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힙합가수, 트럭 운전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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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힙합 가수 #미국서 트럭커로
꿈튜버꿈튜버 코너에서는 독특한 유튜버들을 소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특한 점이 무엇이든 말이죠. 41번째 주인공 역시 특별한 분입니다. 유튜브에서 ‘텍사스 트럭커’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김도형(41)씨인데요. 예명에서 눈치채셨겠지만 김씨는 대형 트럭 운전사입니다. 전국을 누비면서 장거리 화물운송 트럭 운전사의 일상을 영상으로 찍어 올리고 있죠. 유튜브에는 비슷한 콘텐츠의 다른 한인 트럭 운전사들도 많습니다. 굳이 김씨를 콕 집어 소개하는 이유는 독특한 이력 때문입니다. 그는 19세때 한국에서 힙합 그룹으로 활동했던 원조 K팝 가수입니다. 꽃미남 래퍼에서 텍사스 트럭 운전사로 변신한 그의 삶, 함께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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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씨는 9개월 전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첫 영상의 제목은 ‘춤추는 트럭커 #1’입니다. 주차된 대형 트럭들 사이 공간에서 힙합 댄스를 추는 영상이죠. 앞서 말씀드렸듯 요즘 유튜버로 활약하는 한인 트럭 운전사들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김씨의 영상을 보고 처음에는 춤 잘 추는 젊은 트럭 운전사겠거니 생각했는데요. 그런데 이후 영상에서 그는 하나씩 순탄치 않았던 지난 삶을 털어놓습니다. 인간적이고 솔직한 그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공감을 얻기 충분했습니다. 특히 3번째 올린 영상은 조회 수 109만 회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얻었는데요. 제목은 ‘텍사스주에서 트럭커로 사는 올해 마흔된 1999년도 힙합가수 김도형’입니다.
영상을 본 뒤 정말 힙합 가수로 활동했었는지 찾아봤습니다. 사실이더군요. ‘IT’라는 힙합그룹 1집 앨범 커버 표지를 인터넷에서 찾았습니다. 바로 위 사진인데요. 세 명 중 오른쪽이 1999년 19살 시절 도형 씨입니다. 데뷔 당시 모 언론과의 인터뷰 기사도 있더군요. 그룹명 IT는 ‘Infinite Track’의 줄임말로 무한한 가능성과 음악적 욕구를 표현한다는 의미였다고 해요. 한인 1.5세 3인조 그룹으로 정통 힙합을 추구했다고 해요. 요즘은 힙합이 한국에서도 대세지만 당시는 힙합이 갓 태동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현진영,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의 영향을 이어받은 10대 가수들이 1990년대 말부터 쏟아지기 시작했죠. 특히 1999년은 한국 힙합 역사에 기념비적 음반이 다수 나온 해라고 해요. 신인 그룹들이 하루에 몇 팀씩 쏟아지던 때였으니 주목받기 쉽지 않았겠죠. 꿈을 이루지 못한 도형씨도 미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죠.

도형씨의 유년시절은 넉넉치 않았다고 합니다. 1980년생인 도형씨는 5살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친할머니 아래서 자랐다고 해요. 바나나, 파인애플, 스팸같은 건 꿈 속에서나 맛볼 수 있던 음식이었다고 하네요. 할머니는 어려운 살림에도 매일 밤 울면서 도형씨를 위해 기도해주셨다고 해요. 그러다가 13살때 아버지께서 재혼을 하셨고, 시민권자인 새어머니를 따라 가족이 LA로 이민을 오게됐답니다. 한인타운 한복판 아파트에서 살게됐는데 그때 처음 침대에서 자봤고, LA갈비라는 것도 맛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제일 좋았던 건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입밖으로 꺼내기 어색하지만 말하고 나면 뭔가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단어’였다네요.

도형씨는 15년차 트러커입니다. 가수 꿈을 접고 미국에 돌아와 시작한 일중 하나가 이삿짐 트럭 운전사였다고 해요. 월급 3000~4000달러를 준다는 말에 시작했다고 합니다. 19살 한국에서 가수로 활동하면서 만난 첫사랑인 아내와 결혼한 그는 생계를 꾸려야 할 상황이었다고 해요. 주로 캘리포니아에서 타주로 이사 가는 짐들을 날랐는데요. 작은 회사에서 일하다가 대한통운 기사를 거쳐 롱비치 항구 트럭 운전사로 경력을 쌓았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절이었다고 해요. 조금씩 모은 돈으로 지금 몰고 있는 2010년형 볼보 대형 트럭을 구입했고, 주류 대기업과 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습니다. 사는 곳도 집값이 상대적으로 싼 텍사스로 이주했죠.

무대 위에서 랩과 힙합 댄스를 추던 도형씨는 지난 15년간 가장의 역할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길 위에서 보냈습니다. 트러커로 일하면서 제일 힘든 점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어요. “장거리 트럭 운전사가 처음엔 자유롭고 멋있게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힘든 일이에요. 먹고 싶을 때 못 먹고, 자고 싶을 때 못 자고, 씻고 싶을 때 못 씻고 가족과 오래 떨어져 살아야 하니까요.
그 불편한 직업을 감내해오는 동안 도형씨는 아이 셋을 둔 40대 중년 아저씨가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힙합의 꿈을 접지 않았습니다. 장거리 운전을 하다가 잠시 쉬어가는 주차장에서 스마트폰으로 댄스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며 ‘가수 김도형’을 잊지 않으려 땀을 흘리고 있죠. 도형씨는 영상을 제작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처럼 자라온 아이들에게, 저처럼 사는 다른 트러커들에게 이 영상을 통해 부족하지만 좋을 영향을 끼치고 싶습니다.
춤추는 트러커 도형씨, 한인들도 함께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