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회의 거짓말, 3개로 쪼개진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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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폭동 #후폭풍 #대통령 퇴진운동

말씀드렸듯 의회 폭동의 여파가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임기가 8일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민주당은 ‘1분도 못 참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죠. 급기야 ‘내란 선동’ 혐의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습니다.지난 6일 의사당 폭동 사건 이후 구독자분들이 해주신 여러 질문들과 파장들을 종합해서 쉽게 풀어드리겠습니다.

먼저, 의사당 난입 폭도들이 트럼프 지지자가 아니라는 말이 있던데?

팩트부터 말씀드리면 SNS를 통해 확산하고 있는 음모론중 하나입니다. 그 핵심 내용은 이렇습니다. ‘의사당 폭동 주도세력은 안티파(Antifa)라는 극좌주의자들로 시위 현장에 트럼프 지지자로 위장 침투해 폭력을 선동했다’는 것이죠. 쉽게말해 대통령 지지자들은 평화적으로 시위했지만 민주당 극좌세력이 폭동을 일으켜 그 책임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덮어씌우려 한다는 말입니다.

뭘 근거로 음모론이라는거야?

현재까지 드러난 증거들이 그렇습니다. AP통신은 이 주장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6일 폭동으로 체포ㆍ기소되거나 수배된 120여 명의 SNS 글과 법원 기소장, 공공기록 등을 조회했습니다. 그 결과 ”이 주장은 극우세력과 일부 공화당원들의 거짓말로 밝혀졌다”고 11일 보도했죠.

음모론이라는 구체적 증거를 대봐

일단 체포된 자들의 면면만 봐도 그렇습니다. 6일 폭동으로 현재까지 최소 90명이 검거됐는데요. 혐의는 통행금지 위반 경범죄부터 경관 폭행, 불법무기 소지, 살해협박 등 중범죄까지 다양합니다. AP통신이 체포자중 19명의 신상과 그들의 정치성향을 공개했습니다. 그중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론니 코프먼(70)은 M4 소총, 스미스웨슨 권총, 수제폭탄을 트럭에 가득 싣고 시위현장에 나왔다고 합니다. 또 클리블랜드 메리디스라는 조지아 남성은 시위현장으로 향하면서 친구, 가족들에게 보낸 문자를 보냈는데요. “펠로시(민주당 하원의장)의 연설이 생중계될 때 그녀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을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적었다고 합니다. AP통신 이외에 다른 언론들도 트럼프 지지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현장 증거들을 속속 공개하고 있습니다. CNN은 경찰관이 폭도들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을 트위터로 올렸죠.
경찰 폭행 동영상   AP통신 원문보기

또 어떤 사람들이 체포됐어?

지난 뉴스레터에서 말씀드렸듯 다양합니다. 일반 시민 뿐만 아니라 음모론자들을 비롯해 퇴역군인, 현역 정치인들도 포함됐죠. 시위현장에서 숨진 트럼프 지지자 중 로잔느 보일랜드라는 여성은 음모론 단체인 큐어넌(QAnon) 추종자였습니다. AP통신이 의사당 난입 현장에서 촬영한 뿔달린 모피모자의 남성 제이크 챈슬리 역시 ‘큐어넌 셔먼’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큐어넌 신봉자였습니다. 의사당 난입 당시 카메라에 찍힌 사람 중엔 퇴역군인도 있었습니다. 특히 래리 블록 주니어 중령은 수갑 대용으로 쓰이는 플라이스집타이를 들고 의사당에 서 있는 장면이 찍혀 체포됐죠. 또 다른 주의 현역 경관 2명도 이날 시위에 참석했다가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데릭 에반스라는 웨스트버지니아주 하원의원도 의사당에 난입해 자신의 셀폰으로 생중계한 사실이 드러나 사임했습니다. 그는 사퇴 성명에서 “내 행동에 전적으로 책임지고 웨스트버지니아 주민과 가족, 친구들에게 상처준 행동에 깊이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대통령 퇴진 움직임 정리해줘

민주당은 2개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둘 다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먼저 펜스 부통령이 수정헌법 25조(25th Amendment)를 발동해 트럼프 대통령을 해임토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11일 처리했죠. 수정헌법 25조는 대통령이 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할 경우 부통령과 내각 과반 찬성으로 대통령을 직무에서 배제한 뒤 부통령이 대행할 수 있는 법입니다. 하지만 펜스 부통령은 이에 부정적 입장이라 현실화되기 어렵습니다. 다음은 탄핵소추안입니다.

무슨 명목으로 탄핵한다는거야?

