니다. 앞서 그가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중국 웨이보에서는 관련 해시태그 조회수가 3억5000만건에 이를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았었는데요. 하지만 그가 수년 전 인터뷰에서 중국을 “거짓말이 도처에 널려있는 곳”이라고 비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여론은 한순간에 냉담하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중국 외교부 브리핑에서도 자오 감독의 수상과 온라인 검열에 대한 질문이 나왔죠. 하지만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답을 피했다고 합니다.

다른 기록은 뭐야?

역대 최고령 수상자가 나왔죠. 남우주연상을 받은 앤서니 홉킨스(83)입니다. 1992년 ‘양들의 침묵’ 이후 두 번째 남우주연상입니다. 그의 수상을 두고 여러 뒷말이 있었는데요. 먼저 통상 오스카에선 작품상이 마지막에 호명되는데 올해 오스카에선 남우주연상이 마지막에 발표돼 의문을 낳았죠. 그리고 당초 유력 수상자는 ‘블랙팬더’로 유명한 고 채드윅이 점쳐졌었는데요. 유명을 달리한 젊은 배우의 미망인에게 트로피를 전달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시상식의 클라이맥스로 기대됐었죠. 그런데 순서도 이상했던 데다 정작 시상식에 참석도 하지 않은 홉킨스가 선정되자 다들 놀라는 분위기였습니다. 홉킨스는 이날 수상자로 호명될 때 집에서 자고 있었다고 해요.

마지막 질문, 아카데미상을 왜 오스카라고 불러?

좋은 질문입니다. 오스카(Oscar)는 수상자에게 주는 트로피의 이름인데요. 공식명칭은 ‘아카데미 어워드 오브 메릿(Academy Award of Merit)’이라고 합니다. 손에 긴 칼을 들고 있는 남성이 필름통 위에 서있는 형상이죠. 높이는 13.5인치, 무게는 8.5파운드입니다. 1929년 1회 시상식때부터 수여됐다고 해요. 왜 오스카라고 불리게 됐는지 공식적인 유래는 없다고 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1931년 아카데미협회 비서였던 마거릿 헤릭이 직원들과 트로피를 살펴보면서 본인의 삼촌인 오스카 피어스를 닮았다고 말한데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또 다른 설은 1941년 협회장이었던 베티 데이비스가 전 남편이자 밴드 리더였던 하먼 오스카 넬슨의 이름을 따서 불렀다는 주장도 있죠. 그런데 이미 1931년 한 칼럼니스트가 ‘오스카’라는 단어를 기사에서 언급한 것을 보면 헤릭의 ‘오스카 삼촌(Uncle Oscar)’설이 더 설득력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