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박근혜 평행이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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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전임 호칭, 아직도 낯설다)에 대한 탄핵 심판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25일 하원이 탄핵소추안을 상원에 전달하면서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곧 시작됩니다.
미국의 탄핵정국을 지켜보면서 ‘데자뷔(deja vu)’가 느껴졌습니다. 우리말로는 기시감입니다. 언젠가 본 듯한 상황이죠. ‘맞다 그렇지!’ 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바로 4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입니다. 당시 한국에서 볼 수 있었던 분열된 정치권과 여론, 국기의 물결, 맹목적인 추종세력들이 꼭 닮았습니다.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미국이 한국에서 지난 4년간 발생한 일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던데) 이번 뉴스레터에서 집중 분석해드리겠습니다.

#2017년 한국 #2021년 미국 #탄핵

앞서 말씀드렸듯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곧 법의 심판을 받습니다. 혐의는 ‘내란 선동’입니다. 민주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6일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폭동을 부추겼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절차와 예상,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상황과 비교해 쉽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재판은 언제부터 열려?

탄핵 심판 규정상 소추안이 상원에 전달되면 그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심리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지도부가 재판을 다음달 둘째 주로 연기하기로 합의했죠. 그래서 9일에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왜 2주 연기된 거야?

양당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고 보면 됩니다. 우선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전 대통령 측에 심리 준비를 위해 2주간의 시간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죠.

민주당은 왜 합의한 거야?

민주당 입장에서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만약 곧바로 탄핵 심판을 시작하게 되면 상원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내각 인준 절차가 늦어지게 되죠. 또 전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코로나19 지원책(기억하시죠? 1400달러 추가지원금) 합의가 지연됩니다. 당연히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죠.

탄핵 절차 정리해줘

먼저 의례적 절차부터 시작됩니다. 26일 상원의원 100명이 배심원 선서를 하게 되죠.

잠깐, 배심원 선서라니?

탄핵 심판에 대해 잠깐 설명드릴게요. 탄핵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은 형사재판과 비슷합니다. 우선 피고는 트럼프 전 대통령입니다. 그리고 피고를 기소하는 검사 역할은 하원 의원 9명으로 구성된 소추위원단이 맡죠. 전원 민주당 의원들입니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의 유무죄는 배심원단이 결정하는데요. 탄핵 심판에선 상원 의원들이 배심원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재판장은 현직 대통령의 경우 연방 대법원장이 맡지만 전 대통령의 경우 선례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법원장이 아닌 민주당의 패트릭 리히 상원의장 대행이 주재하기로 결정됐습니다. 당연히 공화당에선 심판의 공정성을 놓고 비판이 나왔죠. 상원의장 대행은 상원의장인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에 이어 상원에서 두 번째 서열이 맡는데요. 리히 의원은 올해 80세 8선 의원으로 가장 오래 재임 중인 상원의원이며 법사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이해했어. 그럼 앞으로 어떻게 진행돼?

앞서 말씀드렸듯 심리는 2주 후부터 시작인데요. 검사인 소추위원과 변호인단인 트럼프 전 대통령 법률팀은 이 기간 동안 재판을 준비합니다. 형사 재판처럼 소추위원은 공소장격인 소추안에 명시된 혐의(내란 선동)에 따른 증거를 제시하고 변호인단이 서면을 통해 이를 반박하게 됩니다. 이 서면공방이 2월9일까지 마감이라 재판은 9일부터 시작되죠.

근본적인 질문, 임기를 마친 전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어?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똑개비뉴스 담당자로서 저도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답변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유는 헌법 조항에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헌법에 탄핵(impeachment)이라는 단어는 6차례 나오는데요, 그중 탄핵 대상에 ‘전임’ 대통령을 규정한 조항은 없죠. 그래서 법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할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정확한 규정이 없으니 할 수 있기도, 없기도 합니다. 우선, 탄핵할 수 없다는 주장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존 마이클 러티그 전 연방판사가 워싱턴포스트에 게재한 기고문에 따르면 헌법에 명시된 탄핵의 목적은 “대통령 혹은 공무원이 향후 국가에 더 큰 해악을 입히는 것을 막기 위해 파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미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자연인이 된 트럼프가 공직자로서 국익에 해를 끼칠 사유가 없으니 탄핵의 명분이 없다는 것이죠.

그럼 탄핵할 수 있다는 논리는 뭐야.

재임 중은 아니지만 ‘미래에 국익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국익을 해하지 못하도록 하려면 향후 어떤 공직에도 출마하거나 임명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탄핵해야 한다는 두번째 이유는 퇴임해 더이상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재임시 불법 행위에 면죄부를 준다면 사실상 후임자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허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입니다.

양쪽 다 일리가 있네. 퇴임자에 대한 탄핵 선례는 없어?

(넘어가길 바랬던 질문인데) 오늘 중요한 질문만 연달아 하시네요. 비슷한 선례가 한차례 있습니다. 1876년 윌리엄 벨냅(Belknap) 전쟁장관(Secretary of War)입니다. 그는 뇌물수수 및 부패혐의로 하원에서 탄핵 소추됐습니다. 그는 하원에서 탄핵이 논의되던 중간에 사임했죠. 하원은 이와 상관없이 그의 탄핵을 만장일치로 가결했습니다. 하지만 상원에서 이미 퇴임 공무원인 그의 탄핵 합법성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었습니다. 지금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처럼 말이죠. 결과는 37-29로 그의 탄핵이 합법이라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죠. 탄핵 의견서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비록 탄핵당하기 전 사임했다해도 그가 전쟁장관 재임시 한 불법행위들은 탄핵 재판에서 심리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런데, 다수가 탄핵 재판의 합법성을 인정했지만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지 못했기에 그는 무죄로 결정됐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죄 여부도 3분의 2 찬성을 얻어야 하네?

