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62년만의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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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도 #못살겠다 #반정부 시위

아메리카 대륙 유일의 공산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62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지난 11일 벌어졌습니다.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수도 아바나 인근 산안토니오 델로스바뇨스를 시작으로 아바나, 산티아고데쿠바 등 곳곳에서 수천명의 시민들이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쿠바는 1958년 12월31일 혁명군이 아바나를 점령한 이후 피델 카스트로 독재 체제가 계속되어 왔죠. 그 후 이런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공산당 일당 체제 쿠바에서 이례적인 시위가 벌어진 배경 등을 정리했습니다.
저는 6년전 광복 70주년을 맞아 쿠바에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쿠바 규제를 완화했던 때였는데요. 1주일간 머물면서 15건의 기사를 작성했죠.(아직도 입에서 단내가) 당시 경험들도 전해드리려 합니다.

먼저 쿠바에 대해 좀 소개해줘. 

카리브해에 있는 섬나라입니다. 세계에서 16번째로 큰 섬이죠.(가장 큰 섬국가는 인도네시아) 위치는 플로리다 반도 바로 아래 보이는 동서로 길쭉하게 누워있는 나라입니다. 국토 면적은 약 109,884㎢로 한국보다 넓고 북한보다는 조금 좁죠. 인구는 1130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쿠바는 19세기까지 무려 400년 가까이 스페인의 식민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공용어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데요, 중남미 스페인어에 가깝습니다.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 이후 1902년 독립했죠. 1933년 한국의 5.16  군사정변과 종종 비교되는 ‘중사들의 반란’이 일어납니다. 평범한 ‘깡촌 출신’ 부사관인 그 유명한 풀헨시오 바티스타(1901~1973)가 쿠데타를 일으켜 모랄레스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죠. 하지만 바티스타 역시 부패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쿠바의 자본주의 체제는 1959년 쿠바 혁명으로 무너지고 맙니다.

쿠바가 북한하고 형제국가라고 알고 있는데?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쿠바는 공산주의 국가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먼저 나라 이름에 이념을 연상시키는 단어가 쓰이지 않는 유일한 국가입니다.(공산국가명의 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산정권 수립 이후에도 혁명 이전의 국호, 국기, 국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죠.
쿠바에서 해외를 오가는 것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나라안의 풍경은 미국과 다름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리 어디서든 노래와 춤, 럼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국내 여행도 자유롭습니다.
쿠바 취재에서 만난 가이드 펠리페 이슬라(63)씨는 쿠바가 오히려 남한과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북한 김일성 대학에서 유학하고 북한 주재 쿠바대사관에서 근무했습니다. 또 한국의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공부하고 몇 년간 살기도 했었죠. 쿠바 취재 당시 이슬라씨의 인터뷰 기사중 일부 내용을 소개합니다.

-북한과 쿠바는 비슷하다고 알고 있다.
야당이 없고, 대통령을 직접 뽑지 못한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그외에는 전혀 다르다. 쿠바엔 살아있는 사람의 동상이 없다. 평양에 살 때 모란봉경기장(현재 김일성 경기장)에서 태양절(김일성 생일) 축하행사에 동원된 아이들의 공연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쿠바에선 카스트로를 우상화하지 않는다. 또, 최근 스페인 기자가 몰래 촬영한 북한 다큐멘터리가 쿠바에서 화제가 됐는데, 탈북자 총살장면이 담겼다. 쿠바에선 미국으로 밀입국자의 가족에게 책임을 묻거나 밀입국에 실패해 돌아온다 해도 벌을 주지 않는다. 사는 건 자유롭다.”

-한국인에 대한 인상은.
“쿠바 국민과 비슷했다. 일할 때 열심히 일하고 놀 때 화끈하게 논다. 둘 다 주변 큰 나라들 사이에서 고생한 역사 때문에 자존심이 세고, 투항하지 않는다. 이민사회 성공도 공통점이다. LA한인사회처럼 마이애미에 쿠바커뮤니티도 크게 성장했다.”

이슬라씨 인터뷰 전문보기

듣고보니 이해되네. 시위 이야기 다시 해줘.

일부 언론은 11일 시위를 1994년 이후 최대 규모라고들 하지만, 사실 혁명 이후 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94년 당시에는 수도 아바나에서만 시위가 국한됐지만 이날 시위는 전국 뿐만 아니라 미국 마이애미와 스페인 등 해외에서도 동조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졌죠.
SNS에서는 시위 영상들이 속속 올라왔는데요. 영상에 붙은 해시태그(# 표시 아시죠?)는 쿠바를 구조해달라는 뜻의 ‘SOS쿠바’였습니다. 영상에서 시민들이 거리를 행진하면서 “독재 타도”, “자유”, “조국과 삶”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는데요. 특히 조국과 삶이라는 구호는 반체제 시위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스페인어로 ‘파뜨리야 이 비다(Patria Y Vida)’라고 하는데요. 쿠바 혁명을 일으킨 카스트로가 앞세웠던 구호인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파뜨리야 오 무에르떼ㆍPatria o muerte)’를 비튼 말입니다. ‘조국과 함께 살자’는 뜻이죠. 이 구호는 힙합 노래로까지 만들어져서 이날 시위에 참여한 국민들이 함께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왜 시위를 벌인거야?

