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난사가 일상이 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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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총기 난사 #일상 #전국서 하루 1.5건씩

지난 주말 전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뉴욕주 마켓에 이어 캘리포니아주 교회, 텍사스주 벼룩시장, 시카고 관광명소, 밀워키 농구 경기장 인근 등 지역, 장소를 가리지 않고 6건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14명이 죽고 39명이 다쳤습니다.
특히 이중에서 10명이 숨진 뉴욕주 사건은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힌 18세 청소년이 용의자로 체포됐는데요. 주류 언론들은 이번 사건이 미국 역사상 사상자가 가장 많은 인종 혐오 범죄중 하나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동안 뉴스레터에서는 총기 참사가 터질 때마다 빠짐없이 전해드렸었는데요. 작년 이맘때 즈음 그 원인을 분석했었습니다.
89호. 총기난사 늘어난 진짜 이유는

지난 주말 터진 각 사건들의 배경, 수사 상황과 올해 총기 난사 현황을 요약해드리겠습니다.

한동안 뜸하더니 또 터진거야?

한동안 뜸했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총격사건 데이터베이스인 ‘총기폭력 아카이브’에 따르면 올해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은 지난 주말 6건을 포함해 202건에 달합니다. 5월16일 현재까지 올해 135일이 지났으니 매일 평균 1.5건의 총기난사가 전국에서 벌어졌던 셈입니다. 전체 총기 난사 사건중 4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다량 살인(mass murder)’ 사건은 올해 9건인데요. 9건의 총격만으로 숨진 피해자가 50명입니다. 상황의 심각성이 전국 규모로 보도되지 않았을 뿐 총기 난사는 미국에서 일상과 다름없습니다.

사건들 언제 어디서 벌어진거야?

현재 주류언론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뉴욕주 사건부터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지난 14일 토요일 오후 뉴욕주 흑인 거주지역인 버펄로시의 수퍼마켓에서 발생했습니다. 용의자 페이턴 젠드론(18)은 주차장에서 4명을 쏜 뒤 매장 안으로 들어가 9명을 추가로 저격했습니다. 총에 맞은 13명 가운데 10명이 숨졌습니다. 젠드론은 현장에서 출동한 경찰과 대치극을 벌였는데요. 총을 자신의 목에 겨누며 저항하다가 결국 투항해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다른 사건보다 이 사건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흑인들을 겨냥한 인종 혐오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조사에서 드러난 그의 범죄 행각은 충격적이라는 말로 부족할 정도입니다.

어땟길래?

치밀한 계획 범행 정황이 드러났는데요. 젠드론의 총에 맞은 13명 가운데 11명이 흑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은 미국 역사상 사상자가 가장 많은 인종 혐오 범죄 중 하나로 꼽힙니다. 흑인 9명이 숨진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교회, 11명이 사망한 2018년 피츠버그 유대교 예배당, 라틴계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며 20명 이상을 숨지게 한 2019년 텍사스주 엘파소 월마트 총격 사건 등과 피해 규모가 비슷합니다.
그는 집에서 200마일 넘게 떨어진 수퍼마켓까지 운전해 와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지역을 목표물로 삼은 이유는 흑인 밀집 거주지역이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전했습니다. 젠드론이 범행 전 인터넷에 올린 180쪽 분량의 선언문에는 백인 거주 지역인 자신의 집에서 가까우면서 흑인 거주자 비율이 높아 이 지역을 선택했다고 썼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용할 총기 종류와 당일 일정표, 점심 먹을 장소를 포함해 가능한 한 많은 흑인을 살해하기 위한 신중한 계획서를 작성했다고 NYT는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날 군복 차림에 방탄조끼를 입고 공격용 소총으로 무장한 채 현장으로 향했죠. 그리고 총격을 가하면서 ‘트위치(Twitch)’라는 앱을 이용해 총격 상황을 인터넷에 생중계하기 까지 했습니다.

아니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거야?

젠드론은 유색 인종 혐오와 반 이민정책 등 극우 성향의 음모론에 심취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는 이민으로 인한 비백인 인구 증가는 백인과 서구 문명을 파괴할 것이라는 ‘인종 대전환 이론(Great Replacement 또는 Replacement Theory)’을 신봉했다고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이 15일 보도했습니다. 특히 그의 인터넷 선언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젠드런의 성명에 ‘가능한 많은 흑인을 죽이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밝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살해 목록’도 발견됐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노린거야?

전 세계의 여러 유명인들이 많이 포함됐는데요. 먼저 파키스탄계인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을 ‘주목할 만한 적들’중 한명으로 언급했습니다. 그는 “칸 시장은 영국에서 영국인들의 권리 박탈과 인종 교체의 공개적인 신호”라며 “파키스탄 출신의 무슬림 침략자가 영국의 심장인 런던의 대표로 앉아 있다. 백인의 재탄생에 있어 이 침략자의 제거보다 더 좋은 신호가 어딨나”라고 적었죠. 파키스탄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란 칸 시장은 2016년 선거에서 영국 역사상 첫 무슬림 시장으로 당선됐죠. 이밖에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억만장자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도 공격 명단에 올렸습니다. 소로스는 반유대주의와 음모론에서 빠지지 않는 공격 목표입니다.

그런데, 대전환 이론이라는게 뭐야?

