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쟁 100일, 5가지 키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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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오늘(3일)로 100일째를 맞았습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1일 발표에 따르면 그동안 어린이 267명을 포함한 민간인 4149명이 숨지고 4945명이 다쳤습니다. 실제 희생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양측 군인 사상자는 수만 명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죠. 무고한 이들이 계속 죽어나가고 있지만 전쟁이 끝날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러시아는 공격을 멈추지 않고, 우크라이나도 서방 지원 속에 항전하면서 전쟁 장기화가 우려되고 있죠. 러시아산 석유·가스와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수출길이 막히면서 우리 살림살이에도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상황, 앞으로의 전망 등 5가지 키포인트로 정리합니다.

①키이우 탈환, 돈바스 혈투

2월24일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 러시아군은 사흘 안으로 우크라이나 북쪽 수도 키이우를 점령할 수 있다고 봤지만 오히려 북부 전선에서 퇴각한 끝에 개전 100일이 지난 현재 동부 돈바스(루한스크·도네츠크주) 지역과 남부 해안도시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키이우를 포기한 러시아는 4월22일 ‘2단계 작전’을 선언하고 루한스크주의 세베로도네츠크 등 전략요충지인 소도시에 공세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은 도시를 포위해 무차별 폭격으로 초토화한 뒤 지상군을 투입해 점령하는 악명높은 전술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지난달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도 우크라이나 병력의 최후 항전지 아조우스탈 제철소도 이런 전술로 항복을 받아냈죠. 러시아는 현재 루한스크주를 거의 장악한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는 도네츠크주에서도 마리우폴에 이어 북부 슬라뱐스크, 크라마토르스크 점령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선이 120㎞ 정도로 좁은 지역 전투에서 러시아가 계속 우세하면 우크라이나로서는 돈바스 전체가 위태로워집니다. 돈바스는 러시아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러시아가 돈바스를 손에 넣으면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로 직접 이어지는 육로를 구축해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공격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죠.
우크라이나는 수도를 지키고 제2도시 하르키우를 탈환하는 전과를 거뒀지만 영토의 10% 정도인 돈바스를 잃으면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돈바스가 러시아에 넘어간다면 이후 휴전·평화 협상이 교착될 수도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이전 상태로 되돌려야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입장이기 때문이죠.

②러, 우크라 영토 잘라먹기

러시아는 태세 전환과 함께 전열을 재편해 동부의 기존 점령지를 거점으로 삼아 점령지를 서서히 조금씩 늘려가는 모양새입니다. 키이우, 하르키우 등 대도시에서 철수했지만 점령한 소도시에서는 주민, 행정체계, 문화를 러시아에 통합하는 작업이 진행중인데요.
헤르손에서는 5월부터 러시아 루블화가 법정화폐로 지정됐고 마리우폴, 헤르손, 자포리자에서는 주민에게 러시아 여권이 쉽게 발급되고 있습니다. 푸틴 정권을 대변하는 러시아 국영방송은 점령지의 언론을 대체해 주민들에게 러시아식 세계관을 주입하고 있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물리적 공격과 문화적 침탈을 아우른 이 같은 공세를 제노사이드(표적집단 말살)로 비난했습니다.  돈바스 지역도 초토화 뒤 러시아에 넘어간다면 헤르손, 마리우폴과 같은 과정을 걸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범위가 돈바스 내에서 얼마나 넓어질지, 돈바스를 넘어 우크라이나의 다른 부분까지 확대될지는 미지수입니다.

③둘로 쪼개진 세계 ‘신냉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 안보 지형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역사적 변수’가 됐습니다. 냉전 시대를 거쳐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지난 30여년간 지역적, 국소적 분쟁외엔 어느정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국제 안보질서는 이번 전쟁으로 변곡점을 맞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죠.
우크라이나에서 울린 총성은 굳건했던 미국 ‘1강 체제’에 도전하는 러시아와, 이에 중국이 가세하면서 세계는 다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 진영’과 러시아·중국이 구심점이 된 ‘반미 진영’으로 나뉘는 신냉전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유로 내세운 것중 하나는 나토의 동진이었습니다. 1997년 ‘나토·러시아 조약’으로 상호안보를 보장하기로 했지만 이후 나토가 약속을 어기고 구소련 국가를 받아들이며 동진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러시아가 턱밑에서 전쟁을 일으키자 서방은 그간 느슨했던 대오를 정돈하고 세를 규합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동유럽 주둔 병력을 늘리면서 러시아에 맞섰습니다.
현재 동유럽에서 나토가 직접 지휘하는 병력은 우크라이나 전쟁 수개월 전보다 10배가량이 늘어난 4만명입니다. 70여년간 군사적 중립국 지위를 고수했던 핀란드와 스웨덴도 군사 비동맹주의라는 원칙을 스스로 깨면서 나토 가입을 신청했죠. 러시아는 나토가 동진해 자국의 국경에 더 접근해 위협한다면서 전쟁을 일으켰지만 오히려 이들 두 중립국이 새로 동참한 서방의 군사 연합 나토가 러시아를 향해 한 발 더 전진하는 결과가 됐습니다.
러시아는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나토의 동진이라며 핵 대응을 포함한 강경 대응을 예고해 동서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여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작용에는 반작용이 있습니다. 서방 동맹에 대항해 중국이 러시아의 가장 큰 우군이 됐습니다. 국제사회 대부분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크게 규탄했을 때도 중국은 비판을 삼가며 모호한 태도를 보였는데요. 러시아 정부의 돈줄을 죄는 에너지 제재에도 중국은 러시아 원유를 싼값에 사들이며 크렘린궁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습니다. 양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한일순방 기간에 맞춰 24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처음으로 동중국해에서 합동 정찰을 벌이는 위력 시위도 했죠.

