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스톡법’의 부활, 내년 대선 쟁점 가운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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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개비 237호에서는 또 다시 미국 사회에서 핫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낙태와 관련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총기와 낙태 허용 여부는 오래 전부터 미국 사회를 양분시키고 있는 뜨거운 쟁점인데요. 여성의 낙태권이 우선이냐 아니면 태아의 생명이 우선이냐가 문제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낙태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50년 전에 내려진 판결입니다. 연방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했던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인데요. 약 반세기를 이어오던 이 판결이 지난해 6월 연방 대법원에서 뒤집히면서 다시 낙태에 대한 찬반 논쟁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연방대법원에 보수 성향 판사가 더 많아지면서 일어난 결과인데요. 당시 연방 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5대4로 폐기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이에 따라 즉각적으로 전국 14개 주에서 낙태가 금지되거나 심각하게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고 시간이 더 지나면 26개주 정도가 낙태를 사실상 반대하는 쪽으로 입법에 나설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반대로 낙태권 수호를 위해 필요한 정책을 마련하는 주 정부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려는 시도인데요. 헌법적 권리를 보존하거나 창출하기 위해 국민발안(ballot initiatives) 제도를 만지작거리거나, 낙태 시행 의사와 낙태권 수호 운동을 벌이는 사람을 돕기 위해 입법부에 호소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낙태 반대 세력도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에만 만족하지 않습니다. 더 강력하게 낙태권을 차단하기 위한 수단을 찾고 있는데요. 바로 미국 내 임신중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낙태 약물의 보급을 저지하는 것입니다.
낙태 반대 세력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법적인 근거까지 찾아냅니다. 바로 1873년에 통과된 ‘콤스톡법(Comstock Act)’입니다. 자료에 따르면 이 법은 당시 연방 체신국에서 특수임무에 종사하던 콤스톡이 섹스에 빠져있는 미국의 타락한 윤리에 너무나 실망하면서 이를 막을 방안을 고민하다 마련한 법안이라고 하는데요. ‘콤스톡법’에는 음란 서적의 우송뿐만 아니라 피임 및 낙태 약물과 낙태 도구의 배송까지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이 법에 따라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서부터 제임스 조이스와 월트 휘트먼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전문학 작품을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우편 발송 금지 목록에 포함시키기도 했습니다. 콤스톡법으로 인해 15톤 분량의 책이 압수되고 4000명 이상이 체포됐으며, 최소 15명이 자살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1915년 콤스톡이 사망할 무렵, 여론에 변화가 일어나고 법원도 콤스톡법 적용을 엄격히 제한하기 시작합니다.
법원의 판사들은 피임약 같은 일부 약물의 합법적인 사용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특정 약물을 적법하게 처방하는 의사와 의사의 조언에 따라 낙태를 실시하는 환자는 콤스톡법의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낙태 반대 세력 측에서 이 콤스톡법의 부활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보수 단체 ‘자유수호연맹’은 콤스톡법을 기초로 텍사스에서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낙태 약물을 누구에게나 어디서든 우편으로 보내는 것을 법으로 막아야 한다며 콤스톡법을 훨씬 더 폭넓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결국 지난 7일 텍사스 법원은 연방식품의약국(FDA)이 2000년 경구용 피임약 ‘미페프리스톤(사진)’에 내린 판매 승인 허가가 무효라고 판결하기에 이르는데요. 재판을 담당한 판사는 판결문에서 태아를 ‘태어나지 않은 인간’이라고 언급하는 등 낙태 반대론자의 표현을 거듭 사용하면서 “승인을 철회해 달라”는 낙태 반대 의료단체가 낸 소송에서 이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뉴욕타임스(NYT) 등 주류 언론은 이번 판결이 지난해 6월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기 판결 후 낙태에 관한 가장 중요한 판결이라고 논평했는데요. 미페프리스톤은 현재 미국에서 시판되는 사실상 유일한 낙태약이기 때문입니다. 주 정부 차원에서 낙태 시술을 금지한 보수 지역에 사는 여성들은 중절 수술을 할 수 없어 오로지 이 약에 의존하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같은 날 워싱턴주 법원은 텍사스 법원과 180도 다른 판결을 내렸습니다. “FDA가 미페프리스톤의 사용 승인을 유지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두 개 주의 법원이 각기 다른 판결을 내린 만큼 연방대법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연방 법무부에서 10일 텍사스주 연방법원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항소장을 제5 순회항소법원에 제출했다는 점은 낙태 찬성론자 입장에서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조치이구요. 법무부는 텍사스 법원의 결정이 기이하고 전례없는 결정이고 낙태약 미페프리스톤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에게 심각한 해를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낙태에 우호적인 캘리포니아도 즉각 텍사스 법원의 결정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뉴섬 주지사가 직접 낙태약 긴급 비축 계획을 발표하는 등 발빠른 대응에 나섰는데요.

그는 텍사스 법원의 그 같은 판결을 예상해 미페프리스톤을 대체할 수 있는 미소프로스톨 25만 정 분량을 이미 주 정부 차원에서 확보했고 필요할 경우 최대 200만 정을 구매할 수 있는 계약을 해 놓은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내년 대선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계속되는 총기난사 사건, 그리고 낙태와 관련한 찬반 논쟁의 가열은 벌써부터 미국을 양분하는 핫 이슈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낙태 문제가 여성 유권자와 젊은 층의 표심을 어디로 향하게 할지, 그리고 대선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