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정치인들, 이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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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미셸 박 스틸, 영 김, 매릴린 스트리클런드, 앤디 김 연방 하원의원.
먼저 미주 한인사회의 가장 큰 관심은 한인 연방하원의원 4명의 재선 여부였는데요. 한인 2세인 앤디 김(40) 의원은 네 명 중 가장 먼저 당선이 확정되면서 김창준 전 의원에 이어 26년 만에 한국계 3선 의원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또 한국 이름 ‘순자’로 잘 알려진 매릴린 스트리클런드(59) 하원의원도 승리했고, 현재 개표가 진행 중인 영 김(59, 한국명 김영옥) 하원의원과 미셸 박 스틸(67, 한국명 박은주) 하원의원도 2위와 큰 표차를 유지하면 선두를 달리고 있어 당선이 유력한 상황입니다.
2년 전 선거에서 연방 하원에 4명의 한국계 의원을 나란히 보내며 정치력 신장의 기틀을 마련한 한인 사회는 이번 중간선거 결과를 통해 한인 정치력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고 연방 정계에서 ‘코리안 파워’를 굳건히 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민주당 소속인 앤디 김 의원은 뉴저지주 3지구 선거에서 공화당의 밥 힐리 후보를 꺾고 당선을 확정하면서 3선 의원이 됐는데요. 김 의원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역임한 안보 전문가로, 의회 입성 후에도 전공을 살려 하원 군사위원회와 외교위원회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이번 선거의 승리로 중진 대열에 들어선 김 의원은 워싱턴 정가에서 목소리를 키우며 한국계 정치인이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역시 같은 민주당 소속인 매릴린 스트리클런드 의원은 워싱턴주 10지구 선거에서 승리가 확실시됩니다. 순자라는 한국 이름을 갖고 있어 더 친숙한 스트리클런드 의원은 그동안 워싱턴주를 대표하는 첫 한국계이자 흑인 여성 의원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의정 활동을 펼쳐왔는데요. 앞으로도 미국 주류사회에 한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맡아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남가주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영 김과 미셸 박 스틸 의원, 두 사람은 공화당 소속으로 이번 선거에서 개표 이후 2위와 두 자릿수 표차를 유지하며 재선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요. 캘리포니아 40지구 선거에 출마한 영 김 의원은 개표가 50% 완료된 가운데 59%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고 있고, 캘리포니아주 45지구에서 출사표를 던진 미셸 박 스틸 의원은 50% 개표가 완료된 가운데 55% 넘게 득표해 2위와의 격차를 10% 이상 벌렸습니다.
LA 한인타운이 포함된 캘리포니아 34지구에서 연방 하원의원직에 도전장을 내민 민주당 소속 데이비드 김 후보는 같은 당 현역인 지미 고메즈 의원과 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개표율 42% 시점에서 6% 조금 넘게 표차를 보이면서 뒤쫓고 있는데 지역구 주민의 60%가 라티노일 정도로 불리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막판 뒤집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미주 한인 정치사에 또 한 획을 긋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바로 부지사에 오른 것인데요.  한인 이민 120년 역사상 한인 부지사가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주인공은 민주당 소속 실비아 장 루크 후보로 하와이주 부지사직을 여유있게 따냈습니다. 루크 부지사 당선인은 이번 선거 승리로 미 전국 50개주 정부를 통틀어 최고위 선출직에 오른 한인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이 붙게 됐습니다.
중간선거를 전체적으로 보면 이번 선거는 여나 야나 그 어느 쪽의 압승도 없는 아주 절묘한 힘의 밸런스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공화당의 압승을 예상하는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많았으나 유권자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아직 개표가 모두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에서 NBC 방송은 총 435석의 연방 하원에서 공화당이 220석을 차지해 과반을 넘길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민주당 의석 수는 215석으로 예측됐습니다. 하원의 과반 매직넘버는 218석입니다. 연방 상원은 민주 48석, 공화 47석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정권에 대한 심판 성격이 강한 선거의 특성을 감안할 때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입장에서 상당히 선전한 선거인 셈입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후반기 2년이 훨씬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고 차기 대선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거 때마다 투표의 중요성이 강조되곤 하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선거 결과로 인해 우리의 일상 생활에 큰 변화가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낙태권, 불법이민, 총기 규제 등 풀어야 할 난제가 많은데 어느 당이 의회의 주도권을 갖고 가느냐에 따라 문제 해결의 우선 순위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요. 공화당이 우위를 점한다면 불법이민이나 강력범죄 등이 우선시되고, 민주당이 수성에 성공하면 환경문제와 의료제도, 총기규제, 투표권 등이 의제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정당 입장에서는 의회를 장악하면 각종 조사위원회 활동을 통해 상대에 대한 공격을 가할 수도 있는 장점이 생깁니다. 이외에도 중간선거의 경우 2년 뒤에 치러질 차기 대선 운용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번 선거만해도 만약 공화당이 압승을 했다면 재선 도전을 공언해 온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선 큰 타격과 함께 어쩌면 당내 압력으로 대권 재도전을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민주당 입장에서는 의외의 선전으로 끝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바이든으로서는 충분히 재도전할 기회를 만들 것으로 보입니다. 반대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번 중간선거 결과가 오히려 차기 대선 주자로 나서는데 더 험한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하게 됐습니다. 공화당이 압승했으면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지만 상황이 오히려 트럼프의 책임론으로 바뀌게 된 것이죠.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고 했습니다. 예측한대로만 흘러가지 않고 항상 수 많은 변수가 복병처럼 나타나고 의외의 결과를 내기도 합니다. 이번 중간선거 결과는 또 미국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