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명 모인 ‘버닝맨 축제’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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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시작되면서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떴습니다. 네바다주 사막에서 ‘버닝맨 축제’가 열리고 있었는데 이곳에 기습 폭우가 내려 1명이 사망하고 7만명이 고립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평소 메말랐던 땅이 침수되면서 진흙탕으로 변했고 이 때문에 차량들 바퀴가 진흙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아수라장이 됐는데요. 주최 측은 안전을 위해 차량 출입을 전면 통제했습니다. 여기서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버닝맨 축제’, 7만명, 사막? 네바다의 사막에서 열리는 축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거든요. 7만명이면 그 규모가 엄청난데 어떻게 지금까지 미국에서 뉴스를 다루는 직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이런 행사를 몰랐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떤 축제이길래 7만명이나 모였지? 록 페스티벌 인가? 어떻게 여러분은 버닝맨 축제를 알고 계셨습니까?
자료를 찾아봤더니 매년 여름 네바다주 블랙록 사막에서 ‘버닝맨 축제’가 열립니다. 리노에서 북쪽으로 110마일 떨어진 곳인데요. 지금까지 무려 30년 넘게 이어져왔습니다. 1986년 샌프란시스코 베이커 해변에서 래리 하비와 그의 친구 제리 제임스가 하지 절기에 나무로 된 사람 형상을 태우면서 시작됐습니다. 그 이후 4년 뒤인 1990년부터 장소를 블랙록 사막으로 옮겼습니다. 이때만 해도 참가자 규모는200~300명 정도였는데요. 1994년 무렵부터 참가자는 수천 명 규모로 커졌고 이후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 엘리트와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 기술, 창작을 주제로 1주일 동안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허허벌판 사막에 갑자기 7만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다가 1주일 뒤에는 다시 사막 모래벌판만 남는 그야말로 신기루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이곳을 ‘블랙록 시티’라고 부르는데요. 이 안에서는 화폐를 쓰지 않고 대신 아이디어, 발명품, 창작 활동으로 물물거래를 하고 매일 밤 열리는 파티에서 자유롭게 교류하는 형식으로 지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탈사회 문화예술 축제’로 부르기도 합니다.

‘버닝맨’이라는 이름은 축제 기간 중 토요일 밤이 되면 축제를 상징하는 거대한 나무 인물상을 불태우는데, 여기에서 ‘버닝맨(Burning Man)’이라는 명칭이 유래했습니다. 지금은 매년 8월 마지막 월요일에 시작해 연방 공휴일인 노동절, 즉 9월 첫째 월요일에 끝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행사 기간 중에는 그야말로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각종 행사와 이벤트가 열리는데요.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음악을 연주하거나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합니다. 또 블랙록 시티 안에는 댄스 클럽, 요가 수업 등이 마련되기도 합니다. 참가자들은 마실 물은 물론이고 먹을거리와 잠자리, 그리고 그외 필요한 물품을 스스로 준비해야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행사 지역 안에서는 일반 화폐가 통용되지 않기 때문에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없고 서비스를 받을 곳도 없습니다. 따라서 최대한 생필품을 많이 지참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물교환에도 큰 도움이 되겠지요. 주최 측에서는 행사가 열리는 사막 땅을 기본으로 간이 화장실, 긴급 의료 지원, 얼음과 커피 정도만 준비한다고 합니다.

이런 성격의 행사를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좋을까요?
페스티벌이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한 것 같은데요. 버닝맨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3개의 문장이 적혀 있는데 이 문장들이 버닝맨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요약해주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사막에 있는 도시(A city in the desert)’, ‘가능성의 문화(A culture of possibility)’, ‘ 꿈꾸는 자와 행동하는 자의 네트워크(A network of dreamers and doers)’라고 쓰여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조언입니다. 행사가 열리는 곳이 사막이어서 사막 날씨와 온도를 견딜 수 있는 의류와 장비는 필수입니다. 낮에는 100도를 넘나드는 폭염과 싸워야 하고 밤에는 냉기가 돌 정도로 서늘한 날씨가 이어집니다. 모래 폭풍도 자주 불어 고글과 고성능 마스크는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라고 경험자들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더. 자연 경관이 좋은 것도 아니고 편안한 것도 아닌데 싸지 않은 참가비(올해 기준 1인당 575달러, 차량 입장료1대당 150달러, 여기에 각종 수수료는 별도)까지 내면서 7만명이 넘는 인원이 왜 모이는 것일까요?
그곳에는 끝없이 눈과 뇌를 자극하는 예술품이 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음악이 있습니다. 또 자신의 재주와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과시할 수 있는 공간과 그것을 봐줄 사람이 있습니다. 편견이 존재할 수 없는 분위기는 모두가 매혹되고 압도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것입니다.
버닝맨 축제는 히피들이 만든 반문화의 상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급진적 포용, 선물하기, 탈상업화, 자기표현, 자립, 책임감, 공동체를 위한 노력 등이 축제의 원칙으로 제시되고 있는데요. 이는 다양성과 창의를 추구하는 실리콘밸리 정서와 일맥상통한다고 해석되기도 합니다. 일론 머스크는 “버닝맨이 곧 실리콘밸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999년엔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와 세르게이가 직원들과 함께 버닝맨 축제에 참석해 구글의 기업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축제의 마지막 날, 참석자들은 블랙록 사막에 아무 흔적 없이 떠나기 위해 사소한 것들은 모두 태우고 떠나는 의식을 치르는데요. 이것이 바로 ‘소유가 아닌 경험’을 추구하는 버닝맨 정신의 상징이 아닌가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