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1만 달러는 누구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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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명 동사 #미국의 또 다른 민낯

지난주 뉴스레터에서 텍사스주의 테드 크루즈(50) 연방 상원의원의 ‘멕시코 칸쿤 외유’ 논란 소식을 전해 드렸었습니다. 텍사스에선 지난 16일부터 최악의 겨울 폭풍으로 정전, 단수가 겹쳐 사망자가 속출했었죠. 이 상황에서 크루즈 의원은 지난 18일 추위에 떠는 딸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따뜻한 남쪽나라’로 여행을 떠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아마도 크루즈 의원은 억울했을 겁니다. 여행지에서도 전화나 인터넷을 이용해 ‘원격 의정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죠. 그는 여행을 떠난지 하루만에 급히 귀국해 실수였다고 사과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의원직 사퇴 시위는 22일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민심이 이토록 분노한 이유는 이번 한파로 인한 텍사스의 피해가 그만큼 컸다는 걸 뜻합니다. 텍사스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얼마나 추웠던 건데?

거의 120년만의 최악의 한파였다고 합니다. 텍사스주도 아시다시피 비교적 날씨가 온화한 편입니다. 2월 평균 최저 기온은 화씨 58도(섭씨 15도) 정도에요. 그런데 한파 첫날인 16일 댈러스는 최저 기온이 화씨 -2도(섭씨 -18도)까지 뚝 떨어졌죠. 역대 가장 추웠던 날은 1903년 화씨 12도였다고 합니다. 사막과 폭염으로 유명한 텍사스 남부지역이 이날만큼은 극지방인 알래스카보다 더 꽁꽁 얼어붙었죠. 추위에 전혀 대비가 되지 않은 지역이라 피해는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상해보세요, LA에 이런 추위가 온다면요)

주민들 고생이 심했겠네 

먼저 발전 시설이 멈추면서 텍사스주 430만 가구에 정전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수도 공급도 차단됐습니다. 추위로 상수도 파이프가 터지거나 정수 처리장이 고장 났기 때문이죠. 또 도로가 얼면서 마켓들도 문을 닫아 식수, 식료품도 구하기 어려워졌습니다. 텍사스 주민들은 정전, 단수에 식품난까지 3중고에 시달려야 했죠. 위의 사진은 정전으로 추위에 떨던 한 주민이 차량 히터에 송풍구를 연결해 따뜻한 바람을 집안에 들어오도록 하는 웃지못할 방법까지 동원한 장면입니다. 기상학자 타일러 몰딘은 “이번 한파는 올해 들어 첫 10억 달러(약 1조 1020억원) 규모의 기상 재난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사망자도 많았다면서?

현재까지 최소 58명이 숨졌다고 합니다. 추위에 떨던 주민들이 자동차나 프로판 가스, 벽난로 등을 이용해 난방하려다 일산화탄소 중독, 화재 사고로 이어지면서 사망자가 늘었죠. 특히 아이들이 숨진 2건의 안타까운 소식이 지난 주말에도 주류 언론에 계속 보도됐습니다.

어떤 사연이길래?

지난 16일 텍사스주 슈거랜드에서 정전으로 추위에 떨다 벽난로를 피운 베트남계 일가족 4명이 화재로 사망했죠. 아랫층 벽난로에 불을 떼고 윗층 침실에서 잠든 75세 할머니 로안 리씨와 11살 올리비아, 8살 에디슨, 5살 콜레트 뉴엔 삼남매가 화재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이 지역은 8시간 이상 정전됐던 상황이었습니다. 아랫층에서 자던 삼남매의 엄마 재키 뉴엔씨는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화염이 덮친 상황에서 목놓아 아이들의 이름만 부를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참사는 휴스턴 교외 콘로의 이동주택에서 발생했죠. 같은날인 16일 크리스티안 파본(11)이라는 소년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추위를 이기려 옷을 몇겹이나 껴입고 잤지만 혹한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파본의 어머니 피네다씨는 텍사스주 전력회사 ERCOT을 상대로 1억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한파가 덮친 이유가 뭐야?

이번 혹한은 지구온난화와 관련이 깊습니다. 북극의 차갑고 건조한 극소용돌이가 남하하면서 한파를 몰고왔는데요. 원래 이 극소용돌이는 북극에만 머뭅니다. 북극을 둘러싼 제트기류가 마치 울타리처럼 이 소용돌이를 북극에만 가둬두죠. 그런데 온난화로 북극이 더워지면서 제트기류가 약해진 틈을 타 극소용돌이가 울타리를 넘어 남쪽으로 내려온 겁니다.

아무리 추워도 그렇지, 왜 이렇게까지 피해가 컸던거야?

크게 3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일단 전력의 민영화에 있습니다. 텍사스주는 2002년 완전 소매경쟁 체제를 도입하면서 연방정부 송전계통과 분리됐습니다. 연방정부의 전력망 체제에 편입돼 있지 않은 시스템은 이번 한파와 같이 비상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타 지역을 통한 전력 융통이 불가능하죠. 전기 민영화로 인한 전력수급 불안정 문제로 대란은 예상되어 왔습니다. 인구는 계속 증가하는데 민영화로 인한 폐해가 개선되지 않으면서 전력 예비율이 목표치(13.45%)를 밑돌아 2014년 이후부터는 줄곧 한자리 숫자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한파에서도 알 수 있듯 ‘폭탄 전기요금’이 현실화됐죠. ‘변동 요금제’가 적용되는 일부 업체에서 이번 한파 당시 전력 공급이 부족해지자 시간당 전기요금을 1메가와트(MW) 당 50달러에서 9000달러로 무려 180배 올리면서 방 3개짜리 가정집에 전기요금이 1만 달러가 부과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원인들은 뭔데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 재해에 전혀 대비가 안되어 있었다는 점이죠. 기억하시죠? 트럼프 행정부는 기후변화를 ‘사기’라고 치부하고 등한시해왔습니다. 지난해 8월말부터 캘리포니아 등 서부지역에 한달 넘게 산불이 휩쓸었었죠.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그해 9월11일 현장을 방문해 “낙엽을 치우지 않아서” 산불이 발생했다면서 기후변화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해 논란을 키웠죠. 애봇 주지사 역시 비슷한 대응으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애봇 주지사는 폭스뉴스에 나와 풍력·태양열 등 친환경 에너지원을 이번 대규모 단전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하지만 텍사스주의 전력망을 운영하는 전기신뢰성위원회(ERCOT)가 천연가스 공급 문제가 단전의 주된 원인이라고 밝히면서 애벗 주지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악화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미 1주일 이전부터 기상학자들이 기록적인 한파로 전력 공급이나 인프라가 위협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애벗 주지사와 주 정부가 귀 기울여 듣지 않는 바람에 대응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마지막 원인은 뭐야? 

어떤 참사든 그 원인들을 캐어나가다 보면 정치적 문제점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번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텍사스주는 대표적인 공화당 텃밭 지역입니다. 연방 상원의원 2명이 모두 공화당입니다. 35명의 연방 하원의원중 22명이 공화당이죠. 연방 의원들만이 아니라 그렉 애봇 주지사도 공화당, 주의회도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공화당은 기후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습니다. 또 친기업적 성향이 강하죠. 전력 민영화나 재생에너지 시스템 구축이 늦어진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 있습니다. 물론 한 지역의 정치 권력을 특정 정당이 독식하는 것은 텍사스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캘리포니아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죠.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선 강점입니다만 견제가 없는 정치는 독선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