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메인 뉴스는 각급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는 흑인에 대한 배상금 지급 문제를 다뤄볼까 합니다. 찬반 논란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자격 요건을 갖춘 흑인 1인당 500만 달러에 달하는 배상금을 주자는 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전국 대도시 가운데 처음 진행되는 일인데요. 시행되기 위해서는 여러 장애물을 넘어야 합니다. 먼저 금전적으로 워낙 거액이어서 재원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게다가 반대론자들의 비판도 거셉니다.
지난 14일 열린 샌프란시스코 수퍼바이저 위원회 회의에서는 샌프란시스코 흑인 배상금 자문위원회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자문위는 지난 12월에 마련한 보고서 초안을 공개했는데요. 여기에는 흑인이 주택 구입시 무상지원금을 제공하자는 안부터 흑인 사업체에 대한 세금 납부를 면제해 그들이 주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 등 100개가 넘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1인당 500만 달러를 지급하자는 안도 그 중에 하나인데요.
수퍼바이저 위원회는 투표를 통해 이들 안을 모두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고 일부만 채택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수정안을 제시할 수도 있구요. 하지만 벌써부터 수퍼바이저들 사이에서는 관련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나왔습니다. 특히 시 예산이 이미 부족한 상황에서 엄청난 규모의 지출 증가는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분노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최근 흑인 학생을 대상으로 인종차별적인 사건이 발생한 부분도 우려를 키웁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현재 5만 명 정도의 흑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요. 이 가운데 몇 명이나 금전적 배상금을 받을 자격이 있는 지는 아직까지 밝혀진 자료가 없습니다. 배상금 대상자에 대한 기준으로 특정 시기에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했어야 하며 경찰의 마약과의 전쟁에서 체포됐던 사람의 후손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반대론자의 반론도 거셉니다. 흑인을 한 번도 노예로 부려본 적이 없는 시와 주에서 이런 식으로 배상금을 주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또 배상금은 결국 주민들의 세금에서 지급돼야 하는데 한번도 노예를 소유한 적이 없는 납세자들이 노예의 신분이 아니었던 사람들에게 배상금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반응에 대해 흑인 커뮤니티는 미국 노예제의 유산에 대한 이해가 없으며 제도적으로 구조화된 인종차별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라고 실망감을 나타냅니다. 오히려 흑인들이 오랜 세월 대대손손 겪어 왔던 고난과 차별을 생각하면 500만 달러는 결코 많은 돈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불행한 역사를 지내온 후손들에게 그나마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은 금전 밖에는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흑인 인구가 한때 전체 시 인구의 13%를 넘는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50여년이 지나면서 지금은 전체의 6%도 안 됩니다. 시에 기거하는 노숙자의 38%가 흑인이라는 조사도 있습니다. 흑인들은 샌프란시스코의 필모어 구역에서 자신들이 소유한 나이트 클럽과 각종 소매업소를 운영하며 전성기를 보낸 적도 있었는데요. 1960년대에 정부가 시 재개발 계획을 진행하면서 그곳에 살던 흑인 주민 대부분을 쫓아내 흑인 커뮤니티는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업체 883곳이 폐업하고 약 2만 명이 집을 잃었습니다. 이 지역은 지금 주택 한 채당 수백만 달러가 넘는 백인 거주지가 됐습니다.
이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흑인들은 여전히 천대받는 신세로 살아야 했던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겠죠.
흑인에 대한 배상금 지급 논의는 캘리포니아 주 정부 차원에서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태스크포스가 구성돼 1933~1977년 사이 흑인에 대한 차별적 주택 정책이 집행됐고 이에 대한 주 정부의 배상책임으로 최대 5690억 달러를 산정했습니다. 이는 흑인 주민 1인당 22만 달러 수준입니다.
경제학자인 듀크대의 대러티 교수는 전국적으로 전체 인종에 따른 부의 차이를 감안하면 흑인 1인당 최소 35만 달러를 보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흑인에 대한 배상금 지급 문제는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다른 일부 지역에서도 이미 검토된 바 있는데요. 시카고의 에반스턴 지역에서는 시 당국에서 흑인 주민들에게 2만5000달러의 주택 바우처를 제시했다가 너무 적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반면 로드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에서는 10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책정했으나 흑인 주민에 대한 현금 보상은 배제하고 백인 주민도 보상 대상자에 포함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시와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오는 6월 중으로는 배상금 액수를 결정해야 하는 일정을 잡고 있는데요. 최종적으로 어느 한 쪽에서라도 배상금 지급이 확정된다면 역사 속에 묻혔던 소수 민족과 소수 인종들의 배상금 지급 요청이 봇물을 이룰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부터 시작해 철도건설에 노예처럼 동원됐던 중국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수용됐던 일본계 미국인,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남서부 지역에서 혹사 당하며 살았던 다수의 멕시코계 이민자, 그리고 4.29 LA 폭동으로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경험했던 한인들까지 어떻게든 보상을 요구할 것 같습니다.
국제적으로도 다른 나라를 침략했던 제국주의 국가들은 지금이라도 식민지로 수탈 당하고 고통 받았던 나라의 후손에 대해 진솔한 사과와 함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