맞습니다. 현재 상원의원 100명중 3분의 2인 67명이 동의해야 하죠. 아시겠지만 현재 상원은 양당이 50석씩 갖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모두 찬성해도 공화당에서 최소 17명이 동조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 판결을 받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지금까지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중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사람은 밋 롬니 정도입니다. 24일 그가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한 발언을 들어보시죠.
“탄핵심판이 필요 없길 바라왔지만 의사당 난입을 초래한 내란 선동 혐의는 재판을 받아야 한다. 또 이 나라가 화합으로 향하기 위해선 진실과 사법정의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재판의 쟁점은 뭐야?

내란 선동의 근거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민주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결과를 확정하는 6일 상·하원 합동회의에 앞서 지지자들에게 한 연설에서 대선 결과를 부정하는 발언으로 의회 난입을 선동했다고 주장합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수많은 발언들 중 한가지만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싸우자. 그러지 않으면 우리에겐 더 이상 국가란 존재할 수 없다.(Fight like hell. If you don‘t fight like hell, you are not going to have a country anymore)”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은 탄핵재판에서 이 발언이 수정헌법 제1조가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에 근거하며 폭력을 조장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결과는 재판에서 가려질 테고. 그런데 4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지금이 닮았다고?

답하기에 앞서 위의 양쪽 사진을 보시면 공감하실 겁니다. 왼쪽은 2021년 1월6일 의사당 앞에서 열린 트럼프 지지 시위고, 오른쪽은 2017년 태극기 부대의 시위 현장입니다. 태극기와 박근혜 이름이 성조기와 트럼프로 바뀌었을 뿐 상황은 유사합니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지난 4년간 한국에서 벌어진 상황을 되짚어 보는 것은 앞으로 미국에서 벌어질 일들을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죠.

어땠었지? 기억이 가물가물해

한국에서는 탄핵 반대시위가 2016년 10월29일부터 2018년 1월20일까지 1년 3개월간 매주 토요일마다 계속됐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사회적 혼란은 대단했습니다. 시위 때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은 온통 태극기로 가득했습니다. 시위자들은 ‘탄핵 무효’, ‘박근혜 대통령님 무죄석방!’ 등의 문구를 들고 ‘국민저항 총궐기 대회’를 이어갔죠. 특히 2017년 3월10일 헌재에서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한 날,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시위자 3명이 사망했죠. 갈수록 격렬해진 시위는 점차 문재인 대통령 퇴진 운동으로 변해갔습니다. 그 명분 중 하나가 ‘문재인이 고려연방제를 추진해 북한의 김정은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죠. 또 일부 보수단체들은 계엄령을 선포하라고 촉구해 내란죄로 고발당하기도 했습니다. 또 문 대통령 지지세력을 ‘빨갱이’, ‘종북좌파’로 규정해 “잡아죽여라”는 외침까지 나왔습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어?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랍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태극기 대신 성조기가 펄럭이는 시위가 1년 넘도록 이어진다면, 또 그 과정에서 혹시 인명 피해라도 발생한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그 전조는 이미 우리 모두 아니, 전세계가 목격했습니다. 지난 6일 벌어진 의회 난동 사건입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 확정에 반발하는 트럼프 지지 극우세력들의 성조기가 마치 4년 전 한국에서 태극기처럼 의회 앞을 가득 메웠습니다. 급기야 폭동이 발생해 5명이 숨졌고 130여 명이 체포됐죠. 더욱 불안감을 부추기는 건 트럼프 전 대통령측의 반응입니다.

뭔데?

지난 주말 퇴임 후 첫 주말을 맞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측근들과 골프를 쳤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만약 공화당 의원들이 탄핵에 반대하지 않으면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합니다. 공화당으로선 트럼프 대통령 지지표가 이탈할 경우 4년 뒤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죠. 어떠세요, 4년 전 한국 탄핵 정국과 겹쳐지지 않으십니까? 더군다나 트럼프 신당의 이름은 소름이 돋습니다. 가칭 ‘애국당(Patriot Party)’입니다. 기억하시죠? 한국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는 지지 세력들이 ‘대한애국당’을 창당했죠.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 재판은 얼마나 걸릴 거 같아?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은 이번이 두 번째 입니다. 2019년 말에도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하원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었죠. 상원에서 무죄가 선고됐었지만 말이죠.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에서 군사 지원을 대가로 민주당 대선주자인 바이든의 비리 조사를 압박했다는 의혹으로 권력남용과 의회 방해 혐의가 적용됐었습니다. 이 탄핵 심판은 21일간 진행됐습니다. 이번엔 이보다 좀 더 빨리 결정될 것이라고 합니다.

왜?

당시처럼 복잡한 조사와 증언이 따로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의사당 난입은 생중계됐고 대부분의 의원도 당시 의사당에 있었죠. 결국 수정헌법 1조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가 국가 전복의 위협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