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LA 차이나타운 중국인 학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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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미국에서 아시안에 대한 크고 작은 인종차별적인 증오 범죄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뉴스를 통해 다 알고 계시죠? 특히 뉴욕이나 LA, 샌프란시스코 등 아시안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 더 많은 관련 범죄가 발생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예전에는 한인을 포함한 아시안에 대한 증오 범죄가 훨씬 심했다고 합니다. 흑인들이 당한 것처럼 거의 노예 수준으로, 인간 취급도 제대로 못 받고 살아야 했던 시기였는데요. 지금이 그때보다는 그래도 나아졌다고 생각하며 만족해야 하는 것인지, 차별이 없는 완전한 평등 세상을 위해 더 투쟁하며 살아야 하는지 여전히 인종차별 문제는 숙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메인 뉴스로 오래 전 LA에서 벌어졌던 중국인 학살사건을 뽑아봤습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주민이 기억조차 못하는 사건인데, 한번쯤은 이런 일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되짚어보면서 재발 방지를 위해 필요한 노력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871년 10월 발생했던 LA 차이나타운 중국인 학살사건을 표현한 그림
그럼 잠깐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1871년 이곳 LA에서는 중국인 학살 사건이 있었습니다. 차이나타운 인근에서 벌어진 일인데요.
1871년에 LA는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깨끗한 도시는 아니지만 그때는 훨씬 더럽고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었다고 하네요. 뉴욕이나 시카고보다도 살인사건 발생률이 더 높았음에도 치안 유지를 위해 근무하는 경찰관 수는 여섯 명에 불과했답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주먹이 법인 무법천지와 다를 바 없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LA시 인구 수는 6000명이 채 안되는 5728명이었다고 기록돼 있네요. 연방인구통계국, 즉 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1870 현재 LA의 중국인 인구는 172명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LA에서도 악명 높은 범죄지역인 당시 표현을 빌리자면 일명 ‘깜둥이 골목’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니그로 앨리’에 거주했습니다. 이곳은 비포장도로 양 옆으로 술집과 도박장, 매음굴 등이 뒤섞여 있었다고 합니다.

1850년대와 60년대 당시 발행된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을 담은 것으로 평가되는 중국어 신문을 보면 중국인에 대한 공격 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1869년 당시 발행된 LA뉴스와 더 LA 스타가 중국인 이민자를 비난하고 중국인을 열등하고 부도덕하다고 공격하는 사설을 실으면서 상황이 변합니다.
이런 와중에 1871년 10월 차이나타운에서, 경쟁관계로 불화를 겪던 두 중국인 상조회 지도자 사이에 젊은 중국인 여성을 납치한 사건을 놓고 긴장이 더욱 고조되는 일이 생깁니다. 결국 니그로 앨리 한 복판에서 두 계파에 속한 중국인들끼리 총격전이 벌어집니다. 이때 두 명의 경관이 출동하는데 한 명이 부상을 입고 경관을 돕던 민간인 한 명이 사망하게 됩니다. 사망한 민간인은 그 동네에서는 유명한 전 술집 주인 로버트 톰슨이었는데 사건 직후 중국인들이 톰슨을 죽였다는 소식이 금방 퍼지게 됩니다. 이에 격분한 사람들이 차이나타운으로 몰려드는데 당시 LA시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500명으로까지 불어납니다. 이들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폭도로 변하면서 총격전을 벌였던 중국인들이 피신했던 코로넬 빌딩으로 몰려가 그들을 밖으로 끌어내오고 이들 중 7명을 교수형에 처하고 이후 3명을 더 매달아 죽입니다.
당시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과 증언들이 있지만 그날 밤 모였던 폭도들의 잔혹성과 야만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LA 형무소 한 켠에 모아 놓은 중국인 시신들
다음날 아침 형무소 마당에는 모두 17명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전날 숨진 한 명까지 더하면 이 사건으로 모두 18명의 중국인이 숨졌습니다. 당시 LA시에 살고 있던 중국인의 10%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숨진 중국인 가운데 실제 총싸움을 벌였던 당사자는 단 한 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 폭도 중 25명이 대배심에 기소됐으나 이 가운데 단 10명 만이 법정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8명에게 과실치사죄로 유죄가 확정됐지만 이 혐의는 법적 기술에 따라 번복되고 이후 피고인들에 대한 재심은 두 번 다시 없었다고 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빠르게 잊혀졌습니다. 당시 지역 신문들은 연말이면 관행처럼 보도하던 올해의 주요 사건사고에서 이 사건을 포함시키지 않고 뺐다고 합니다. 이후로 한동안 중국인에 대한 차별은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경향도 나타났다고 하는데요. 지역 유지들이 포함된 반 중국인 클럽이 결성되고 신문 사설에는 중국인을 공격하는 사설들이 실리곤 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 이 같이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게 놀라운데요. 하기야 서부영화 등을 생각하면 이곳 미국도 오래 전에는 무법천지였던 것 같습니다.

중국인 학살사건과 관련해 LA시는 최근 이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추모물 건립을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LA시는 이 학살 사건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종적 편견과 폭력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하자는 취지에서 희생자 추모물 건립을 위한 아이디어를 공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중국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추모물 공모는 오는 10월 12일까지 진행됩니다. 다섯 개의 후보작을 뽑고 이 가운데 한 작품을 실제 추모물로 제작한다고 하네요. 추모물은 학살 현장과 현재 중국계 미국인 박물관이 있는 장소와 가까운 곳에 설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부끄러운 역사를 정말 부끄러워하면서 뒤늦게나마 조금이라도 사죄하는 마음을 표시하려는 LA시 정부 관계자들의 태도를 보면서 일본의 뻔뻔함과 후안무치함이 떠오릅니다. 징용이나 위안부로 끌려갔던 피해자들에게 고객 숙여 제대로 사과하고 보상하는 일본 정부의 모습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