이번 시위 역시 1994년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 경제봉쇄 등으로 경제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벌어졌습니다. 식량, 의약품 등 물자 부족이 심화하면서 생필품을 사기 위해선 상점 앞에 오래 줄을 늘어서야 하고, 전력난 속에 정전도 잦아졌죠. 여기에 코로나19까지 악화하며 국민이 고통이 더욱 커졌습니다. 쿠바는 풍부한 의료 인력과 엄격한 통제 덕분에 코로나19 초기 눈에 띄게 선방했지만 최근 변이 확산 속에 상황이 급격히 악화해 하루 확진자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일찌감치 시민들에게 접종하고 있지만, 무서운 감염 확산을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치고 분노한 시위대는 “백신을 달라”거나 “굶주림을 끝내라”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죠. 결국 시위는 고차원적인 이념 때문이 아니라 원초적인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벌어진 셈이죠.

정부의 시위 진압 당연히 있었겠지?

시위대는 시위 진압에 나선 군경을 향해 돌을 던지고 경찰차를 전복시키는 등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 이날 총 40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는데요. 최루탄을 동원한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시위는 밤 8시쯤 잦아들었습니다. 일부 시민들이 올린 동영상에서는 경찰이 총기를 발포했다고도 주장하는 남성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남성은 피에 물든 쿠바 국기를 펼쳐보이기도 했죠. AP통신의 현지 취재 기자는 이날 아바나 시위현장 한곳에서만 20여명이 체포되는 장면을 봤다고 합니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시위대를 엄단 조치하겠다면서 연설을 했는데요. 이 연설은 국민들을 더 분노하게 만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뭐라고 했길래?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시위 다음날인 12일 국영방송 연설에서 전날 시위와 관련해 미국이 “쿠바의 사회 불안을 부추기기 위해 경제적으로 옥죄는 정책”을 폈기 때문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또 마이애미에 있는 보수적인 쿠바계 미국인 “마피아”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위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마이애미에 다수 거주하는 쿠바계 이민자들은 대체로 쿠바 공산정권에 비판적이죠. 주목할 점은 디아스-카넬 대통령의 발언이 ‘누군가’의 말과 닮아있다는 점입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전세계적으로 확산했다는 팬데믹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말인 것 처럼, 미국에 사는 쿠바인 마피아들이 이번 사태를 뒤에서 조장해 전국에서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이야?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들리지만, 대통령의 연설은 일부 맞는 점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제가 쿠바를 찾았던 건 2015년입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쿠바를 테러 국가에서 제외하며 국교 정상화를 시도했죠. 하지만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테러 국가에 포함시켜 강력한 금수 조치들이 시행됐습니다. 물자 공급이 원활하지 못할 수밖에 없게됐죠.
또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할 수 있었던 건 디아스카넬 대통령의 말대로 인터넷의 영향이 큽니다. 제가 쿠바를 찾았을 때만 해도 쿠바에서는 인터넷을 제한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공공기관 건물 근처 거리에서 와이파이로만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었죠. 그런데 2년 반전부터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됐다고 합니다. 물론, 이번 시위가 벌어진 직후 정부는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접속을 차단했다고 합니다.

미국 정부는 어떤 입장이야?

조 바이든 대통령은 12일 성명에서 “우리는 쿠바 국민을 지지한다”면서 “쿠바의 권위주의 정권에 따른 수십 년 압제와 경제적 고통, 그리고 팬데믹의 비극적 장악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 싶어하는 그들의 분명한 메시지를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쿠바 미국인들은 지난해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승리한 후 쿠바 제재가 완화되고, 오바마 전 정권하에서와 같은 미·쿠바 화해 분위기가 재연되길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 큰 정책 변화는 없는 상태입니다.

쿠바 시위 사태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단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가 진정되긴 했지만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긴 어려울 듯 합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이날 시위에서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중 하나가 ‘야 노 떼네모스 미에도(Ya no tenemos miedo!)’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뜻이죠. 그래서 지난 2월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이후 이어진 반정부 시위에 따른 비극이 쿠바에서도 재현되지 않을까 크게 우려됩니다. 쿠바는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나라입니다. 아름답고 순수한 곳이죠. 그곳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정리했던 당시 칼럼을 소개합니다. 한번쯤 읽어보시면 쿠바에 대한 당시 국내외 상황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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