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에게 자유를’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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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지난 일주일 이곳 LA지역의 유명한 관광지 가운데 한 곳인 샌타모니카의 한 영화관에서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됐습니다.  정확히는 8월 26일부터 9월1일까지 7일 동안이었는데요.
영화 제목은 ‘이철수에게 자유를(Free Chol Soo Lee)’이었습니다. 한인 언론에서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 일반 한인들 중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일 겁니다. 저도 아쉽게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이철수라는 이름은 기억하고 있어 관련 뉴스만 찾아봤습니다.
똑개비 208호는 그래서 점차 한인들 속에서도 잊혀져가는 ‘이철수 사건’을 재조명해볼까 합니다.

다큐멘터리 ‘이철수에게 자유를’의 포스터
이철수 사건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1970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한 한인 청년이 범인 누명을 쓰고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합니다. 이에 일부 뜻있는 한인들이 나서 결국 이 청년의 무죄를 입증합니다. 이 청년이 바로 이철수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살인누명을 쓴 재미동포 이철수를 재미동포사회가 나서 무죄를  입증한 사건이라고 정의하고 있네요.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1973년 6월 3일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중국 갱단의 간부로 활동했던 입이탁이 살해됩니다.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현장 인근에 있던 이철수가 체포됩니다. 체포될 당시 이철수는 총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범행에 쓰인 권총과는 다른 종류라는 것이 수사과정에서 밝혀집니다. 그럼에도 경찰 측은 3명의 증언에만 의지해 그를 살인죄로 기소합니다. 이철수는 결국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갖히게 됩니다.
그런데 이철수에게는 본인이 전혀 예상치 못한 수호신 같은 존재가 있었습니다. 새크라멘토의 지역 신문인 새크라멘토 유니언에서 사건사고 담당기자로 있던 이경원 기자가 이철수의 억울한 사정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고 마침내 1977년 6월 이 사건 내용을 신문에 보도합니다. 이로 인해 북가주 한인사회가 이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고 지역 유지와 한인회 등을 중심으로 구명운동에 나섭니다. 먹구름 속에서 한줄기 빛이 비치고 곧 푸른 하늘과 따뜻한 햇살을 약속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감옥에 있던 이철수는 1977년 10월 8일 함께 복역하고 있던 백인 갱 단원 모리슨 니드햄을 죽이게 됩니다. 이철수는 니드햄이 자신을 살해 협박했고 그를 죽인 것은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철수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설상가상이고 엎친데 덮친격이었지요.
사형수 이철수(오른쪽)씨를 감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이경원 기자
이경원 기자는 이를 다시 신문과 한인 인사들을 통해 알리고 본격적인 구명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당시 이철수의 법률구조활동에 관여하던 유재건 변호사와 이경원 기자를 중심으로 교사였던 그레이스 김, 일본인 3세 법대생 란토 야마다, 한인 3세 게일 황, 브렌다 백순우 등 아시아계 미국인 사회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다녔다고 역사는 전합니다. 이들 외에도 수 많은 한인과 아시안들이 후원금을 내고, 가두시위에 참여하고, 사법부와 정치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공개 재판정에 참석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적극 참여합니다.
지성이면 감천,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고 했나요?
사람들이 모이면서 구명위원회가 조직되고 후원금까지 쌓이면서 사설탐정까지 고용하는데 여기서 사건 당시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사건을 목격했던 결정적 증인 스티브 모리스씨를 찾습니다. 이를 근거로 차이나타운 살인사건에 대한 재심이 청구되고 재판부는 재심을 허락합니다. 1982년 8월 11일 재심이 시작되고 3주가 조금 지난 9월 3일 샌프란시스코 카운티 수피리어 법원 배심원단은 무죄 평결을 내립니다. 하지만 별도 사건인 모리슨 니드햄 살해사건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철수구명위원회 변호인단이 검찰과 플리바겐 협상에 나서 이철수가 이미 10년을 복역했으니 이 기간을 살인죄에 대한 복역기간으로 인정한다는 결정을 얻어냅니다. 결국 1983년 3월 28일 이철수는 자유의 몸이 됩니다.
이철수구명위원회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던 유재건 변호사는 이 사건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해졌고 이후 한국에서 시사토론 진행자로, 나중에는 국회의원 등을 지내며 정치인으로 활동했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미국 주요일간지 기자로 활동한 이경원 기자는 이철수사건 보도를 중심으로 이후에도 여러 기사 등을 통해 탐사보도전문기자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언론인 명예의 전당으로 불리는 워싱턴 언론박물관 ‘뉴지엄’에 20세기를 빛낸 언론인 500인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으로 올라있기도 하구요. 퓰리처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가 처음 이철수 사건을 보도한 새크라멘토 유니언지는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기자생활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한 언론사입니다.

다큐멘터리 ‘이철수에게 자유를’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이민 청소년 이철수의 삶과 소수민족에게 공정하지 못했던, 그리고 여전히 그 잔재가 남아있는 미국의 사법제도를 고발하고 있는데요.
이철수 사건을 담은 다큐멘터리는 줄리 하와 유진 이 감독이 공동으로 제작했는데 제작기간이 무려 6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두 감독이 사실 확인과 고증에 얼마나 신경 쓰고 이 작품에 시간과 정성을 쏟았는지가 엿보입니다.
두 감독은 한인사회에서 이철수 사건이 너무 쉽게 잊혀져 가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아시안 커뮤니티가 처음으로 미국의 사법제도에 맞서 승리를 거둔 역사적 사건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아시안 증오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이 시점에 아시안에 대한 차별의 역사를 돌아보고 이철수 사건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한 무고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미국에 있는 모든 한인이 하나로 뭉쳤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한인사회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냉정히 뒤돌아볼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