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마운틴 볼디와 70대 한인의 생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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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눈 덮인 겨울 산에서 길을 잃은 75세의 시니어가 생존할 확률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마운틴 볼디는 LA에서 보면 동북쪽에 위치합니다. 행정구역상 샌버나디노 카운티의 샌게이브리얼 산맥에 있는데요. 산 높이는 백두산보다 높은 해발 3068미터, 1만64피트에 달합니다. 참고로 한라산은 해발 1950미터, 백두산은 2744미터입니다. 산 정상은 LA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입니다. 산의 정식 명칭은 마운틴 샌안토니오입니다. 등산 거리는 11.5마일, 등반 고도 3900피트, 소요 시간은 7시간, 난이도와 선호도는 둘 다 5점 만점에 4점입니다. 그만큼 험하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뜻이겠지요. 경사가 심하고 돌이 많은 게 특징입니다. 겨울에는 세계 유수의 최고봉을 오르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이 훈련장으로 자주 찾기도 합니다. 그만큼 일반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겨울산행에서 실종되거나 숨지는 사람이 적지 않은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한인 희생자도 적지 않은데요. 올해 초에도 공인회계사인 한인 남성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런 산에서, 그것도 폭설이 쌓인 추운 산속에서 58시간을 버티며 살아났다는 것은 정말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기적의 주인공은 올해 75세인 정진택씨인데요. 정씨는 지난 22일 오전 6시 30분 마운틴 볼드 정상 등반에 나섰다 길을 잃고 실종됐다 구조됐습니다. 그는 지난달 29일 동상 치료 후 병원에서 퇴원할 정도로 건강을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면  정진택씨는 극한 환경에서 어떻게 생존이 가능했던 것일까요?
그는 말합니다. “강풍에 눈보라가 계속 몰아치는데 마운틴 볼디 정상 인근 능선에서 길을 잃었어요. 바람이 세차게 불어 도저히 내려갈 방법이 없더라고요. ‘이대로 계속 내려가면 나는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후 4시쯤 아직 해가 남아 있을 때 두 나무가 달라붙은 줄기 아래쪽에 밤을 지새울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눈 구덩이를 판 뒤 백팩을 깔고 누웠어요. 온기를 유지하려고 웅크린 채 밤새 한잠도 못잤죠”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는데요. 침착함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절박한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밤에 체온유지를 하고 버티면 낮에 다시 걸을 수 있고 구조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마운틴 볼디의 겨울은 설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날씨는 강풍과 눈 때문에 시시각각 변해서 매우 위험합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방향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는데요. 정씨도 “정상에 오른 뒤 내려오는 데 앞이 보이지 않았다”면서 “길을 알 수가 없어 일단 해가 떠 있을 때 안전한 장소에 몸을 피하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도 기상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단 1분도 바람이 멈추지 않았다”면서 “길을 찾으려 움직였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그치고 산비탈을 내려오다가 장갑과 등산 스틱 한 개 도 잃어버렸다. 해가 또 지려고 해 다시 밤을 지낼 눈구덩이를 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두 번째 밤을 새우면서 불안한 마음은 0.01%도 들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어디서 이런 담대함이 나왔을까요?
그는 “내가 이러다 죽는다든지, 불안하든지, 원망스럽지도 않았고 편안했다. 일부러 시계를 안 보기도 했다. 그러다 잠이 들어 깨보니 날이 훤하게 밝아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실종 사흘째. 강풍이 잦아들자 정씨는 산봉우리에서 아래 쪽 도로를 찾아 그쪽으로 한 발 한 발 하산했습니다. 그리고 (24일) 오후 2시쯤 저 멀리서 하이킹 하는 사람을 발견했고 도와달라고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인사하는 줄 알았는지 손만 흔들어주고 가버렸습니다. 조금 더 지나니 다른 등산객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이 셰리프국에 연락했고, 1시간 뒤쯤 구조대를 만나 등산로 입구까지 걸어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살아 돌아왔습니다.
정진택씨의 생환은 그의 강건한 마음뿐 아니라 철저한 준비와 강철 같은 의지, 빠른 판단력과 결단력 등이 모두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낸 기적이었습니다. 그는 산행에 나설 당시에도 에너지바 등이 담긴 백팩, 방한복 등을 잘 갖췄기 때문에 실종됐던 그 시간에도 탈진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정진택씨의 생환에 다시 박수를 보내며 오래오래 건강한 산행하면서 장수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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