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으로 돌아선 연방대법원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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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대법원이 최근 수년에 걸쳐 민감한 이슈들에 대해 잇달아 보수적인 판결을 내놓으면서 이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보수와 대척 점에 서 있는 진보 세력이 앞장서고 있는데요. 특히 민주당 입장에서는 대법원의 판결이 여간 화나는 일이 아닙니다. 내년에는 대선까지 치러야 하는데 현재 정권을 잡고 있지만 민주당 쪽에 불리한 판결만 내놓으니 여당 프리미엄은 없고 오히려 불리한 입장에 처했다고 정치 전문가들이 판단할 정도인데요.

민주당 쪽에서는 이런 사태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적극적인 대법원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세력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민주당 인사들은 정치적으로 편향된 판결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연방 대법원 시스템에 대해 전면적인 손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합니다. 종신직인 연방 대법관의 임기를 제한하거나 대법관의 숫자를 크게 늘려 이념적 구성 비율에 따른 정치적 판결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민주당 소속인 돈 바이어(버지니아) 하원의원과 로 칸다(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연방 대법관의 임기를 18년으로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는데요. 이 법안은 당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임기제한 규정은 법안이 발효된 이후에 임명되는 대법관부터 적용하고 임기 종료 뒤에는 하급 법원에서 계속 복무가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임기 제한과 함께 거론되는 개혁 방안은 대법관 인원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현재 9명인 정원을 13~15명 정도로 늘리는 주장인데요. 이와 관련해서는 연방 의회 진보 모임(Progressive Caucus)이 활동해왔는데 최근에 이런 개혁을 위한 노력에 다시 나섰다고 합니다. 일부 상원의원도 대법관 확대안을 지지하고 있고 낙태권 옹호 단체인 가족계획협회(PP) 등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대법관 확대에 대해서는 민주당 안에서도 반대하는 세력이 적지 않습니다. 당장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법관 확대에 대해서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한 상태인데요. 이는 대법관을 늘린다 해도 대법원의 정치적 편향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없는 데다 인적 확대 추진 자체가 정치적으로 분열적인 논의 주제라는 판단 등에 따른 것입니다. 오래 전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뒤 1937년 연방 대법관이 70세까지 은퇴하지 않을 경우 추가로 새 대법관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대법관을 증원하는 이른바 ‘법원 패킹(court packing)’ 법안을 추진했지만 결국 실패한 바 있습니다.

연방 대법원이 보수적인 대법관으로 구성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가 재임하는 동안 잇단 결원이 생기면서 3명의 대법관을 새로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고 그는 이들 모두를 보수 성향 법관으로 채우면서 지금의 ‘보수 6 대 진보 3’의 구도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대법원은 각종 주요 이슈와 관련이 있는 소송 건에 대해 이전의 판결까지 뒤집으며 그야말로 기존의 사회 질서나 제도, 법, 인식 등을 완전히 바꾸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연방 차원의 낙태권을 인정한 판결을 폐기하고 소수인종 대입 우대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이렇게 일상의 삶을 급격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대법관들에 대해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약화하고 있다는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는데요. 연방 대법관은 그럼에도 한 번 임명되면 그야말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막강한 자리입니다. 종신직으로서 탄핵을 당하거나 사망, 사직 등의 사유가 발생해야 새 인물로 교체할 수 있는데요.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 인준 등의 절차를 거쳐 공식 임명되는데 보통 대통령이 속한 정당의 정치 성향을 따르는 법관을 지명합니다.
연방 대법원 소속 대법관들에 대해서는 정의의 화신이라는 의미에서 ‘저스티스(Justice)’라는 명칭으로 부릅니다. 연방 대법관은 모두 9명이며 대법원장(Chief Justice) 1명과 8명의 대법관(Associate Justice)로 구성됩니다. 건국 당시 6인 체제로 시작한 뒤 7인, 9인, 10인까지 늘었다가 1869년에 다시 9인으로 줄어든 뒤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원합의체 형식으로 판결을 내리는데요. 매년 8000~1만 건 정도 올라오는 상고를 대법관별로 심사해 4명 이상이 찬성해야 상고가 허가되는 철저한 상고허가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실제로 1년에 진행되는 재판은 80~100건 정도에 그칩니다.

2023년 7월 5일 현재 연방 대법원을 구성하는 대법관은 다음과 같습니다.

@존 로버츠(John G. Roberts, 68) 대법원장, 조지 W. 부시 대통령 지명으로 2005년에 임명됐습니다. 보수 성향이지만 현직 대법관 중에 보수 성향이 더 강한 구성원이 많아 지금은 오히려 약보수나 약진보로까지 분류되고 있습니다.

@클래런스 토머스(Clarence Thomas, 75) 대법관, 조지 H.W. 부시 대통령 지명으로 1991년에 임명. 현직 대법관 중 최장수 재임. 흑인 임에도 최고 강경 보수로 꼽힘.

@새뮤얼 알리토(Samuel A. Alito, 73) 대법관, 조지 W. 부시 대통령 지명으로 2006년에 임명. 정부나 공권력에 상당히 우호적인 성향이 강하고 성이나 인종 차별주의적 성향이 있다는 평가가 있음.

@소니아 소토마요르(Sonia Sotomayor, 69, 여성) 대법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지명으로 2009년에 임명. 어퍼머티브 액션이 없었다면 자신이 대법관 자리에까지 오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고 주장.

@엘레나 케이건(Elena Kagan, 63, 여성) 대법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지명으로 2010년에 임명. 화합을 주도하는 대법관으로 분류. 대체로 만장일치인 결정의 판결문을 집필하는 것으로 알려짐.

@닐 고서치(Neil M. Gorsuch, 55) 대법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명으로 2017년에 임명. 오바마 재임시절인 2016년 2월 앤토닌 스컬리아 대법관이 갑자기 사망해 대법관 자리에 공석이 생겼으나 공화당에서 차기 대통령이 새 대법관을 지명해야 한다고 해 트럼프가 선택한 인물.

@브렛 캐버노(Brett M. Kavanaugh, 58) 대법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명으로 2018년에 임명. 청문회 과정에서 조지 W. 부시 정권 시절 이메일 해킹과 관련해 의회에서 위증한 혐의와 고교 시절 집단 성폭행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50대48로 아슬아슬하게 상원 인준 받음.

@에이미 코니 배럿(Amy C. Barrett, 51, 여성) 대법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명으로 2020년에 임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2020년 9월 췌장암으로 타계하면서 생긴 빈 자리 차지. 근본주의 성향의 가톨릭 신도로 전통적인 보수주의자.

@커탄지 브라운 잭슨(Ketanji B. Jackson, 52, 여성) 대법관, 조 바이든 대통령 지명으로 2022년에 임명. 미국 독립 이후 233년만에 처음으로 탄생한 흑인 여성 대법관.

이들은 앞으로 또 어떤 판결을 내놓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