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하원의장은 미국 권력 서열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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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국의 정치 시스템에 대해서 공부하는 시간으로 마련했습니다.
최근 연방 하원의장에 공화당의 케빈 매카시 원내대표가 힘겹게 선출됐는데요. 공화당 내 강경파 반란으로 닷새에 걸쳐 15차례 투표가 진행된 끝에 나온 결과입니다. 지난 3일 첫 하원 전체회의를 열어 개원한 지 나흘 만에 공백 상태를 끝내며 가까스로 정상화된 셈인데요. 매카시 신임 하원의장은 7일 새벽 진행된 15차 투표에서 216표를 얻어 212표에 그친 민주당 의장 후보인 하킴 제프리스 원내대표를 누르고 당선됐습니다. 연방 하원의 전체 의석 수는 435석입니다. 따라서 과반 의석 수는 218석인데요. 현재 공화당 의원은 222명입니다. 그런데 매카시 의원은 216표를 얻고도 당선된 것인데요. 그 이유는 매카시 의원을 지지하지 않는 공화당 의원 6명이 ‘재석(present)’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재석은 공석이나 결석과 마찬가지로 전체 표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후보에게도 투표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재석’을 선택하면 과반의 문턱이 낮아지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매카시 신임 하원의장이 힘겹게 자리에 올랐지만 당내 반대표가 적지 않아 앞으로도 가시밭길이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매카시 의원이 그토록 원했던 연방 하원의장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자세히 알아봅니다. 우선 권력 면에서 하원의장은 대통령, 부통령에 이어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서 권력 서열이 3위인 막강한 자리입니다. 영어로는 ‘Speaker of the House’라고 표현합니다. 연방 하원 435명을 대표하는 자리이기도 한데요. 연방 하원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면 하원의장은 “하원의 행정 책임자이고 수석 의원이다. 또 하원 다수당의 지도자라는 당파적 소임을 수행하고 선거에서 뽑힌 전체 하원 의원들을 대표한다. 하원의장은 또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데 있어서 부통령에 이어 서열 2위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연방 헌법은 반드시 하원의원 중에서 의장을 뽑아야 한다고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인데요. 헌법은 하원에서 하원의장을 뽑는다고만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의장 선출 11차 투표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 표를 얻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역사상 지금까지 하원의장은 예외 없이 모두 하원의원이 맡았습니다.

하원의장 직은 연방 의회 탄생 때부터 함께 생긴 자리인데요. 초대 연방 하원이 시작된 1789년 4월 1일 당시 펜실베이니아에서 선출된 프레더릭 뮬렌버그 하원 의원이 초대 의장직을 수행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뮬렌버그 의장은 모두 두 차례 의장직을 수행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권력 서열 3위도 처음부터 주어졌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회의 진행자나 중재자 역할에 그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1811년 제12차 의회의 헨리 클레이 의장 때부터 상황이 달라지는데요. 켄터키에 지역구가 있던 클레이 의장은 전임자들과는 다르게 법안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하원 운영규칙을 정하는 등 뚝심과 추진력이 강한 인물이었다고 하네요. 한 번 강해진 권력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 자리에 올랐던 브랙킷 리드 의장과 조셉 캐넌 의장 때에 가서 절정에 달합니다. 이때는 의장이 의사운영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 심지어 의장이 위원회에 누가 들어갈지도 배정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습니다. 하지만 1910년에 민주당과 공화당 소속 의원 몇몇이 의기투합해 하원의장이 가진 권한을 축소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힘이 많이 빠졌는데요. 그래도 여전히 입법 현안을 조정할 수 있고 발의된 법안을 어떤 위원회가 다룰 것인지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또 의사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지는 못하지만, 이 위원회에 들어갈 의원 대다수를 배정하는 권한은 여전하다고 하네요.
의장 선출 방식은 이번 매카시 신임 의장 선출에서도 확인했듯이 하원의원 임기에 맞춰 2년마다 한 번씩 하원 전체 회의에서 구두 투표로 선출합니다. 민주, 공화 두 당이 각각 의장 후보를 내고 과반을 차지하는 쪽, 바꿔 말하면, 다수 의석을 차지한 당에서 낸 후보가 의장이 되는데요. 일반적으로 한 번에 결정나지만 이번과 같이 의장이 결정 날 때까지 투표가 여러 번 진행되기도 합니다. 매카시 의장은 15번의 투표를 통해 자리에 올랐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투표를 거쳐 의장직에 오른 선배 하원의장도 4명이나 됩니다. 특히 1855년부터 2년 동안 하원의장을 지낸 너새니얼 프렌티스 뱅크스 의장은 무려 133번의 투표 끝에,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의장직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모두 정치가 불안정했던 1800년대의 일이고 근현대에 들어 이번처럼 투표를 많이 한 경우는 처음입니다.
매카시 신임 하원의장 바로 전에는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의원이 하원의장 직을 맡았었는데요. 그는 2007년,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으로 선출돼 2011년까지 그 자리를 유지했고 201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탈환하면서 다시 하원의장 자리를 4년 더 누리고 물러났습니다. 이때 펠로시의 나이가 82세입니다. 당연히 최고령 하원의장 타이틀을 갖고 있고요, 최연소 하원 의장은 1839년 12월에 뽑힌 로버트 헌터 의장으로 당시 30세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