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주일’ 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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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는 지금 #전황 장면 다섯가지

오늘(8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3일째를 맞습니다. 우크라이나 현지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습니다. 7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세 번째 평화회담을 열었지만 전황을 바꿀만한 합의는 하지 못했습니다. ‘인도주의 통로 노선’에 대해서만 일부 뜻을 모으는 데 그쳤죠. 인도주의 통로란 민간인의 안전한 대피를 위해 쌍방이 공격을 중지하는 구역을 말합니다. 양측은 오늘부터 이 통로를 가동하고 조만간 4차 회담을 열기로 한 뒤 헤어졌습니다. 양국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은 시간에도 총성은 계속됐습니다. 수도 키이우 북쪽 외곽 도시들을 겨냥한 러시아군의 공세가 강화돼 민간인 피해가 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날 키이우의 빵 공장이 공습을 받아 최소 13명이 숨졌고, 남부 미콜라이우에서는 러시아군의 로켓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군인 8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유엔 인권사무소는 개전 일인 지난달 24일 오전 4시부터 7일 0시까지 민간인 사망자는 어린이 27명을 포함한 406명, 부상자는 801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습니다.
여기까지가 7일 현재 우크라이나의 전황입니다. 지난 두차례 뉴스레터에서도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설명드렸지만 정작 중요한 소식들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현지 국민들의 일상입니다. 유튜브 등 SNS에서 지금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찾긴 어렵지 않습니다. 동영상과 함께 ‘5가지 장면’을 꼽아봤습니다.

장면 #1 ‘용서의 주일’ 폭격

현지 시간으로 지난 6일 수도 키이우 북서쪽의 작은 도시 ‘이르핀(Irpin)’이라는 곳에서 대피하는 주민들을 향해 러시아군이 박격포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 공격으로 일가족을 포함해 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박격포 포탄이 떨어지는 순간의 동영상을 먼저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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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은 안드리 더브첵이라는 프리랜서 기자가 촬영했습니다. 57초 분량의 동영상에 찍힌 곳은 일반 주택가입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남성이 도로변의 펜스를 잡고 숨을 고르면서 기자를 향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죠. 그 뒤편으로 주민들이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대피하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영상을 재생한 지 불과 11초만에 이 남성 바로 뒤 도로 한가운데에 포탄이 떨어져 폭발하고 남성은 그 충격으로 뒤로 튕겨져 나가죠. 화면은 잠시 캄캄해졌다가 먼지가 가라앉자 폭격 후 참상이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뒤편 거리 곳곳에 시민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고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그들을 돕기 위해 뛰어갑니다. 이 공격으로 8살 소녀와 소녀의 10대 오빠, 엄마를 포함해 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폭격 직후 더브첵 기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이 영상은 전세계로 확산했고 주요 언론들이 속보로 보도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뉴욕타임스의 7일자 1면에 실린 이 폭격의 피해자들입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6일 밤 이 영상을 확인하고 분노를 금치 못했습니다. 그는 동영상을 통해 아래와 같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피해 시민들은 그저 동네를 빠져나가려 했을 뿐이다. 탈출하려고 말이다. 일가족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죽었는가? 우린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절대 잊지도 않을 것이다. 우린 이 전쟁에서 잔학 행위(atrocities)를 저지른 모든 인간들을 처벌할 것이다.”
러시아의 공격을 향해 극도의 분노가 표출된 것은 폭격 당일이 갖는 의미 때문이기도 합니다. 7일은 동방정교회의 ‘용서의 일요일’이었다고 합니다. 이날 이르핀에서는 총 2000여명의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공격을 피해 탈출했죠.
이르핀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전황들을 종합하면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작전으로 국면 전환을 노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러시아가 시리아 전투원을 모집해 시가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6일 전했었죠. 러시아군이 대규모 시가전을 벌일 경우 민간인 희생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7일 뉴욕타임스는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집결했던 러시아군의 95%가 전선에 투입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장면 #2 홀로 국경넘는 아이

