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규제 단체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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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의 말대로 전국이 킬링필드(Killing Fieldsㆍ대학살 현장)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또 총기난사 사건이 잇따랐죠. 동부와 서부, 중부를 가리지 않고 벌어진 총격 사건들로 열 명이 훌쩍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비영리 연구단체 총기폭력아카이브(GVA)에 따르면 지난 주말 동안 전국에서 무려 133건의 총격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 가운데 총기 난사 사건만 10건에 달합니다. 총기 난사란 총격범을 제외하고 4명 이상이 사상을 당한 사건을 말하죠. 총기 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총기 규제의 가장 큰 걸림돌로 언론들은 미국총기협회(The National Rifle AssociationㆍNRA)를 지목합니다.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NRA가 뭐기에 입법까지 막을 수 있다고 하는걸까요. 또, NRA가 과연 총기 참사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긴 한걸까요. NRA가 없다면 총기 규제는 가능한걸까요. 질문들을 하나하나 답해드리겠습니다.

먼저, NRA가 뭐야?

단체명에서 알 수 있듯 민간인 총기 소지자와 관련 사업자들의 권익을 도모하는 단체입니다. 1871년에 남북전쟁 당시 북군 장교인 윌리엄 처치와 조지 윈게이트가 창립했죠. 그러니까 작년에 창립 150주년을 넘긴 유서깊은 단체입니다. 현재 회원 수는 무려 500만명에 달하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 10명의 대통령이 회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론들은 NRA를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강한 단체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만들어졌어?

원래 단체 설립 의도는 남군을 이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북군 군인들이 남군에 비해 사격 실력이 너무 형편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미국 남북간의 사격 실력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NRA를 창설했죠. 또 민간인들이 총기를 위험하게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육하는 것을 또 다른 목표로 세웠습니다.

잠깐, NRA는 총기 옹호단체 아냐? 위험한 사용을 막는다니?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NRA는 원래 총기 규제를 매우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단체였습니다. 지금과 정반대의 목표를 위해 노력했었죠. 초기의 대표적인 입장을 알 수 있는 발언이 칼 프레데릭 NRA 전 회장이 1939년에 한 말인데요. 아래와 같습니다.
“무기를 항상 휴대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총을 버젓이 들고 다니는 것 역시 내 신념이 아니다. 총의 휴대는 엄격히 규제되어야 하며, 면허를 받은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I have never believed in the general practice of carrying weapons. I do not believe in the general promiscuous toting of guns. I think it should be sharply restricted and only under licenses.)”

믿기지 않는데, 그럼 총기를 규제하는데 실제로 노력을 했다는 말인거야?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1920년대에는 민간인의 권총 소유를 엄격히 규제하는 법안을 국회에 들고 가서 통과시켜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죠. 이 법안은 당시 겨우 9개의 주에서만 채택되어 입법화됐지만, 이 정도 규모의 총기 규제법이 그 이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규제였습니다. 또 놀라운 것은 현재 NRA가 폐지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1934년의 ‘전국총포법(National Firearms ActㆍNFA)’과 1938년의 ‘총포관리법(Gun Control ActㆍGCA)’ 역시 NRA가 발벗고 나서서 통과시킨 법들입니다.

어떤 법들이야?

현재 총기규제법들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전과자는 총을 소유할 수 없고, 총포상과 총포 소유자는 정부에 등록을 해야 하며, 총과 관련된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이었습니다. 거꾸로 말씀드리면 이전에는 그런 규정이 하나도 없었던 셈인데요. NRA는 무려 90년전에 총기 규제법의 필요성을 외쳐 현실화시킨 선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에도 NRA는 GCA법안에 총기 구매 제한 연령, 총포 및 탄약의 수송에 대한 제한, 정신병자와 약물중독자의 총기 구매 제한 등의 규정이 신설되도록 노력했다고 합니다.

아니, 그런데 어쩌다가 반대편으로 돌아선 거야?

