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없는 총 고스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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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뉴스레터에서는 미국내 주요 현안을 정리해드리려 합니다. 1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수년사이 급증하고 있는 총격 범죄를 막기 위해 이른바 ‘유령총(Ghost Gunㆍ고스트건)’에 대한 규제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국내에선 물가 상승, 나라 밖에선 우크라이나 사태가 뉴스 헤드라인을 메우고 있는 상황에서 이날 발표는 다소 뜬금없게 들릴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총기 규제안은 정치권에서는 찬반 논란이 첨예한 현안이어서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칫 표를 잃어버릴 수 있는 정책이기도 합니다. 이런 여러 상황을 분명 감안했을텐데도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어조는 강했습니다. “범죄자들로부터 고스트건을 빼앗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죠. ‘고스트건’이 무엇인지, 또 규제 내용과 그 배경을 쉽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먼저, 고스트건이 뭐야?

우리말로는 ‘유령총’이라고 해석되는데요. 말 그대로 총기 매매 내역이 존재하지 않는 총기를 말합니다. 일련번호가 없어서 연방정부 총기 매매 데이터베이스에서 조회할 수 없는 총기들이죠. 10여년전까지만 해도 유령총이란 집에서 만든 조악한 사제총기나 일련번호를 지운 총기들을 뜻했는데요. 최근 수년간 유령총은 성능, 모양이 실제 공장에서 만들어진 총기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해졌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

3D 프린터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3D 프린터는 컴퓨터에 수치만 입력하면 뭐든 실제 제품과 똑같이 찍어냅니다. 인공 심장이나 뼈도 3D 프린터로 만들 수 있죠. 이전까지 총신, 몸체 등 일반인들이 공구만으로는 만들기 어려웠던 부품들을 이젠 3D 프린터를 이용해 클릭 몇 번만으로 생산할 수 있습니다.

에이, 말이 쉽지 일반인들이 어떻게 총을 만들어?

뭐든 모르는 것이 있을 때 ‘검색’ 하시죠? 인터넷에서는 총기 제조법도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유튜브를 통해  총기 제조법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3D 프린터로 부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설계도는 널려있습니다. 저도 검색해보니 위의 설계도를 쉽게 찾을 수 있었죠. 이 설계도를 3D 프린터에 입력하고 가볍고 튼튼한 ‘폴리머(polymer)’ 소재를 넣어주면 아무리 늦어도 12시간내 핵심 부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이마저도 힘들다면 조립만 하면 총으로 만들 수 있는 ‘DIY(do-it-youself) 키트’를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CBS방송의 탐사보도에 따르면 DIY 총기는 200달러면 구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총기는 일반인들도 20~30분이면 조립할 수 있습니다.
CBS방송 원문보기

총기 관련법이 엄격하지 않나? 어떻게 정부가 이걸 두고만 보고 있어?

맞습니다. 분명 규제법이 존재합니다만 사각지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먼저 현행법상 제조 판매 과정을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총기는 허가받은 제조업체에서만 만들 수 있습니다. 또 생산되는 모든 총기에는 일련번호를 새겨넣어야 하죠. 총포상에서도 구매자의 신원을 연방 주류·담배·화기·폭발물단속국(ATF)에 요청해 승인을 받아야만 판매할 수 있습니다. 구매자가 전과가 있거나 정신적 문제가 있을 경우엔 팔 수 없죠. 이렇게 판매된 총기는 연방정부 데이터베이스에 구매자 신원과 일련번호가 함께 저장됩니다. 혹시 총기가 범죄에 사용됐을 경우 구매자를 추적하기 위해서죠.

법에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언뜻 생산ㆍ판매 체계에 구멍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행법상 크게 2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판매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이 총기를 만드는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그러니 적절한 장비만 있다면 누구나 집에서 총기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죠. 또 다른 사각지대는 ‘총기의 법적 정의’에 있습니다. 총기에서 가장 핵심 부품은 탄창을 장착하고 방아쇠를 끼우는 ‘하부몸체(lower receiver)’입니다. 이 하부몸체를 제조 공정의 80%만 만들면 ‘총기’로 분류되지 않아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죠. 당연히 일련번호를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DIY 키트에는 이 하부몸체의 나머지 공정 20%를 완성할 수 있는 드릴과 제조설명서가 함께 들어있습니다. 사실상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총이 법적으로는 총기가 아닌 것으로 분류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이 어떻게 규제하겠다는 거야?

규제안은 완제품만 총기로 규정한 기존 정의를 변경해 권총 프레임, 몸체 등 부품에도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부품 판매 역시 총기와 동일하게 허가를 받은 거래상이 구매인의 신원을 확인한 뒤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총기 조립 키트는 물론이고 최근 늘어나고 있는 3D 프린터를 통해 찍어내는 부품에까지 모두 적용되죠. 또 유령총이 전당포 등으로 흘러 들어갈 경우 재판매 이전 일련번호를 부여받도록 의무화해 이들 유령총의 양성화도 유도할 방침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 발표한 거야?

갑자기 나온 정책으로 들리지만 사실 지난 1년간 준비한 규제안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4월8일 총기폭력을 ‘전염병’으로 규정하면서 유령총을 엄격하게 단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지난해 이맘때는 총기 난사 사건이 일상처럼 연일 터질 때였습니다. 참사를 막기 위한 조치가 11일 발표된 규제안이죠.

그런데 유령총하고 총기난사 사건들이 관계가 있어?

먼저 유령총이 얼마나 유통되고 있는지 정확한 수치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유령총이기 때문이죠. 다만, 심각성을 엿볼 수 있는 통계가 있습니다. 백악관에 따르면 지난해 해 동안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유령총은 약 2만 정에 달하는데요. 2016년에 비해 10배나 늘어난 수치라고 합니다. 총격 사망자 통계도 참담합니다. 지난 한해 미국내 자살을 제외한 총기 사망자는 2만726명에 달합니다. 총기 난사사건은 693건으로 702명이 숨지고 2800여명이 다쳤죠.

통계 말고, 유령총이 실제 사용된 사건이 있었어?

유령총이 사용된 총기 참사는 여러건이 있습니다. 유령총의 실체를 언론에 처음 알린 사건이 지난 2013년 샌타모니카 칼리지에서 발생한 총기난사인데요. 존 자와리(당시 23세)는 차량을 몰고 버스를 향해 총격을 가한 뒤 칼리지 캠퍼스에서도 총기를 난사했습니다. 8명이 숨졌고 범인 자와리도 경찰이 쏜 총에 숨졌죠. 자와리가 사용한 공격형 소총은 본인이 조립한 AR-15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규제가 효과가 있을까?

큰 효과를 거두긴 어렵습니다. 아시다시피 인터넷을 통한 판매를 일일히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더 큰 문제는 ‘총탄 규제’가 빠졌다는 점입니다. 총기를 가지고 있어도 총알이 없다면 총기는 무용지물이죠. 찾아보니 총탄 구입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는 주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일리노이, 매사추세츠 등 6개주에 불과합니다. 아이다호, 메인, 뉴햄프셔, 버몬트주 등에서는 16세 이상이면 누구나 총알을 구입할 수 있죠. 바이든 대통령의 표현대로 총기가 ‘전염병’이라면, 이를 막을 수 있는 완벽한 백신은 총기 규제 뿐만 아니라 총탄 규제도 포함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