이번 동영상은 불과 26초짜리 영상입니다만, 가슴이 먹먹합니다. 자녀가 있는 부모님들이라면 다들 안타까워할 장면이죠. 지난 5일 우크라이나와 접경 지역인 폴란드의 국경 검문소 메디카(Medyka)에서 찍힌 영상인데요. 이제 7~8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혼자 국경 검문소를 향해 걸어가는 장면입니다. 한번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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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공개한 스카이 방송측은 이 남자 아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호자 없이 아이 혼자 울면서 국경을 넘는 모습은 전쟁의 참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는 가방 하나 없이 오른손엔 잘 때 안고자는 인형이 든 비닐봉지와 왼손엔 과자 하나를 들고 터벅터벅 검문소를 향해 걷고 있습니다. 아이가 혼자 어떻게 검문소에서 살아갈 지, 가족을 만날 수 있을 지 딱하기만 합니다.
아시다시피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피난 행렬은 서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동쪽은 러시아, 북쪽은 러시아의 우방 벨라루스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서쪽 폴란드가 가장 빠른 탈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침공한 이래 100만명 가까운 우크라이나인들이 폴란드로 피신했죠. 그 길목이 바로 이 아이가 있는 메디카 국경검문소입니다. 수도 키이우에서 메디카까지 거리는 634km에 달합니다. 쉽지 않은 여정을 통과해야만 하죠. 매일 이곳에선 눈물의 포옹들이 반복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으로 먼저 도착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뒤늦게 검문소에 온 가족과 친지와 감격 속에 재회하는가 하면 이곳에 처자식과 노모를 두고 모국으로 참전하기 위해 장정들이 눈물을 삼킨 채 우크라이나로 돌아서는 곳이기도 합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멀고도 가까운 이웃이었습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앙숙관계였죠. 양국은 같은 슬라브계 영향권에 속해 언어·문화가 비슷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워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서부 대도시 리비프와 폴란드 제2도시 크라쿠프를 포괄하는 갈라치아 지방을 놓고 중세부터 끊임없이 영토 분쟁을 이어왔었죠. 특히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폴란드인 대량 학살 사건 등으로 양국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폴란드는 이번 러시아의 침공 이후 국경을 활짝 열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난민 수용시설을 마련하고, 필요한 물자들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장면 #3 방공호속 ‘렛잇고’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한 방공호 안. 작은 의자를 무대 삼아 한 여자아이가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제곡 ‘렛잇고(Let it go)’입니다. 방공호 안에 누워있거나 기대있던 어른들이 하나둘씩 노래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일부는 눈물을 훌쩍이기도 했습니다. 동영상 먼저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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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지난 3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신인 마르타 스메호바의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게 꿈이었던 어밀리아는 피난민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죠. 영상 속에서 어밀리아는 의자 위에 올라서서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스메호바는 페이스북에서 “아이는 방공호가 시끄러워서 잘 들리지 않을 거라며 머뭇거렸지만, 괜찮을 거라고 용기를 줬다”고 말했습니다.
어밀리아가 첫 소절을 부르자 이내 주변이 조용해졌습니다. 맑고 깨끗한 소녀의 목소리는 사실 방공호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감동을 안겨줬죠. 유모차에 탄 아이를 돌보던 여성이 눈물을 훔치고,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고 있던 남성도 코를 훌쩍였습니다. 영상에는 30여 명의 사람들이 짐 쌓인 방공호 안에서 눕거나 기대 힘겹게 버티고 있는 모습도 담겼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방공호 안의 사람들은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쳐 어밀리아에게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이 영상은 페이스북에 올려진 지 4일 만인 7일 현재까지 305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전세계를 울리고 있습니다.

장면 #4 최전선의 결혼식

우크라이나의 한 커플이 러시아와 싸우는 최전선에서 22년간 미뤘던 결혼식을 올려 화제입니다. 영국 가디언이 지난 6일 올린 동영상부터 한번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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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레시아 이바슈첸코와 신랑 발레리 필리모노프는 이날 러시아군에 둘러싸인 우크라이나 키이우 최전선에서 식을 올렸습니다. 신부는 면사포와 화관 위로 철모를 썼죠. 신부 이바슈첸코는 러시아의 침공 후 방위군에 합류해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다 이날 결혼식을 치렀다고 하는데요.
22년째 동거를 하다 결혼식을 결심한 이바슈첸코는“남편이 살아 나와 함께 있어 행복하다”며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조국과 신 앞에서 결혼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우리의 미래와 삶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적들을 물리치고 우리 땅을 회복할 것”이라고 투지를 보였습니다. 결혼식에는 비탈리 클리츠코 키이우 시장도 참석해 축하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잘 알려진 가수이자 함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타라스콤파니첸코는 기타를 가져와 이들의 결혼식을 축하했습니다.
하객들은 한 손에 총을 들고 행진을 하는 부부에게 장미꽃을 뿌려줬습니다.

장면 #5 트럼프의 승전 전략

우크라이나에서 전해지는 안타까운 소식들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나 봅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을 내놓았는데요. 위험천만한 그의 생각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는 최근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와 중국이 서로 싸우도록 미 전투기가 중국 국기를 달고 러시아군을 폭격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7일 CNN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기부자들에게 “(미 전투기가 중국 국기를 달고 러시아를 폭격한 후) ‘중국이 했다. 우리는 하지 않았다’고 말한 뒤 중국과 러시아가 서로 싸우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면 된다(China did it, we didn’t do it, China did it,’ and then they start fighting with each other and we sit back and watch)”고 말했습니다.
행사에 참여한 250명가량의 고액 기부자들은 미군의 F-22 전투기를 사용해 가짜 깃발 작전을 펼치자는 그의 제안에 웃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했던 지난달 22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상식적이고 뛰어난 인물’이라고 칭찬했다가 쏟아지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죠.
쏟아지는 포탄속에 가족을 잃고, 어린 아이가 부모와 헤어져 홀로 국경을 방황하고 방공호 속에서 어린 소녀의 노래 한곡에 희망을 꿈꾸며, 최전선에서 싸우다 죽을 수 있어 결혼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가짜 깃발 전략은 어떻게 들릴까요? 또, 농담으로라도 해서는 안 될 타국의 참상에 웃음을 터트린 이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들일까요. 이들과 같은 미국에 살고 있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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