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신들은 위대한 애국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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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끝까지 싸우자” #결과는 의회 유린

다들 보셨겠지만, 저도 할 말을 잃었습니다. 6일 폭도(네, 폭도 맞습니다)들이 연방의사당에 난입해 4명이 사망한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의사당이 미국과 영국간 전시상황이었던 1814년 영국군이 의사당을 점령해 불태운 이후 206년만에 처음입니다. ‘의회가 유린됐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짓밟혔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닙니다. 일부 언론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난입 사건을 ‘내란(Insurrection)’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전말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발생할 후폭풍들도 짚어드리려 합니다. 그날 의사당 안팎에서 벌어진 일들을 뉴욕타임스가 동영상으로 정리했습니다. 일단 영상부터 보시죠.
뉴욕타임스 동영상

먼저, 왜 시위대가 모인 거야?

이날 의회에서는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렸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당선을 인증하는 최종 절차였죠. 이에 반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전날부터 의사당 근처엘립스 공원에서 대선 불복 시위를 열었던 겁니다.

시위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지지자들이 연설을 했습니다. 이번 대선의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내용들이었죠. 시위대가 흥분하기 시작한 것은 이날의 주인공인 트럼프 대통령이 무대에 등장하면서 입니다. 이때가 동부시간으로 정오쯤입니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했는데?

직접 들어보시죠.
“여기 모인 우리 모두는 우리의 대선 승리가 급진 민주세력에 의해 도둑맞기 원하지 않는다. 우린 절대 대선 패배를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도둑질 당한 대선을 누가 인정할 것인가. 우린 침묵하기 않을 것이다. 의사당으로 구국의 행진을 하자. 약해빠진 공화 의원들에게 그런 용기와 대담함을 보여줘야 한다. 여러분이 끝까지 싸우지 않으면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도 함께 하겠다.(All of us here today do not want to see our election victory stolen by emboldened radical Democrats. We will never give up. We will never concede. It will never happen. You don’t concede when there’s theft involved. We will not let them silence your voices.…march up the National Mall toward the Capitol in order to give our Republicans, the kind of pride and boldness that they need to take back our country. If you don’t fight like hell, you’re not going to have a country anymore.)”
연설동영상

이 말 때문에 난동이 벌어진거야?

주류 언론들은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상 폭동을 부추긴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발언에 더해 시위가 격화된 여러 요인들이 있죠. 우선 마이크 펜스 부통령입니다. 대통령이 아직 연설중이던 오후 1시 펜스 부통령은 합동회의를 개시했죠. 부통령은 상원의장 역을 겸임합니다. 대통령은 앞서 펜스 부통령을 계속 압박해왔어요. 대선결과 인증을 차단하라고 요구했죠. 하지만 펜스 부통령은 “그 권한이 내게 없다.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면서 이 명령을 공개적으로 거부했습니다. 여기에 또 한명이 기름을 부었어요.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수장인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입니다. 의사당 밖에서 대통령이 대선 불복을 외치는 사이 매코널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대선 불복 주장을 맹렬히 비난했죠. 대통령 지지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같은 편이어야 할 두 사람이 앞장서서 배신한 셈입니다. 대통령이 당긴 불씨에 부통령과 원내대표가 기름을 부은 격이 됐죠.

그래서 어떻게 됐어?

흥분한 시위대가 의사당 쪽으로 향했죠. 1시10분쯤 의사당 건물 외부 서쪽의 바리케이드를 밀고 의사당 정문으로 쳐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를 저지하는 경관들과 몸싸움이 벌어졌지만 시위대 수가 훨씬 많았죠. 정문에서 막히자 일부 폭도들은 간이 사다리를 이용해 건물 벽을 타고 오릅니다. 폭도들은 빼앗은 경찰의 시위진압방패로 의사당 유리창을 깨고 내부로 난입합니다.

의사당이 아비규환이었겠네?

그렇죠. 안으로 들어간 폭도들은 트럼프 깃발을 흔들면서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겼다”, “의원들 어디 있어?”라고 위협했죠. 이때가 2시15분쯤입니다. 건물 서쪽 상원회의실에선 의원들이 급히 대피합니다. 하지만 동쪽 하원회의실에 남아있던 의원들은 바닥에 엎드려 움직이지도 못한 채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사진들을 보면 흡사 총기난사 현장과 같습니다. 의사당 경찰들은 회의장 문을 책상으로 막아 폭도들 난입을 막고 권총을 꺼내 문을 겨누고 있죠. 3시쯤엔 의사당 돔 아래 로툰나(Rotunda) 원형 홀이 폭도들에 의해 점거됩니다. 폭도들은 집기를 부수면서 마치 점령군처럼 행동합니다.(이게 미국이냐)

도대체 이 사람들 정상이야?