다른 테러에도 영향을 준 음모론 중 하나인데요. 프랑스 소설가 르노 카뮈(75)가 주장한 대전환론은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극소수의 권력 집단이 자녀를 많이 낳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이민자들을 유럽에 유입시켜 백인들을 몰아낼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번 사건 발생 직후 대전환론은 정치권에서도 회자가 됐습니다.

왜?

미국의 정통 보수 정치인으로 꼽히는 리즈 체니 연방 하원의원이 이 총격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백인우월론에 대한 공화당의 입장을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죠. 뉴욕타임스(NYT)는 16일 체니 의원이 자신의 트위터에 “백인 극우파와 백인 우월론, 유대인 혐오론은 연방 하원의 공화당 지도부 탓”이라는 글을 올렸다고 보도했습니다. 체니 의원은 트위터에 “공화당 지도부는 이 같은 이념과 생각을 지닌 인사들과 결별해야 한다”고 촉구했죠.
NYT는 공화당 내에서 백인 극우이념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부채질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극우 인사들이 누군데?

공화당의 마조리 테일러 그린과 폴 고사 하원의원이 꼽힙니다. 특히 그린 의원은 뉴스레터에서도 몇차례 소개해드렸습니다. 두 사람은 지난 2월 미국의 대표적인 백인우월론자인 닉 푸엔테스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했는데요. 당시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이 백인우월론 행사에 참여한 데 대해 “잘못됐다”는 반응을 내놨을 뿐, 공식적으로 제재하지는 않았죠. 또 체니 의원의 트윗은 하원 내 공화당 3인자인 엘리스 스테파닉 의원도 겨냥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테파닉 의원의 경우 버펄로 총격사건 피의자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대전환론’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을 펴왔습니다. 민주당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불법 이민자들에게 투표권을 주려고 한다는 내용인데요. 이는 ‘극소수의 권력 집단이 더 많은 자녀를 낳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이민자들을 유럽에 유입시켜 백인들을 몰아낼 것’이라는 대전환론과 같은 논리죠.

음모론이 뭐 이렇게 많은거야. 다른 사건들도 좀 전해줘.

지난 주말 발생한 6건의 총기난사 중 주류언론이 다음으로 주목하고 있는 사건은 남가주 오렌지카운티 대만계 교회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OC셰리프국에 따르면 15일 오후 1시25분쯤 라구나우즈의 ‘제네바 장로교회’에서 아시아계 데이비드 초우(68)라는 용의자가 오전 예배를 끝내고 식당에 모여 있던 교인들을 향해 여러 발 총격을 가해 1명이 사망했고 4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초우는 총격 직후 교인들이 제압해 결박했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넘겼다고 합니다.

이 사건도 인종 혐오야?

혐오는 맞습니다만 ‘특정 민족에 대한 증오’가 더 정확할 듯 싶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중국계인 초우는 최근 중국과 대만간의 정치적 대립 상황에서 대만계에 대한 극도의 혐오를 표출해왔다고 합니다. 초우의 차량 내에서 발견된 메모 내용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대만계를 향한 증오가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초우 역시 이 교회를 노리기 위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장거리를 운전해 왔다고 합니다. 왜 하필 이 교회를 노렸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4건의 사건은 언제 어디서 벌어진거야?

먼저 교회 총격 사건 발생일과 같은 날인 15일 노스 캐롤라이나와 텍사스 휴스턴에서 각각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휴스턴에서는 주말 쇼핑객으로 북적거린 벼룩시장에서 총격 사건이 터져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습니다. 해리스 카운티 셰리프국에 따르면 벼룩시장에서 20대 5명이 다툼을 벌이다 서로 총을 쐈다고 합니다.
이밖에 금요일인 13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미국프로농구(NBA)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 사이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했고 세 건의 총격으로 이어지면서 17살 소년과 20대 남성 2명 등 모두 3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다쳤습니다. 이튿날인 14일 오후 7시30분쯤엔 시카고에서 10대간 총격전이 벌어졌는데요. 밀레니엄파크의 유명 조형물 ‘구름문’(Cloud Gate·일명 The Bean) 인근에서 청소년 집단간 말싸움이 총격으로 번져 16세 소년 1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시카고시는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청소년에 대한 야간 통행금지령을 강화했습니다.

총기 난사가 증가세라고 했었는데, 이유가 뭐야?

앞서 말씀드렸듯 지난해 뉴스레터에서도 원인들을 전해드렸었죠. 그런데 로이터가 15일 인터뷰한 앨러배마대학의 애덤 랭크포드 범죄학 교수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2010년을 기준으로 치명적인 총기폭력 범죄가 2배 이상 폭증했습니다. 1966년부터 2009년 사이 43년간 발생한 총기난사 중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은 25% 정도에 불과했는데 2010년부터 2019년 사이 불과 9년간 그 비율은 50%에 달한다고 합니다. 랭크포드 교수는 “총격범들이 이전 총기 난사를 통해 범죄 행각을 학습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범행 방식은 물론이고 언론에 보도된 이전 총격범의 삶을 통해 영감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뉴욕주 총격범 젠드론이 총격 당시를 생중계한 것은 지난 2019년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과 흡사합니다. 총기난사범들이 증가하고 있는데엔 소셜미디어와 언론의 책임도 크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