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예프 아니라 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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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전 #핵위기로 #양국 국민만 희생

지난 주말에도 전세계의 시선은 온통 우크라이나로 향했습니다. 러시아가 침공한 지 오늘(1일)로 엿새째를 맞습니다. 수도 ‘키이브’ 등 주요 도시에서 치열한 교전이 계속되고 있죠. 당초 길어야 나흘이면 키이브가 러시아군에 함락될 것이라는 예상이 다수였지만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에 러시아군은 고전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대한 ‘가혹한 제재’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규모도 늘리고 있죠. 궁지에 몰린 러시아는 급기야 ‘핵위협’의 카드까지 내놓고 맞서고 있습니다. 지난 뉴스레터에 이어 혼란스러운 전황을 쉽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잠깐, 우크라이나 수도가 ‘키이브’라니? ‘키예프’ 아냐?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이 키예프라고 부르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뉴스레터에서만큼은 키이브라고 쓰기로 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12월 소련연방에서 69년만에 독립했습니다. 5년 뒤 우크라이나는 신헌법을 발표하는데요. ‘우크라이나의 공식 언어는 우크라이나어’라는 일종의 언어 독립 선언이 담겨있습니다. 그 나라의 공식어가 모국어라는 당연한 사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도 뼈저리게 알고 있습니다. 일본어의 잔재는 아직 우리말 곳곳에 접착제처럼 달라붙어있죠. 우크라이나 역시 그 잔재를 털어버리기 위해 노력해왔는데요. 그중 하나가 도시, 지역명을 우크라이나식 발음으로 교체하는 작업입니다. 이에 따라 1995년 바뀐 우크라이나 수도의 공식 영어표기도 ‘Kiev’가 아니라 ‘Kyiv’로 바뀌었습니다. 전자는 러시아어 ‘키예프’라고 읽고, 후자는 우크라이나어로 ‘키이브(Kee-eve)’라고 발음합니다. 수도의 표기법과 발음이 바뀐지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키이브는 키예프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2018년부터 ‘키예프가 아니라 키이브(KyivNotKiev)’라는 모국어 지키기 캠페인을 벌여오고 있습니다. 키예프를 키이브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우크라이나 국민에겐 힘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현재 교전 어떤 상황이야?

침공 엿새째인 1일에도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북동부, 동부, 동남부, 남부 방면에서 공격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전날에는 개전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 대표단이 만나 평화협상을 진행했지만 전투는 멈추지 않았죠. 양국 발표에 차이가 있지만 확실한 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다는 것이죠. 수도 키이브와 제2 도시 하리코프 등 곳곳에서 시가전을 비롯해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방 언론들에 따르면 기존 친러 반군이 장악했던 동부 돈바스 지역 외에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 가운데 러시아가 새로 점령한 곳은 아직 없다고 합니다.

러시아군 공세가 무자비하다고 하던데

군사시설이 아닌 민간인 지역에 대해서도 포격하기 시작했습니다. NBC방송에 따르면 러시아 침공 닷새째인 지난 28일 우크라이나의 제2 도시인 하리코프 민간인 거주지역에 수십 발의 포격이 이뤄졌죠.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에는 인구 140만 명의 하리코프 전역에 폭발이 있었고, 아파트는 흔들려 연기가 났습니다. 아파트 밖에는 시체가 널려 있고 거리에는 불이 나는 모습도 목격됐죠. 이고리 코나셴코프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24일 군사작전 개시 이후 28일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군사 인프라 시설 1146곳을 파괴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엔 31곳의 지휘소와 통신소, 75곳의 레이더 기지, 82기의 방공미사일 등이 포함된다고 그는 전했죠. 또 311대의 탱크와 장갑차, 42대의 전투기와 헬기, 51문의 다연장포, 147문의 대포와 박격포 등도 파괴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수도 키이브 상황은 어때?

말씀드린 대로 우크라이나군이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입니다. 러시아군이 총공세를 벌이고 있죠. 러시아 ‘노바야 가제타’ 신문과 타스·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28일 우크라이나 북동부 체르니히우주와 수미주를 통해 키이브로 진격했습니다. 이에 CNN 방송은 키이브 인근에서 폭발음이 들리고 도시 전체에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고 전했하기도 했죠. 이 가운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량살상무기로 통하는 ‘진공폭탄’을 썼다는 주장이 우크라이나 측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진공폭탄이라니?