AP통신에 따르면 음모론과 백인 우월주위를 신봉하는 극우주의자들입니다. 사진에 찍힌 몇몇 사람들은 정체가 곧 공개됐습니다. 그들중에서 문신 새긴 상체를 알몸으로 드러내고 뿔 달린 모피 모자에 성조기를 건 창을 든 사람이 있었죠. 극우 음모론 신봉단체 ‘큐어넌’(QAnon)의 열혈 활동가인 제이크 앤젤리라고 합니다. ‘큐어넌 샤먼(shaman)’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그는 자신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을 위한 주술사이자 디지털 전사”라고 소개하고 있죠. 앤젤리 옆에 나란히 서서 의회 경찰과 대치했던 남성은 29살의 네오나치주의자 매슈 하임바크입니다. 또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스’(Proud Boys)의 지도급 활동가인 닉 옥스는 의사당 건물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셀카로 찍어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총기 옹호단체를 이끄는 리처드 바넷(60)이란 사람은 펠로시 하원의장 집무실 책상에 발을 올려놓고  펠로시 의장을 욕하는 메모까지 남겼죠.

이지경이 될 때까지 대통령은 뭘 한 거야?

초유의 난입사태에 대통령은 백악관 개인 식당에서 TV생중계를 지켜보기만 했답니다. 상하원의원들이 다 대피하고 나서야 그는 시위대에 진정을 촉구하는 영상을 트위터에 올리죠. 이때가 4시18분입니다. 그런데 그 발언은 더 큰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들어보시죠.
“여러분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린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 지난 대선은 부정선거였다. 당신들은 매우 특별하다. 위대한 애국자들이다. 사랑과 평화를 가지고 귀가하라.”

폭도들을 비난한 게 아니잖아?

그렇습니다. 병력을 투입해 막아야 할 폭도들을 오히려 칭찬하고 있죠. 나중에 주방위군이 투입되긴 했지만 이마저도 펜스 부통령이 주도했다고 합니다.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주 방위군 동원에 반대했고 대신 펜스 부통령이 국방부와 협의에서 핵심역할을 하고 동원이 더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재촉했다”라고 보도했죠.

의사당 난입으로 인명피해는 없었어?

4명이 숨졌습니다. 내부에 난입한 폭도중 1명이 경관 총격에 사망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출신 애슐리 배빗(35)입니다. 공군에서 14년간 복역하면서 네 차례 해외파병 근무를 수행했었죠. 열렬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시위 하루 전에 트위터에 “그 무엇도 우리를 막지 못할 것”이라면서 “폭풍은 이미 도착했고 24시간 이내에 워싱턴DC에 내려앉을 것…어둠에서 빛으로!”라는 글을 올렸다고 합니다. 나머지 사망자 3명은 의료 응급상황(medical emergency)로 숨졌다는 발표만 있었을 뿐 아직 정확한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경관도 50여명 부상당했다고 합니다.

폭도들 붙잡긴 했어?

폭도들을 몰아내고 의사당 안전이 확보된 것이 5시34분입니다. 사법기관이 총동원되서 관련자들 검거에 나섰죠. 이날만 68명이 체포됐습니다. 총기 불법소지 등의 혐의입니다. 또 의사당 경내 차량에서 화염병이 든 냉장고가, 의사당 인근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와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본부 건물에서 파이프 폭탄도 발견됐죠. 사법당국은 폭동을 벌인 시위대 추적에 나섰습니다. 이들에게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주한 이들을 붙잡기 위해 FBI 디지털감식 전문가들은 밤새 의사당과 의사당 단지 일대 감시카메라 동영상을 분석중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미지나 얼굴을 이번 폭동사태 장면을 담은 소셜미디어 게시물 속 인물들과 대조하는 소프트웨어도 이용하고 있죠. FBI는 폭동 가담자 신원파악을 위한 제보도 받아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찰이 시위대에게 이렇게 속수무책 당할 수 있나?

경찰도 나름대로 준비는 했다고 합니다. 이날 워싱턴 경찰국은 경관 1500명중 1000명을 의사당 주변에 배치했죠. 하지만 주류 언론들은 이날 워싱턴 경찰이 전혀 대비가 안됐다고 일제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날 시위는 이미 수주전에 예고됐었고 또 지지자들이 SNS를 통해 여러 방법으로 공격을 ‘암시’했음에도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입니다. 2ㆍ3중으로 쳐야했을 바리케이드도 1개 저지선만 설치했고, 경관들도 폭동진압용 장비 대신 일반 경찰복을 입고 현장에 배치된 상황이었습니다. 경찰의 소극적 대처는 지난해 의사당 앞에서 열린 인종차별 반대시위때와 비교하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당시 혹시 모를 소요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워싱턴DC와 11개 주에서 주방위군이 동원됐었죠. 또 군용 헬기가 저공비행하며 시위대 해산을 시도하기도 했죠. ‘만약 의회 난입 시위대가 흑인이었으면 이날처럼 경찰이 보고만 있었겠나’라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결국 폭동 다음날 의회 경찰국장은 사임했습니다.

