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낙원 하와이가 잿더미로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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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기후변화와 지난주 하와이에서 발생했던 참혹한 마우이섬 화재,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별로 관계가 없을 것 같은데 지상낙원을 잿더미로 만들며 1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파괴적인 산불이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당국의 재해 대처가 아예 준비가 안됐거나 미흡했던 부분이 시간이 갈수록 드러나고 있어 인재가 피해를 키웠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오늘은 인재에 대해서는 일단 접어두겠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하와이가 급격하고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는 데다 태풍 영향권에 들어 강풍이 불어닥치면서 산불이 주거지와 상가를 순식간에 덮쳐 피해를 키웠다는 설명입니다. 또 불이 더 잘 붙는 외래종 초목이 토종 식생을 밀어내고 하와이를 ‘점령’한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AP 통신 등 주요 언론은 이번 하와이 산불의 정확한 발화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가뭄과 강풍 등 위험한 조건들이 결합해 불이 확산 중이라면서 그 배후에는 기후변화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전했습니다.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도 언론 브리핑에서 “기후 변화가 여기에 있고 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나는 이것이 우리가 이 화재로 목도하고 있는 바”라고 말했습니다.
하와이는 최근 몇 주 사이 가뭄이 갑작스럽게 심해졌다고 하는데요.
연방 통합가뭄정보시스템(NIDIS)의 가뭄모니터에 따르면 지난 5월 23일 마우이섬에서는 ‘비정상적으로 건조한’(D0) 단계인 지역이 전혀 없었으나 6월 13일 에는 3분의 2 이상이 ‘D0’나 ‘보통 가뭄’(D1) 단계가 됐습니다. 그리고 8월 둘째 주 들어서는 83%의 지역이 D0나 D1, ‘심각한 가뭄’(D3) 단계로 들어섰습니다.

비가 그치고 기온이 치솟으면 가뭄이 일어나는데, 이렇게 되면 대기가 토양과 식물의 습기를 빼앗으면서 불이 잘 붙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위스콘신대의 대기과학자인 제이트 오트킨은 지난 4월 공동 작성한 연구 보고서에서 인간이 야기한 기후변화로 지구가 데워지면서 이 같은 급작스러운 가뭄이 흔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더 장기적으로는 하와이에서 강수량이 줄고 있다는 보고도 이어져 왔는데요.
하와이 대학과 콜로라도 대학 연구진의 2015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이후로 하와이의 강우량이 우기에는 31%, 건기에는 6%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클라크 대학 기상학자 애비 프래지어는 라니냐가 약해지고 하와이 상공의 구름층이 얇아지는 등 변화가 있는데, 이는 모두 기온 상승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가 보는 모든 것에 기후변화의 신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불길을 빠르게 퍼트리는 강풍도 이번 산불 확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와이를 직접 타격하지는 않았지만, 멀찍이 지나간 허리케인 때문에 예전보다 훨씬 강력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하와이에서는 바람이 드물지 않아 보통의 여름 날씨에도 최고 시속 64km에 달하는 바람이 불어닥치곤 하지만, 이번 하와이 강풍은 이런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주 빅아일랜드와 오아후 지역의 풍속은 최고 시속 130km에 달했고 산불 피해가 큰 마우이 섬에서도 시속 108km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하와이 남서쪽 수백km 떨어진 곳을 지난 허리케인 도라의 영향으로 기압 차이가 커지면서 무역풍이 강해져 하와이의 화염을 부채질한 것으로 분석되는데요.
실비아 루크 하와이주 부지사는 ‘우리 주가 영향권에 들지 않은 허리케인이 이런 산불을 일으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 역시 기후변화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허리케인과 같은 열대성 저기압 현상이 더 강력해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에리카 플레시먼 오리건 주립대 기후변화 연구소장은 ‘전 세계적으로 허리케인의 강도가 높아지는 추세인데, 이는 부분적으로 따뜻한 공기가 더 많은 물을 머금기 때문”이라며 “해수면 상승으로 폭우와 폭풍에 따른 홍수가 더 심각해지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더해 하와이의 식생 환경도 산불을 악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인데요.
외래종 풀과 관목이 토종 식물을 몰아내고 하와이를 점령
했는데, 이 외래종들은 불에 더 잘 타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지 단체 ‘하와이 산불관리’의 엘리자베스 피켓 공동 회장은 과거 파인애플과 사탕수수 농장들이 있던 땅이 산업의 쇠퇴로 외래종 식물들에 점령됐다고 설명했는데요. 그는 이런 외래종 풀에 불이 붙으면 토종 삼림까지 번지게 되며, 화재 후에는 더 잘 자라는 외래종이 토종의 자리를 차지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고 덧붙였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건조한 풍경과는 거리가 멀고 초목이 우거진 곳으로 유명한 하와이에서 이번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은 특히 충격적”이라며 “지구가 가열되면서 재해로부터 보호받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캘리포니아에서 최근 몇 년간 산불이 자주 일어나는 원인도 기후변화가 무관하지 않은데요. UCLA 연구진은 지난 5월에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의 기온과 건조한 공기가 캘리포니아에서 산불을 확대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지목했습니다. UCLA 연구에 따르면 기록된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큰 화재 20건 중 18건이 2003년 이후 발생했다고 하네요. 이 가운데 최악의 화재는 2018년 새크라멘토 북동쪽 파라다이스에서 발생한 캠프파이어로 당시 주민 85명이 숨졌습니다.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 열돔 현상 등이 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히 이루어지고 향후 대책 마련도 서둘러야 될 것 같습니다.
하와이 마우이 섬 화재 피해가 하루 빨리 정리돼 지상 낙원이 다시 꾸며지길 바랍니다.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