11일 하원에 발의된 4페이지짜리 탄핵소추안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중을 연설로 선동해 2020년 대선 결과를 인증하려는 상하원 공동회의의 헌법상의 직무를 방해했다. 이들은 의회를 불법 침입하고 기물을 파손했으며 경관들의 사망과 부상을 초래했다. 또 연방의원들과 부통령의 안전을 위협했다.…대통령은 국가를 심각한 안보 위험에 처하게 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협했고 평화적 정권 이양을 방해했다. 이같은 행위로 인해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서약을 배반했고 국민을 위험에 빠트렸다.(Incited by President Trump, members of the crowd he had addressed, in an attempt to … interfere with the Joint Session’s solemn constitutional duty to certify the results of the 2020 Presidential election, unlawfully breached and vandalized the Capitol, injured and killed law enforcement personnel, menaced Members of Congress, the Vice President…President Trump gravely endangered the security of the United states and its institutions of Government. He threatened the integrity of the democratic system, interfered with the peaceful transfer of power, and imperiled a coequal branch of Government. He thereby betrayed his trust as President, to the manifest injury of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임기가 8일 남았는데 탄핵이 가능해?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펜스 부통령이 12일까지 25조를 발동하지 않을 경우 탄핵소추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입니다만 대통령의 임기내 탄핵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소추안은 하원에선 무난히 통과될 수 있습니다. 하원 통과 가결 정족수는 과반 찬성인데요. 민주당이 하원 435석 중 과반인 222석을 차지해 가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상원 관문을 넘기는 어렵습니다. 상원에선 2/3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상원의원 100명중 최소 67명의 표가 필요하죠.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 의석이 50:50 동률인 상황입니다. 공화당 의원 17명이 민주당 소추 의견에 동의해야 하는데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 탄핵, 이번이 처음이 아니잖아?

그렇습니다. 만약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이번이 2번째입니다. 2019년 12월 하원에서 가결되고 작년 2월 상원에서 기각된 ‘우크라이나 스캔들’ 관련 탄핵이 첫 번째였죠.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잠재적 대선 라이벌인 조 바이든 당선인 부자에 대한 수사를 종용하면서 이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와 연계했다는 의혹으로, 권력 남용과 의회 방해 혐의가 적용됐었습니다. 당시 하원의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은 앤드루 존슨(1868년), 빌 클린턴(1998년)에 이어 하원의 탄핵을 받은 세 번째 대통령이란 오명을 썼었죠. 이번에 하원이 의회 침탈에 대한 책임을 물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킨다면 미 역사상 하원에서 두 번 탄핵이 가결된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됩니다.

나라 꼴 어떻게 되는 거야?

여러 언론들이 현재 혼란스러운 정국에 대한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중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 가장 설득력이 있는 분석은 ‘액시오스(Axios)의 기사입니다. 3개의 아메리카(three Americas)로 분열되고 있다고 했죠.

3개 나라?

민주당 지지층, 공화당 지지층, 그리고 트럼프 지지층입니다. 공화당 지지층이 둘로 나뉘었다는 뜻이죠. 트럼프 지지층은 이번 대선에서 최대 배신자로 펜스 부통령을 포함한 공화당 의원들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부정 선거 의혹을 펜스 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이 파고들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졌다는 생각이 깔려있죠. 이들은 대통령을 옹호하지 않는 공화당원들을 혐오하고 있습니다. 액시오스는 대통령 지지층이 앞으로 더 똘똘 뭉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위협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왜 문제가 되는데?

대통령 지지층은 뉴스맥스 등 극우 언론이나 극우 성향의 소셜미디어 앱을 중심으로 더 몰릴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대통령이 탄핵된다면 이들이 거리로 또 나올 가능성은 매우 큽니다. 특히 수사당국은 의회 폭동보다 더 위험한 폭력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테러 위협들이 지난 6일 이후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위협인데?

FBI는 10일 내부 지침을 통해 “16일부터 바이든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리는 20일까지 5일간 50개주 전역에서 극단세력들에 의한 무력 시위가 열린다”고 공지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같은 폭동의 책임을 대통령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대선을 부정선거라고 주장해온 대통령의 거짓말이 나라를 이런 상황까지 끌고왔다’고 했죠. WP는 팩트체크를 통해 지난해 1월부터 선거 이틀뒤인 11월5일까지 대통령이 선거와 관련해 1795차례 거짓주장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전체 재임기간 중 사실이 아닌 주장은 총 2만9508차례라고 했죠. 그러면서 아직 8일의 임기가 남았으니 3만회의 거짓주장을 넘어서는 건 쉬울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