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범죄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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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알기 #다섯가지 알아야할 기사

이번 주 다알기 코너는 애틀랜타 연쇄총격과 관련해 5가지 소식을 전합니다. 지난 16일 한인 4명 등 8명이 숨진 사건은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설 정도로 전국적인 뉴스가 되고 있습니다. 수사 결과를 계속 지켜봐야 하겠습니다만, 최근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아시안 증오범죄가 그 동기로 지목됩니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침을 뱉거나 욕설을 하고 무차별 폭행을 가하는 수준을 넘어 이젠 마구 총을 쏘아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건 발생부터 그 파장을 짚어봤습니다.

①“숨어있어요. 제발 와주세요”

총격은 지난 16일 오후 애틀랜타 인근 3곳의 마사지숍, 스파에서 발생했습니다. 총 8명이 숨졌고 이중 한인 4명을 포함해 6명이 아시안입니다.
첫 총격은 이날 오후 5시쯤 애틀랜타에서 북쪽으로 30마일 떨어진 영스 아시안 마사지 팔러(Young‘s Asian Massage Parlor)에서 벌어졌습니다. 4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죠. 한 시간쯤지나 30마일 떨어진 곳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총격이 발생했습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골드 마사지 스파‘, ’아로마 세라피 스파‘에서 각각 총격이 일어나 4명이 피살당했습니다.
애틀랜타 경찰이 공개한 신고전화 음성파일에는 당시 피해자들의 급박함이 고스란히 담겼는데요. 3곳 중 골드 마사지 스파에 있던 피해자는 범인이 목소리를 들을까봐 숨죽여 “제발 와달라”고 애원합니다. 또 다른 신고전화에서도 한 여성이 “총소리가 들렸다. 모두 겁에 질려 뒤에 숨어있다”고 울먹입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신고전화 음성파일 듣기

②용의자 

경찰은 첫 번째 총격 발생 3시간여만인 오후 8시30분쯤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21)을 애틀랜타에서 남쪽으로 150마일쯤 떨어진 크리스프 카운티에서 체포했습니다. 롱은 또 다른 총격 범행을 위해 플로리다주로 가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롱을 신고한 사람은 그의 부모였습니다. 롱의 부모는 사건 현장의 영상 속 인물이 자기 아들이라는 사실을 경찰에 알린 뒤 롱이 운전하는 현대자동차의 SUV차량 투싼에 위치정보시스템(GPS) 추적기가 설치돼 있다는 점을 제보했죠. 만약 롱의 부모가 빨리 신고하지 않았다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③동기

현재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섹스중독과 아시안 증오범죄, 두 가지 주장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롱은 경찰 진술에서 본인이 섹스중독 문제가 있다고 털어놨다고 합니다. 경찰은 이 진술을 근거로 “용의자가 스파와 마사지숍들이 자신을 성적으로 유혹하는 것으로 여겨 이를 제거하려 했다”고 설명했죠.
실제로 롱이 과거 성중독 치료를 받았으며, 재활시설에 머무는 동안 “성행위를 위해 마사지 가게에 갔다”라고 말했다는 CNN의 보도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롱이 인종적 편견을 토대로 범행을 저질렀음이 명백하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희생자 8명중 6명이 아시안입니다. 롱이 범행장소로 택한 마사지숍과 스파는 아시아계가 많이 종사하는 업종이라는 점도 인종혐오에 무게가 실립니다. 롱이 최근 SNS에 올린 글에서 그의 인종차별적 인식을 엿볼 수 있죠. 롱은 글에서 코로나19를 우한 바이러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이) 미국인 50만 명을 죽인 것은 21세기에 세계적 지배를 확고히 하기 위한 그들 계획의 일부일 뿐”이라며 “모든 미국인은 우리 시대 최대의 악인 중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부 주류 언론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로 불러온 점 등을 들어 그가 트럼프 추종자일 가능성도 제기했죠.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이번 사건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계속 악화해온 아시안을 겨냥한 혐오가 연쇄 총격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는 해석이 좀 더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두가지 모두 동기라고 생각합니다. 섹스중독자가 저지른 증오 범죄가 이번 사건의 본질 아닐까요.

④경찰

이 와중에 수사당국에도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건을 수사하는 체로키 카운티 셰리프국의 제이 베이커 대변인이 용의자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17일 브리핑에서 용의자 롱에 관해 “그는 완전히 지쳤고 막다른 지경에 처해있다”며 “(총격을 저지른) 어제는 그에게 정말 재수 없는 날(a really bad day)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아시아계 여성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한 용의자 롱이 겪은 하루가 그저 “나쁜 날, 재수 없는 날”이었다고 경찰이 덤덤하게 말하는 동영상은 온라인을 통해 급속히 확산했고, 아시아계 이민자사회의 집중적인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더구나 베이커 대변인이 과거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중국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티셔츠 이미지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는 의혹도 제기돼 그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변인 발언 동영상 보기

⑤공분의 확산

경찰은 현재 롱을 8건의 살인혐의로만 기소했습니다. 인종적 동기가 그의 혐의에는 아직 반영되지 않고 있죠. 한인사회는 크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수사당국이 롱의 ‘섹스중독’ 진술을 공개해서 ‘증오범죄’라는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죠.
LA한인회는 17일 성명을 통해 “용의자는 약 1시간에 걸쳐 아시안이 운영하는 3곳의 업소를 표적으로 총격을 가했다”면서 명백한 증오범죄라고 규탄했습니다. 그러면서 “1992년 LA 폭동 당시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한인·흑인 간 문제로 몰아간 전례로 볼 때 이번 사건이 왜곡되지 않도록 미국 미디어에 이를 분명히 지적하고 사건이 제대로 보도되도록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트윗을 통해 “아시아계 미국인 공동체를 향한 최근 공격은 미국답지 않다(un-American)”며 “그들은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18일 하원에서는 30년만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집중 조명하는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청문회에는 한인 영 김·미셸 박 스틸, 중국계인 주디 추, 대만계인 그레이스 멩 하원의원과 태국계인 태미 덕워스 상원의원 등 이번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아시아계 여성 6명과 같은 숫자의 여성 의원들이 증인으로 나왔습니다. 미셸 박 스틸 의원은 “지난해 아시아계를 상대로 한 언어적·물리적 괴롭힘과 차별 신고가 (민간단체에) 4000 건 가까이 들어왔다”면서 “이는 근절돼야 하며 증오와의 싸움은 당파적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