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기괴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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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 말이면 서늘한 바람, 낙엽과 함께 핼로윈 축제가 찾아옵니다. 올해도 샌타애나 강풍이 남가주에 불어와 밤에는 핼로윈 데이를 더 음산하게 만드는데 일조를 했는데요.
저 같은 경우 미국에 온 지 30여년이 지났지만 핼로윈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풍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국 도착 첫 해에 맞이했던 핼로윈의 낯섦과 기괴함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얼룩으로 남아 있는데요. 왜 이런 날을 만들어서 즐기는 것일까라는 의문은 각종 자료를 통해 그 유래를 찾아봐서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내가 그 속에 들어가 즐기기에는 아직 충분치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적인 풍습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자녀들의 코스튬을 준비하고 이웃들이 즐기는 모습 속에서, 또 장사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리며 매년 그럭저럭 지내왔는데요.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핼로윈이 그 이전과는 달리 그 단어에서 슬픔을 먼저 느끼게 됩니다. 잊을 수 없는 사고 때문인데요. 바로 1년 전 이태원 골목에서 발생했던 핼러윈 압사 사고,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핼로윈 파티를 즐기려고 현장을 찾았던 사람 가운데 무려 15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부상자도 거의 200명에 달합니다. 사망자 가운데 여성이 102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64.15%를 차지했고요. 사망자 3명 중 2명은 여성인 셈입니다. 연령대별로는 20대가 106명으로 가장 많았고 30대와 10대가 각각 30명(18.87%)과 13명(8.18%)으로 집계됐습니다. 사망자의 대부분이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꽃다운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일부 언론은 희생자들이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더군요.
올해 방송에 나온 이태원 골목 골목은 미리부터 경찰과 행정 당국이 나서 안전 관리와 통제에 나서는 모습이었는데요. 왜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을 1년 전에는 하지 않았느냐고, 지금에 와서 그렇게 하는 것은 오히려 유족들의 마음을 더 뒤집고 억울하게 만드는 것 같지는 않느냐고 정부 측에 되묻고 싶었습니다.

이태원 압사를 다룬 외국인 감독이 만든 ‘크러시(Crush)’라는 다큐멘터리도 최근 공개됐는데요. 1편만 시청했는데 나머지 편을 더 보려면 용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답답하고 화가 났습니다.

사고 전날부터 사고 현장에는 주말을 맞아 인파가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 모여들며 각종 이상징후를 보였습니다. 또 당일에는 압사 사고 수시간 전부터 지하철역에 사람이 몰려들어 지하철 역에서 밖으로 빠져나오기까지 15분 이상이 걸릴 정도였는데 경찰서, 소방서, 구청, 시청, 지하철 등 그 어떤 관계 기관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입니다.

행동에 나설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사고 발생 3시간 40분 전부터 112 신고센터에는 압사 위험을 언급하는 첫 신고가 접수됐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이후로도 10건이 넘는 신고가 공포와 긴급함이 묻어 있는 목소리로 큰 사고를 경고하고 압사를 예고했습니다. 하지만 안전을 담당하는 그 어느 기관이나 부서도 바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왜 이런 참사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진상이 규명돼야 또 다른 이태원 참사를 예방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올해 열린 1주기 추모 행사에 정부나 여당 관계자들이 참석하지 않은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한 신문은 사설을 통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외면한 추모대회 풍경이 이태원 참사를 빚은 ‘정부의 부재’를 상징하는 듯하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국가안전시스템 재정비에 나서는 것이 옳은 길입니다.
모든 성인의 날인 11월 1일 전날인 10월 31일에는 죽은 영혼들이 되살아나며 정령이나 마녀 등이 출몰한다고 믿어 귀신에게 육신을 뺏기지 않기 위해 유령이나 흡혈귀, 해골, 마녀, 괴물 등의 복장을 하던 행사였던 핼로윈 축제.
하지만 지금은 그런 배경이나 유래와는 상관 없이 특이한 복장과 모습으로 재미있게 지내는 행사로 치러지고 있는데요. 이 행사 때문에 사건사고가 생기고 참사가 벌어진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행사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나 시도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고요. 오히려 일반 대중이 즐기는 행사가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정부 측에서 더 세심하게 협조하고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은 참사로 목숨을 잃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한국 정부가 진실 규명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스스로 살아있는 악귀로 남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번 핼로윈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