1977년이 분기점이었습니다. 잠깐 시대적 배경을 설명드려야 하는데요. 1960년 미국은 엄청난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따른 반전운동, 히피문화,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가 이끌던 흑인 인권운동 등으로 사회 내분과 양극화 현상이 극심했죠. 그 반작용으로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ㆍ네오콘)가 대두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백인 중심의 우익 정치라고 할 수 있는데요. 대체로 국가 간의 약육강식, 힘의 논리를 중시하고 보수적인 기독교 근본주의 교리를 따릅니다. 이 네오콘의 등장으로 NRA 내부에서도 격변이 일어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건데?

1977년 신시내티에서 열린 연례 총회때 NRA내 네오콘 성향의 인물들이 몰표를 받으면서 수뇌부가 물갈이 되는데요. 여태까지 교육 계몽에 주력하였던 NRA 수뇌부가 전원 축출되고 과격파들이 NRA를 장악합니다. NRA가 당시 연례총회를 ‘신시내티 혁명(Cincinnati Revolution)’이라고 부를 정도로 변화는 엄청났습니다. 새로운 지도부는 정반대 노선을 천명합니다. 특히 네오콘 수뇌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주목을 받았는데요. 바로 할론 카터(1913~1991)입니다. 카터는 현재 NRA의 영향력 토대를 닦은 인물로 평가되고 있죠.

어떤 사람이야?

텍사스 출신의 카터는 17세였던 1931년 15세 멕시칸 소년을 총격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전력이 있습니다. 하급심에서 유죄평결을 받았지만 당시 법정이 배심원단에게 정당방위에 대한 지침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급심에서 무죄 평결을 받게되죠. 17세에 살인 경력을 가졌던 인물이니 총기에 대한 그의 신념이 어땠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죠. 여하튼 그는 에모리대학을 나와 국경수비대에서 근무하다 이민국 남서부국장까지 진급, 1970년에 은퇴합니다. NRA에는 1951년부터 전국이사회 일원으로 참여하다 1975년 카터는 NRA 하부 조직인 ‘입법행동기구(Institute for Legislative ActionㆍILA)의 수장까지 오르죠. ILA는 미국 총기제작회사 및 관련 기업들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활동자금을 기부받는 알짜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터가 주도하는 ILA는 1980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하면서 정치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됩니다. 네오콘이 1980년대 당시 공화당의 정치노선으로 자리잡은 것 역시 NRA의 입김이 세진 배경중 하나였습니다.

NRA 노선이 어떻게 바뀌었는데?

이전까지 NRA는 총기소유권을 행사하기 앞서 ‘책임’을 강조하고 교육해왔었는데요. 네오콘의 NRA는 책임에서 발을 빼는 대신 총기를 소유할 권리에만 중점을 둔 로비 활동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사실 지금의 공화당 의원들은 거의 100% 총기 옹호 의견이지만 1990년대까지는 공화당 내부에서도 총기 규제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특히 1981년 3월30일 레이건 전 대통령의 암살미수 사건에서 당시 백악관 대변인 짐 브레이디가 총에 맞아 하반신 불구의 장애자가 되면서 공화당 내부에서도 규제 찬성 의견이 많았었죠. 지금처럼 정치성향에 따라 찬반 의견이 나뉘진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후 NRA가 막강한 로비력과 조직력을 동원해 공화당 내 총기 규제파들을 소수로 만들면서 공화당의 당론을 총기 옹호로 바꾸는데 일조하게 되죠. 또 폭스뉴스가 총기규제 폐지론자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면서 총기 규제는 민주, 총기 옹호는 공화라는 구도가 자리잡게 됩니다.

역사가 참 드라마틱하네. 그런데 NRA의 로비력이 엄청나다고 하는데 어느정도야?

각종 선거 때마다 선거자금과 표를 무기로 삼아 개입하고 있죠. 총기사고가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규제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것에는 NRA의 로비가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1994년 중간선거 때는 하원의원 276명에게 정치자금을 대서 이 중 211명을 당선시키는 데 공헌했죠.

