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그늘

2729

🔊팟캐스트로 듣기🔊

한국 축구가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채 경기를 마쳤습니다. 16강전에서 브라질에게 전반전에 많은 점수를 내주면서 또 다른 승리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 한국 선수들 너무나 잘 싸웠습니다. 예선리그 마지막 경기인 포르투갈전에서 보여준 투지와 기적으로 일궈낸 대역전승과 16강 진출 확정은 정말 짜릿했습니다. 4년 전, 8년 전보다 훨씬 안정되고 향상된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다음 대회를 또 기대하게 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준 축구 전사들에게 다시 고마움을 전합니다.
월드컵 대회는 이제 16강전을 모두 마치고 8강이 확정됐는데요. 모두가 예상하는 팀들이 8강에 올랐고 이변이라면 모로코가 스페인을 승부차기 끝에 누르고 오른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경기를 보면 모로코의 승리는 운이 아니라 충분한 실력을 갖춘 팀이 가질 수 있는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전문가가 모로코의 현재 실력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 동안의 전적과 FIFA 랭킹에만 의존해 스페인의 승리를 예상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모로코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피땀눈물이 빛을 발한 8강 진출을 축하하고 더 좋은 소식을 응원합니다.
이번 주 똑개비 뉴스 220호의 메인 뉴스는 월드컵 대회의 숨겨진 이면으로 잡았습니다. 여전히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수 많은 축구팬이 열광하고 다음 단계로 진출한 국가의 국민들이 들떠 있지만 그 화려함과 축제에 감춰진 슬픔과 어두움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짚어보려 합니다.

예선리그 3차전에서 강적 포르투갈을 2대1로 물리치고 16강행을 확정한 뒤 포효하는 대한민국 축가국가대표팀 선수들. [로이터]
코끼리 중에 드물게 하얀색 피부를 가진 코끼리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아주 신성한 동물로 여기는데요.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태몽으로 6개의 상아가 달린 하얀 코끼리가 옆구리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부터 귀한 존재가 된 것 같습니다. 태국에서는 국가의 수호신으로 대접받을 정도랍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하얀 코끼리는 처치곤란한 존재나 물건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쓰입니다.
옛날 한 왕이 자기가 싫어하는 신하에게 하얀 코끼리를 선물했던 이야기 때문인데요. 신하 입장에서는 왕이 선물한 코끼리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지 않을 수 없었고 이를 위해 하루 평균 200킬로그램 전후의 먹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건강상태까지 매일 신경 써야 해 재정적으로 심리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경제용어로 자주 쓰이는데요. 대형 행사를 치르기 위해 지었지만 행사 이후에는 거액의 유지비만 들고 효용가치는 거의 없는 애물단지가 돼버린 시설물을 ‘하얀 코끼리’로 표현합니다.
어느 나라이건 대규모 국제행사를 치르기 위해 건립한 시설물들이 바로 하얀 코끼리 신세가 되곤 하는데요. 짧게는 일주일 정도, 길어야 한 두 달 진행되는 행사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짓지만 행사가 끝나면 거의 무용지물로 남는 것이지요.
월드컵 축구대회 경기장 시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른 나라를 볼 것도 없이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해 치른 2002년 제17회 FIFA 월드컵 대회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당시 금액으로 2000억원을 들여 지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은 개막식과 개막전을 포함해 단 3경기만 열렸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각각 10개 경기장을 보수하거나 새로 건설했는데 20개 경기장에서 모두 결승전까지 64경기를 치렀으니 경기장당 서너 게임만 열린 셈입니다. 최소 4만명 이상, 많게는 7만명까지 수용해야 하는 경기장에 들어간 예산과 토지, 인력 등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요. 한 두 경기장을 제외하면 모두 관리비용 때문에 적자에 허덕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카타르 월드컵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월드컵을 위해 작은 나라 전체가 지난 몇 년 동안 공사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경기를 치르고 있는 8개 경기장 중 7개가 신축 경기장인데요. 이들 7개의 신축 경기장을 비롯 공항과 도로 등 각종 인프라 건설, 숙박시설 등을 새로 마련했습니다. 경기장 시설에 65억 달러, 인프라 구축에는 무려 2000억 달러가 투입됐다고 전해집니다. 이를 위해 남아시아에서 수십 만 명의 이주 노동자들을 동원했구요.
남한 면적의 10분의 1 정도의 크기에 인구도 대구 광역시 정도인 카타르는 월드컵 결승전이 끝나면 이들 축구 경기장들을 어떤 용도로 사용할까요? 돈이 넘쳐나는 나라이니 걱정 안 해도 되는 것일까요?
월드컵 대회는 경기장이나 인프라가 하얀 코끼리 같은 존재로 남는 것 외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카타르월드컵 축구 결승전이 열리는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 박린 기자
 카타르의 경우 경기장 건설에 남아시아 노동자들을 동원하면서 무리하게 공사장으로 내몰아 수많은 목숨이 사막에서 사라졌습니다. 10년 공사기간에 무려 6700명 이상이 숨졌습니다. 매일 2명 꼴인 셈인데요. 이 때문에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판과 함께 인권을 도외시한 카타르 월드컵을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카타르가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되는 과정 자체가 엄청난 부패의 산물이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카타르 개최에 표를 던진 22명의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중 16명이 부패와 비윤리적 과실 혐의로 조사를 받았거나 연루됐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지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일들이 구조적으로, 시스템화해서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고 극소수는 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는 것이지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2014년 브라질 월드컵,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개최 과정에도 부패와 소수계 핍박을 통한 착취는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강제 이주, 저소득층 생계 손실, 인권 침해와 노동권 축소, 공공서비스 질 저하 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육, 의료, 복지 등에 투입될 예산이 줄면서 가난한 사람만 더 고통받는 삶을 사는 것이지요. 한국에서는 2002년 월드컵 당시 각 지역마다 수천장의 무료 경기 관람권을 뿌려 민심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월드컵은 이외에도 기후와 생태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관련 공사와 경기 진행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해 온난화 등 지구의 기후 변화를 촉진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을 통한 경제 성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 뒤에는 누군가의 눈물과 죽음, 빼앗김, 파괴, 그리고 부패가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이 월드컵 축구를 축구로만 즐길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