④전세계 밥상 때린 포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경제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의 곡창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곡물 수출이 줄면서 가격이 급등했고, 러시아가 자국에 대한 제재에 에너지를 무기화하면서죠.
‘경제 전쟁’의 여파는 무기의 전장인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전세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2년여에 걸친 팬데믹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닥친 전쟁으로 전세계 공급망의 혼란이 가중됐고 인플레를 수십 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죠.
우크라이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비옥한 흑토지대로 ‘유럽의 빵공장’이라고 불릴 만큼 밀, 옥수수, 해바라기씨유 등이 풍부하게 산출됩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함께 전세계 밀 생산량의 14%를 담당합니다. 두 국가의 밀 수출은 전세계 수출량의 29%에 이르죠.
곡물 수출이 어려워지자 국제가격은 연일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데요. 이 상황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주요 수출 통로였던 흑해 항구를 봉쇄하는 바람에 곡물 약 450만t이 컨테이너에 쌓였습니다. 서방은 러시아가 전세계를 상대로 식량을 인질로 잡고 있다며 봉쇄 해제를 요구했지만 러시아는 자국에 대한 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그 사이 위기는 세계로 번지고 있습니다. 전쟁 전에도 기후위기, 팬데믹, 사료·비룟값 인상이 덮친 식량 시장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자 곡물뿐만 아니라 육류 등 먹거리 전반으로 인플레가 번지고 있습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육류는 17%, 밀 등 곡물은 34%, 식물성 기름은 46%나 급등했습니다.
에너지 가격 폭등도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서방이 대러 제재 고삐를 죄자 러시아는 에너지를 무기로 맞대응하고 있습니다. 특히 원유는 수급 불안으로 가격이 치솟았습니다. 대러시아 제재 우려로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해 130달러선까지 넘나들었습니다.
이런 경제적 타격은 빈곤국부터 덮치고 있습니다. 선진국과 비교해 가진 정책수단이 많지 않은 이들 국가는 달러화 강세에 따른 수입 가격 상승, 시장 변동성 확대로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죠. 식량부족, 물가 폭등에 따른 민생고는 정치적 혼란을 부를 수 있는데요. 2010년 말 중동·북아프리카에 번진 ‘아랍의 봄’ 역시 식량문제가 시발점이었습니다.

⑤복잡한 ‘종전 방정식’

전쟁은 우크라이나에서 터졌지만, 안타깝게도 종전 결정권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는 없는 듯합니다.
열강들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호에 게재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 끝날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서방 국가들이 각자 입장을 내세우며 두 팀으로 나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불가리아 싱크탱크 자유전략센터(CLS)의 이반 크라스테프는 이코노미스트지에 빨리 전투를 중단하고 협상을 시작하라는 ‘평화팀’과 러시아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정의팀’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평화팀’ 측은 전투가 길어질수록 우크라이나와 세계의 비용이 커진다고 걱정하지만 ‘정의팀’ 측은 러시아 제재 효과가 이제 나오기 시작했으며 시간과 무기가 더 제공되면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평화팀’에 속한 독일은 휴전을 요구하고 이탈리아는 정치적 합의를 위해 4단계 계획을 제안하고 있고 프랑스는 러시아가 굴욕을 겪지 않는 미래 평화 협정을 꺼냈습니다. 반대편인 정의팀에는 영국의 목소리가 가장 크고 이어 폴란드, 발트해 연안 국가들이 뜻을 함께 하고 있죠.
미국의 입장은 모호합니다. 도움을 주되 무제한은 아니라는 선을 긋고 있죠. 예를 들어 포를 제공했지만 우크라이나가 요구하는 장거리 로켓은 주지 않는 식입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지금은 우크라이나인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명제가 분열을 막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선택은 서방이 제공하는 것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기도 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셈법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대부분의 국가가 러시아의 완패를 바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의 완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인데요. 패전한 러시아가 나토를 공격하거나 화학무기와 심지어 핵무기까지 쓸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이 때문에 이코노미스트지는 전쟁이 끝나는 시점은 상당 부분 러시아에 달려있다고 봤습니다. 우크라이나 정치 분석가 볼로디미르 페센코는 “정말 교착상태가 되고 양측이 그렇게 인식한 뒤에야 타협이 가능할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도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6일자 ‘(우크라이나 전쟁)어떻게 끝날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각국 정치지도자들이 우크라이나 승리를 원하고 있지만 표면 아래에는 승리의 형태는 물론 미국, 유럽, 우크라이나에서 승리의 정의가 같은지를 두고 분열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