옥사나 마르카로바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가 28일 미국 의회에서 보고한 주장인데요. 진공 폭탄은 1차로 기폭제가 터지고 2차로 폭약이 대기와 접촉, 점화하면서 충격파, 고온, 주변 대기 흡수 등의 현상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핵폭탄과 유사한 파괴 효과를 내지만 방사선이나 낙진 등과 같은 부작용이 없죠핵폭탄을 제외하면 가장 큰 위력을 갖고 있는 폭탄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사실이라면 인명 피해가 클텐데

우크라이나 내무부에 따르면 지난 26일까지 어린이 14명을 포함해 352명의 민간인이 러시아의 공격으로 숨졌다고 합니다. 또 어린이 116명 등 1684명이 다쳤죠. 군의 인명피해는 밝히지 않았는데요. 다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러시아가 침공한 이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군인 4500명 이상을 사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말 나온김에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화제가 되고 있다면서?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때 도피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러시아의 공습에도 키이브를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그는 대통령 관저를 배경으로 찍은 동영상에서 “나는 여기 있다”며 도피설을 일축했죠. 또 SNS를 통해 매일 전시상황 등을 국민과 전 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에 체포되거나 살해될 우려가 있으니 대피하라는 미국 등의 권유를 거절했다는 보도도 나왔죠. “내가 싸울 곳은 여기다. 난 총탄이 필요하지 탈것이 필요한 게 아니다(The fight is here, I need ammunition, not a ride)”라는 명언과 함께요.

양국이 협상을 한다고 들었어 결과가 있어?

28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양국 정부 대표단이 만나긴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북부 국경에 가까운 벨라루스 고멜주가 협상 장소였죠. 양국 대통령실·국방부·외무부·의회 인사들로 구성된 대표단은 약 5시간에 걸친 회담에서 주요 의제들에 대해 논의했지만 성과를 내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양국 대표단이 본국으로 돌아가 국가 지도부와 협의를 거친 뒤 며칠 내로 벨라루스-폴란드 국경에서 2차 회담을 연다는 데는 합의했죠. 상대방의 현재 요구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협상 가능성은 계속 열어놓고 있다는 뜻이겠죠.

서방도 러시아에 여러 제재를 했던데?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규모를 늘리고 있습니다. 2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재 대상에 올린 데 이어 26일에는 러시아 일부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기로 했죠. 또 미국은 28일 러시아 중앙은행과 국부 펀드, 러시아 재무부와의 거래를 전면 차단하는 추가 제재도 시행했습니다. 이번 조치로 러시아 중앙은행이 미국에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자산은 동결됩니다. 고위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미국과 동맹에서 동시에 시작된 이번 조치로 러시아에서 시작된 인플레이션은 한층 심화하고 투자는 더욱 떨어질 전망이라고 밝혔죠.

잠깐, 스위프트가 뭐야?

스위프트는 1만1000 개가 넘는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안전하게 결제 주문을 주고받기 위해 쓰는, 고도로 높은 보안을 갖춘 전산망입니다. 국제 무역 결제의 주된 메커니즘이죠. 매년 수조달러가 이 시스템을 이용해 송금됩니다. 여기서 퇴출된 러시아는 수출 대금을 받지 못하게 돼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 수단 중 하나로 거론돼 왔습니다. 일각에서는 ‘금융 핵폭탄’으로도 부릅니다. 물론 다른 송금방법도 있긴 합니다. SWIFT 이전에 쓰던 메시지 시스템인 텔렉스죠. 하지만 이 방법은 효율이 낮고 비용이 많이 듭니다. 텔렉스에 연결된 외국 은행은 23곳에 불과합니다. 또 다른 대안은 중국입니다. 중국은 자체 결제 시스템도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서방이 가장 우려했던 상황입니다. 스위프트를 무기로 이용하면 러시아와 중국이 SWIFT 대안 추진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게되죠. 결국 미국 주도의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고, 서방의 경제 제재 지렛대가 약해지는 결과를 부르게 됩니다.

그래서 제재 효과는 있는거야?