도대체 돈을 얼마나 쓴 거야?

지난 5일 중립적 비영리 연구단체 ‘오픈시크릿(OpenSecrets)’의 발표에 따르면 NRA 등 총기 옹호단체가 1998년 이후 로비 활동에 쓴 돈은 1억9000만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는 같은 기간 총기규제 옹호단체들이 로비에 사용한 2890만 달러의 6배가 넘는 금액이죠. NRA 등은 특히 정치인과 정당 기부에도 ‘큰손’ 노릇을 해왔는데요. 이들 단체가 1989년 이후 올해까지 연방 공직 후보자와 정당에 기부한 돈은 모두 5050만 달러로 이중 99%가 공화당에 쏠렸다고 합니다. 특히 총기 옹호단체들의 정치 후원 1순위는 총기 소지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텍사스주 의원들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텍사스주는 지난달 19명의 초등학생 등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텍사스주를 대표하는 현직 연방 상·하원 의원이 재임 중 총기 옹호단체들로부터 받은 후원금은 1400만 달러가 넘었고, 이 중 상당액이 NRA로부터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NRA가 아무리 영향력이 있다해도 여론이 원하면 정치권에서도 규제법 만들어야 하는거 아냐?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우선 헌법이 첫 관문입니다.

헌법에 무슨 문제가 있는데?

수정헌법 2조에서 저항권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조항이 있는데요. 이 조항이 총기 소유권을 보장하는 근간이 되고 있죠. 아래와 같습니다.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치안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기본권을 보장한 헌법과 더불어 총기를 없애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가 있는데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현재 미국의 민간 총기 개수는 3억9330만여개로 전세계에서 압도적 1위입니다. 이 총기들을 다 수거하고 없애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죠. 그래서 총은 총으로 막아야 한다는 NRA의 이론이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죠.

총으로 총을 막을 수 있긴 해?

NRA의 회원들이 모는 차량에 붙여진 범퍼 스티커에서 NRA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데요. ‘총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Guns don‘t kill people, People kill people)’이라고 써있죠.
그런데 최소한 이 말은 정말 심각한 말장난입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각국의 핵폭탄 무장도 허용해야 합니다. 핵폭탄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니 말이죠.
또, 총을 총으로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공격용 소총을 든 난사범이 마켓에 침입했다고 가정해보죠. 정상적인 사람들은 마켓에 총기를 휴대하고 가지 않습니다. 휴대해도 10발 정도를 쏠 수 있는 권총 정도겠죠. 한번에 30여발 난사가 되는 총기를 든 범인과 총격전을 벌이는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방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엄청난 사격술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스스로를 보호하겠답시고 대응사격을 했다가 무고한 다른 사람이 총에 맞는 비극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현재 추진중인 총기 규제법 어떤 것들이 있어?

현재 상원에 계류 중인 총기 규제 관련 법안은 2건입니다. 하나는 무기 판매시 신원 조회 기간을 현재 3일에서 최소 10일로 연장하는 내용이죠. 또 다른 하나는 모든 총기 거래 때 신원 조회를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현재 온라인에서는 신원 조회 없이 총기를 살 수 있죠.

아니, 온라인으로 총을 아무나 살 수 있다고? 규제해야 하는거 아닌가. 통과가 어려운 이유가 뭐야?

민주당은 2개 법안의 처리를 촉구하고 있지만 공화당이 반대하기 때문인데요. 처리를 위해선 100명 중 최소 60명의 찬성이 필요한데, 상원은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 갖고 있습니다. 민주당 외 10석이 공화당에서 나와야 하지만 공화당에서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의원이 나오기는 사실상 어렵죠. 앞에서 말씀드렸듯 공화당은 최소한 지난 50여년간 총기 옹호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총기 단체의 후원금의 99%를 받고 있어서죠. 슬프지만, 이번에도 총기 규제의 목소리는 양은냄비속 물처럼 빨리 끓고 빨리 식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