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된 참깨길의 지영이

750

#세서미스트리트에도 한류 #첫 한인 인형

혹시 못 보신 분들은 있을 수 있겠지만 프로그램의 이름만큼은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미국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소개할 때 대명사처럼 소개되는 것이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입니다. 우리말로는 ‘참깨길’ 정도로 해석되는데요. 한국의 ‘뽀뽀뽀’처럼 사람과 인형들이 등장하는 교육 프로입니다. 프로그램이 1969년 11월10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52년 만에 사상 최초로 아시안계 인형이 합류하게됐는데요. 7살 한인 소녀 ‘지영(Ji-Young)’이라고 합니다. 15일 AP통신이 인형 지영이와 ‘단독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형술사 없이는 그저 인형에 불과한 ‘지영이’를 상대로 인터뷰를 한 발상 자체가 참신한데요. 내용 역시 현재 미국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먼저, 애들 프로그램에 한인 인형 하나 만들어진 게 그렇게 큰 뉴스야?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요. AP통신이 그 해답을 기사에 담았습니다. 지영이는 제작진이 지난 2020년부터 2년 가까이 수많은 회의를 거쳐 만든 캐릭터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2020년은 경관의 무릎에 목이 눌려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인종차별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했었죠. 세서미 스트리트 역시 ‘다양성’을 어떻게 담을까 많은 고민을 했는데요.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지영이죠. 아시안 혐오 범죄가 증가하면서 이에 맞서는 시위도 폭력적으로 변질되는 양극의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시각을 심어주려는 의도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설명을 들어보시면 ‘지영’이가 갖는 의미를 좀 더 아실 수 있습니다.

세서미 스트리트가 뭐야?

앞서 잠깐 말씀드렸듯 미국 최장수 어린이 프로그램입니다. 미국 뿐만 아니라 140개국에서 방송되고 있는 영향력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름이 세서미 스트리트로 정해진 것은 우연한 발상에서 나왔습니다. 재미있고 외우기 쉬운 이름을 찾던 작가들 중 한 명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등장하는 주문인 ‘열려라 참깨!(Open, Sesame!)’에서 착안해 제안했다고 합니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가상의 거리입니다. 프로그램상에선 ‘세상에서 가장 긴 거리’로 소개되고 있죠. 그중 123번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참깨 길’의 이야기는 ‘최장 거리’답게 넘쳐나고 있죠.

인기 비결이 있을 텐데?

통상적인 어린이 프로그램과 다른 요소들이 있습니다. 먼저 그 배경이 환상의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뉴욕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거리입니다. 또 등장하는 ‘사람’들도 뽀미언니 같은 교사형 캐릭터가 아니라 가게 주인, 과학교사, 간호사, 로빈슨 가족 등 현실의 이웃 주민들이어서 친숙하죠.

내용은 어떤데

가장 차별화된 것이 그 내용인데요. 지금도 그렇지만 1969년 당시는 인종차별이 심할 때였습니다만 이 방송에서는 첫 장면부터 파격적으로 흑인들을 등장시켜 차별없는 모든 어린이들을 위한 방송임을 표방해오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기본적이고 평등한 교육’을 제공하자는 취지죠. 유색 인종 뿐만 아니라 실제 청각장애인 배우가 귀가 안들리는 도서관 사서로 등장해 장애인 차별에 반대하는 내용도 소개하기도 했죠. 이 방송편을 제작하기 위해 다른 배우들까지 수화를 배웠다고 하는데요. 손동작만으로 의사소통을 한 당시 방송은 어린이들에게 건전한 문화적 충격을 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건전한 내용과 오랜 방영 기간 덕분에 이젠 아동용이라기 보다는 어린이, 부모, 조부모까지 3대가 함께 봐도 어색하지 않은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죠.

자, 이젠 지영이 얘기를 해줘

AP통신과 인터뷰에서 지영이는 본인 이름부터 소개합니다. 한자에 담긴 뜻을 풀었는데요. “한국에선 전통적으로 이름의 두 글자가 각자 다른 뜻을 갖고 있어요. ‘지’는 똑똑하고 현명하다는 뜻이고 ‘영’은 용감하거나 힘이 세다는 뜻이죠”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는 아마도 지혜 지(智)를 말하는 것 같은데요. ‘영’은 아무래도 제작진이 ‘용(勇)’과 헛갈렸던 것 같습니다. 이름에 쓰는 ‘영’은 대부분 꽃부리 영(英), 길 영(永) 등인데요. 옥편을 아무리 찾아봐도 용감하다는 뜻을 가진 ‘영’을 찾긴 어려웠습니다.

어떤 성격의 아이로 나와?

지영이는 아직 방송에 데뷔하기 전입니다. 추수감사절인 25일 HBO맥스에서 방송되는 세서미 스트리트 스페셜 에피소드인 ‘모두 함께 하는 우리를 봐주세요(See Us Coming Together)’에서 처음 시청자들에게 인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영이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없는데요. 전자기타 연주와 스케이트보드 타기가 취미라고는 합니다. 인터뷰에서 지영이가 앞으로 시청자들에게 소개할 내용에 대한 암시는 있습니다. 한류로 대표되는 아시아 문화에 대한 알리미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영이가 뭐라고 했는데?

AP통신은 지영이가 출연한 예고편 동영상을 올렸는데요. 직접 들어보시죠.
“전 할머니(halmoni)와 떡볶이(tteokbokki) 같은 한식을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그러고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중 ‘린다 린다스(Linda Lindasㆍ아시아계와 라틴계 등 10대 소녀 4명으로 꾸려진 펑크록 밴드)’를 꼭 만나고 싶어요.”

동영상 보기

그런데 왜 첫 아시안 인형을 한인으로 만든거야?

좋은 질문입니다. 지영이는 사실 제작진 중 한인을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인형술사인 캐서린 김(41)씨인데요. 30대에 인형술사를 시작해 2014년 세서미 스트리트에 합류했다고 해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어요. 제가 어릴 때는 볼 수 없었던 상징적인 인형의 모델이 됐기 때문이죠. 대체로 미국에선 아시아계들이 ‘아시안’으로 뭉뚱그려지는 경향이 있는데요. 지영이는 그런 인물이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으로 구별된 캐릭터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바라는 바가 있다면 아이들에게 인종차별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고, 잘못된 점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