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 대한항공 격추 사건, 기억하십니까

1467

1980년대에 KAL기, 즉 대한항공과 관련한 대형 항공기 사건이 2건 있었습니다. KAL기 양대 사건으로 불리곤 하는데요. 하나는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858편이 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된 사건입니다. 일명 김현희 KAL 858편 폭파 사건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보다 4년 앞서 일어났던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입니다. 1983년 9월 1일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해 앵커리지를 거쳐 김포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소속 007편 여객기가 비행 중 사할린 인근 모네론섬 근처 상공에서 지금의 러시아에 해당하는 당시 소련(소비에트 연방) 공군 소속 수호이-15TM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당시 피격 여객기에는 승무원 포함16개국 269명이 타고 있었는데요. 벌써 40년의 세월이 흘러 많은 분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졌을 것 같은데, 김현희 사건이 워낙 많이 회자되어 헷갈리는 분도 있을 겁니다.
KAL 007편 격추 사건은 비무장 여객기에 대한 소련 전투기의 공격으로 인한 격추 사건으로 한국은 물론이고 서방 세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한국에서는 9월 2일부터 사흘 동안 전국민 특별 애도 기간을 갖고 관공서와 가정에서 조기를 게양할 정도의 국가적인 비극이었는데요. 탑승객 중 한국인은 81명이었고 미국인도 55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탑승객 269명의 시신은 단 한 구도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건 당시 국제 정세는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며 사할린 상공에서 치열한 첩보전을 펼치던 때인데요. 그래서인지 KAL기 격추 사건을 두고 각종 음모설이 난무합니다. KAL기가 미국을 위해 첩보 비행을 하고 있었다, 탑승객들이 죽지 않고 사할린 어딘가에 살아 있다 등등 이야기가 많습니다.
2년 전인 2021년 3월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서 ‘사라진 269명의 흔적-KAL 007 격추 사건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다루기도 했는데요. 여기서는 미 국무부 문서를 통해 KAL 007 격추 사건에 대한 미소 양국의 초기 대응을 분석합니다. 또, 진실 규명은 멀어지고 음모론만이 남아버린 이유에 대해 추적하는데 오히려 음모론을 더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받게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유의미한 점은 사건 당시 한국의 국력이 약해 진실 규명을 하지 못했다면 그 이후에라도 유가족의 한을 풀어줬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것입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당시 왜 소련이 민간 여객기에 미사일을 발사했는지, 그리고 시신이나 유품 등은 왜 유족 손에 돌아가지 않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또, 한국 정부는 물론이고 대한항공 측이 40년 전 비극과 관련한 최소한의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는 보도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반인이 쓴 단 한 건의 관련 글을 찾을 수 있었는데요.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 현장 해역이 바라다 보이는 러시아 사할린 네벨스크 해안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토기 굽기 행사인 ‘노야끼’가 열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것도 당시 사고로 아들 부부를 잃은 일본인 도예가가 3년 만에 참가했고 러시아인 등 약 1000명이 함께 진혼의 불길에 기도를 올렸다는 내용입니다. 이 행사는 2010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으며 네벨스크 시장도 참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는데요.
한국 정부와 대한항공 측은 40년 전 사건을 잊은 것일까요? 아니면 숨기고 싶은 것일까요?
한국 외교부는 1997년 8월 6일 서울 김포발 대한항공 801편이 미국령 괌 국제공항으로 접근하던 중 발생한 추락사고와 관련해서는 매년 현지에서 추모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괌 추락사고 여객기에는 승무원 포함 254명이 타고 있었고 이 가운데 228명이 사망했습니다.
오히려 러시아 정부가 1993년 10주기 때 예일스쿠시에 추모비를 건립했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위치를 놓고 유족이 거세게 항의했고 이후에도 아무도 돌보지 않은 채 외롭게 방치돼 있다는 소식만 들려왔습니다.
한국 정부와 대한항공은 지금이라도 40년 전에 발생한 KAL 007편 추락 사건에 대한 명확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은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추모행사를 마련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