대통령 향한 비난도 엄청날텐데

생명을 위협당한 의원들은 민주ㆍ공화를 막론하고 트럼프 축출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수정헌법 25조입니다. 수정헌법 25조는 대통령의 직무수행 불능과 승계 문제를 규정한 조항입니다. 대통령이 그 직의 권한과 의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부통령이 직무를 대행하도록 허용하고 있죠. 하지만 이 조항으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왜?

절차를 다 밟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죠. 대통령 임기는 13일 남겨두고 있습니다. 25조를 발동하기 위해선 먼저 부통령이 내각의 과반 찬성을 얻어 서면으로 이를 공포해야 합니다. 부통령이 내각의 과반 찬성을 얻었다고 가정해도 대통령에게 이에 반박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럴 경우 4일간 부통령과 내각이 이를 검토해야 하죠. 대통령을 물러나기로 재차 합의했다고 가정해도 최종적으로 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합니다. 현재 의회는 대통령 취임일인 20일까지 휴정하고 있습니다. 의원들이 의사당에 복귀하기 까지 48시간이 주어지는데요. 최종 종합하면 수정헌법 25조가 발동되고 나서도 1주일이 지나야 의회가 이를 심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의회가 대통령 권한 박탈을 심의할 때엔 최장 21일의 기간이 주어집니다. 앞으로 13일 남은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에야 권한을 박탈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럼 대통령 책임을 못 묻는 건가

연방수사당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폭동 선동 정황도 수사중이긴 합니다. 마이클 셔윈 워싱턴DC 연방검찰 검사장 대행은 7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폭동 선동 조사 여부를 묻자 “모든 행위자, 역할을 한 그 누구라도 들여다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또 민주당은 행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을 추진하겠다면서 대대적 공세에 나선 상황이죠. 그런데 대통령에 대한 가장 가혹한 제재는 이미 취해졌다는 평가입니다.

그게 뭔데?

대통령은 바이든 당선인이 취임할 때까지 2주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쓰지 못하게 됐습니다.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이 기간(2주 동안)에 대통령에게 우리의 서비스를 계속 쓰도록 하는 위험이 너무 크다고 본다”고 계정을 정지한 이유를 밝혔죠. 트위터 역시 대통령 계정을 일시 정지했습니다. SNS로 여론 플레이를 해온 대통령으로서는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겠죠.

후폭풍 더 있어?

이번 사태로 내각과 백악관 보좌진들이 줄줄이 사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촉발된 측면이 강한데다 그가 오히려 이를 옹호하거나 미온적으로 대처한 데 대한 반발이죠. 대표적으로 작년 3월까지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최측근인 믹 멀베이니 북아일랜드 특사가 그만뒀죠.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를 보좌하던 스테퍼니 그리셤 비서실장, 백악관의 리키 니세타 사회활동 담당 비서관과 새라 매슈스 부대변인 역시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또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의 아내인 일레인 차오 교통장관도 사표를 냈습니다.

이번 사건에 한인은 관련 안됐어?

듣기 거북한 소식부터 전하자면 이번 시위에 한인들도 참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NBC 방송이 의사당 앞 상황을 보도하던 당시 성조기와 함께 태극기를 든 시위자의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LA에서도 트럼프 지지 시위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나오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도대체 태극기는 왜 들고 나온건지)

좋은 소식은 뭐야?

앤디 김 하원의원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AP통신이 올린 그의 사진 때문입니다. 폭동이 정리된 뒤 의사당에서 새벽 1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김 의원이 연방의원들을 도와 바닥에 남아 있는 시위 잔해들을 치우는 장면입니다. 김 의원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은 SNS에서 급속도로 퍼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는 ABC뉴스와 인터뷰에서 잔해를 치운 배경을 묻는 질문에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정국 어떻게 돼?

트럼프 대통령은 전세계적인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권 이양에 대해 가타부타 말 한마디 없던 대통령이 7일 “새 정부가 오는 20일 출범할 것이며, 순탄한 정권 이양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또 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에 대해서는 “극악무도한 행위로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죠.(이게 무슨 소리야, 전날엔 시위대와 함께 하겠다면서)
그런데 이 발언은 후폭풍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에게 우호적이었던 공화의원들도 돌아선데다 비난 여론이 커 말 한마디로 넘어가긴 어렵겠죠. 또 이 사건과 별개로 뉴욕지검에서 진행중인 트럼프그룹 수사 등 지방 검찰의 수사 칼끝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