효과는 즉각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루블화 가치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폭락했습니다. 28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루블/달러 환율이 한때 달러당 119.50루블까지 올라 달러 대비 루블화의 가치가 전 거래일보다 30%나 급락했습니다. 전날 러시아 곳곳에서 자동화기기(ATM) 앞에 달러화를 인출하려는 러시아인들의 장사진이 연출됐습니다. 20여 년 전 겪었던 국가 부도 사태의 트라우마 때문입니다. 러시아인 안톤 자하로프(45)는 “우리는 1998년에 이런 대재앙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은행과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루블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이 일반 러시아 국민들의 생활 수준을 현격히 낮출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러시아는 많은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현지 물건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있다는 것이죠.
러시아 서민들의 고행길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왜?

말씀드렸던 환율 폭락의 여파가 시장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죠. 환율 방어를 위해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현행 9.5%에서 20%로 대폭 인상했고 시세 폭락이 예상됐던 증권시장과 선물시장은 문을 열지도 못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경제위기 신호에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금융시장과는 달리 생활 물가와 일자리, 기업 경영 등에 미치는 영향은 좀 더 서서히 나타나는데요. 러시아 역시 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갈수록 고통은 더욱 가중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도자 한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결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양국 국민 모두가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죠.

제재에 러시아도 가만히 있지 않을텐데?

그래서 핵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28일 푸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핵전력을 강화 준비태세로 돌입시켰다고 밝혔습니다. 3대 핵전력(Nuclear Triad)으로 불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장거리폭격기를 운용하는 부대 모두가 함께 비상태세에 들어갔죠. 푸틴 대통령은 전날 TV 연설에서 “서방 국가들이 경제 분야에서 러시아에 대해 비우호적인 행동을 할 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의 고위 관리들까지 러시아에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며 핵전력 준비태세 강화를 명령한 이유를 설명했었습니다.

이러다 정말 핵전쟁 나는 거 아냐? 미국 입장은 뭐야?

조 바이든 대통령은 28일 러시아가 핵무기 운용부대의 경계 태세 강화를 지시한 것과 관련, 핵전쟁 가능성을 단호하게 부정했습니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인들이 핵전쟁에 대해 우려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No)”라고 단호히 답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도 글을 올려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유지하며, 러시아가 긴장 완화 조처를 하지 않을 경우 가혹한 대가를 부과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다”고 언급했습니다.

핵이 아니라면 러시아의 공격 예상 시나리오는 뭐야?

전문가들은 더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크게 2가지 시나리오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먼저 포위전입니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28일 기자들에게 러시아군이 현재 키이브 도심에서 약 25㎞ 외곽에 위치해 있다면서 이는 전날보다 5㎞가량 더 가까이 진격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CNN이 보도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러시아군은 여전히 키이브 등 주요 도시를 겨냥하고 있다면서 “그들이 계속 진격해서 며칠 내 키이브를 둘러쌀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습니다. 포위전은 적이 이미 방어태세를 갖췄을 때 전면전을 중단하고 적의 보급로, 퇴로를 끊은 뒤 지상군을 투입하는 복합적 공격으로 상대가 지칠 때까지 기다립니다. 이 관리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니히우에서 병력을 배치하는 방식, 포격 공세를 시작하는 행태를 볼 때, 포위전을 쓰고 있다는 징후가 충분하다”면서 우려를 표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뭐야?

포위한 뒤 더 병력을 늘리는 방법이죠. 미 국방부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접경에 배치했던 병력 중 3분의 1은 여전히 가용하고 있지 않다면서, 수일 내 진군 병력을 급격히 늘릴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호주의 퇴역 장성 출신 현대전 연구자인 믹 라이언은 결정적 승기를 잡지 못하는 데다 군수 품목이 점차 떨어져 가는 러시아가 첨단무기 대신 구식무기를 동원해서라도 화력을 올리는 선택지에 내몰릴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구식무기는 첨단무기만큼 정교하지는 않지만, 파괴력 면에서는 더 치명적이죠. 라이언은 “앞으로 72시간 내 전장에서 훨씬 더 큰 치명적 결과가 벌어질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습니다.

우크라이나가 투항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상황만으로 본다면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며 결사 항전의 의지를 거듭 다지고 있죠. 우크라이나는 전 국민에 총동원령을 내렸고, 외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도 총을 들고 러시아군에 맞서고 있습니다. ‘미스 우크라이나’ 출신 여성은 “조국과 함께 할 것”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소총을 든 사진을 SNS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