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규제, 안 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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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최근에 일어났던 총기난사 사건 등을 계기로  미국에서 총기규제는 정말 불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시간으로 마련했습니다.
CNN 방송은 비영리단체 ‘총기폭력 아카이브(Gun Violence Archive)’ 자료를 인용해 올해 첫날부터 1월 23일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총 38번의 ‘총기난사(mass shooting)’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는데요. 여기에는 몬터레이 파크와 해프문베이 사건이 포함됐습니다.
일반적으로 총격범을 제외하고 죽거나 다친 피해자가 4명 이상일 경우 총기 난사 사건으로 분류합니다.

총기 난사 사건이 잇따르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24일 성명을 내고 공격용 무기를 금지하는 입법을 위해 의회가 조속히 행동할 것을 거듭 촉구하고 나섰는데요. 하지만 그렇게 진정성 있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그 동안 너무 많은 기대와 실망을 경험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치권은 또 저러다 잠잠해지고, 이후 또 다른 총격 사건이 발생해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는 물레방아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는 경험에 바탕을 둔 패배주의가 너무 강하게 자리잡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왜 이렇게 수 많은 사람이 총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데도 총기규제는 요원한 것일까요?
몇 년 전 영국 BBC 방송에서 이 문제에 대해 심층 분석한 내용을 다시 정리해 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치 시스템을 비롯, 이해관계가 너무나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실타래를 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냥 세월은 흐르고 무고한 시민만 희생된다는 게 결론입니다.

가장 큰 문제로 꼽자면 전미총기협회(NRA)라는 막강한 이익단체가 느티나무처럼 버티고 있다는 점입니다. 500만 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각급 정부의 총기 소유 규제 철폐나 완화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은 단체인데요. NRA의 연간 예산 규모가 2억5000만 달러 이상입니다. 이 가운데 매년 정치인에 쏟아 붓는 정치활동 및 로비자금 규모가 5000만 달러를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거 때가 되면 소속 회원들이 일사분란하게 투표에 참여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는 후보는 당선시키고 그렇지 않은 후보는 탈락시키고 있어 정치인들이 이 단체 눈치 보기에 바쁩니다. 공화당 정치인들이 특히 NRA의 총알받이 역할을 담당합니다.
정치권의 게리맨더링도 한 요인으로 꼽힙니다. 대부분의 연방 총기 규제 법안은 뚜껑을 열기도 전에 하원에서 가로막히는데요, 지난 11월 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최소 4년간은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의 입법화가 더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원 선거구 구획 방식이 대부분 공화당이 주도하는 주에서 만든 법에 따른 것이어서 민주당보다 공화당에 ‘안전한’ 의석이 더 많아 구조적으로 이를 뒤집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입니다. 총기 소지자가 많은 시골 지역 선거구가 도시의 선거구보다 숫자가 많다는 점도 공화당과 NRA에 유리합니다. 전국적으로 인구 구성이 변하지 않는 한 정파적으로 지역구를 정한 게리맨더링을 타개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필리버스터도 총기 규제 강화에 걸림돌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총기 규제 법안이 연방 하원을 통과해도 연방 상원에서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정치 구조가 지적되고 있는데요. 뉴욕, 매사추세츠, 캘리포니아 같이 대도시 유권자가 지배적인 주의 수가 전국적으로 보면 총기 소유를 옹호하는 분위기가 강한 시골과 중남부 지역 주보다 적습니다. 여기에 더해 상원은 이른바 ‘필리버스터’ 때문에 대부분 주요 법안은 100명의 상원의원 중 단순히 과반을 넘는 51명이 아닌 60명의 지지를 얻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지금 같이 민주당이 상원의 과반을 차지하더라도 공화당 소속 의원 10명 이상의 지지를 끌어내야 총기규제 강화를 위한 법안이 통과될 수 있는 것입니다.

2012년 12월 중순 코네티컷 주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6~7세 어린이 20명과 성인 6명 등 총 26명이 목숨을 잃었던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연방 의회에서 총기 구입시 신원조회를 더욱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해 투표에 부쳐졌지만 NRA의 강력한 로비에 막혀 56명의 지지를 얻는데 그친 사례가 시스템적으로 엄청난 장벽을 뚫어야 함을 잘 보여줍니다.
정치적 장애물을 다 제거한다고 해도 아직 다른 장애물이 있습니다. 바로 사법시스템인, 법원입니다.  연방 대법원은 권총과 같은 개인용 무기의 소지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라고 판결해 왔는데요.
수정헌법 2조는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지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총기 규제 운동가들은 이 조항의 서두를 가리키며  ‘잘 규율된’ 민병대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2008년, 논란 끝에 수정헌법 2조가 전반적인 총기 소지의 권리 근거를 제공하며, 개인용 무기를 소지하는 데 까다로운 등록조건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판결을 내립니다.
현재 연방 대법관 9명의 정치 성향은 보수 대 진보 비율이 6대3으로 파악되고 있어 앞으로도 최소 수년 안에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이 통과되기는 어려울 전망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슈를 대하는 열의의 차이도 지적됩니다.
국가 차원에서 새로운 총기 규제에 가장 큰 걸림돌은 아마도 열의의 차이일 것이라고 BBC는 지적하고 있는데요. 반대는 늘 거세지만, 지지는 새로운 총기 사건이 발생할 때는 높아졌다가 곧 사그라들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NRA와 총기 옹호파 정치인들은 지금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이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립니다. 관심이 사그라들 때까지 입법을 질질 끄는 것이죠. 총기 옹호파 정치인들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기도를 하고, 침묵의 시간을 갖거나 조기를 걸기도 합니다. 그렇게 규제 입법의 노력은 조용히 미뤄지고 결국 수포가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과연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돼 연방 하원과 상원을 통과하고 연방 법원에서도 아무런 태클을 걸지 않고 시행될 수 있을까요?
영국은 1996년 이후 총기 개인 소지를 금지했고 그로부터 10년 동안 관련 사망자가 4분의 1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또 호주는 최악의 총격사건 발생 후 2주도 지나지 않아 속사총기와 산탄총을 금지하고 총기면허 관리를 강화하는 조치를 단행해 총기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였습니다. 결국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강력한 의지가 최대 관건입니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성공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습니다. 무고한 희생자에는 나, 또는 내 가족이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