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준비제도(FRB, 연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대출 비율은 중소형 은행이 전체의 3분의2(67.3%)를 차지합니다. 나머지의 대부분(29.1%)은 대형은행이 맡고 있고 외국계 은행은 3.6%만 담당합니다. 이는 올 2월 말 총자산 기준 상위 25개 대형은행을 기준으로 작성된 보고서 내용인데요. 그만큼 상업용 부동산에서 중소형 은행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전체 대출로 확대해도 비슷한 결과를 볼 수 있는데요. 미국 전체 은행권 대출에서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중소형 은행이 43%, 대형 은행은 13%에 그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이때부터 사무용 건물을 기준으로 한 상업용 부동산저당증권(CMBS) 연체율이 급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2월 1.6% 수준에 그쳤던 CMBS 연체율은 올해 1월 1.8%를 넘어서더니 2월에는 2.38%까지 뛰었습니다. 이에 JP모건, 골드만삭스와 같은 주요 투자은행은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 문제가 은행 위기를 재점화할 뇌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는 연체율 외에도 다양한 위기 신호가 감지됩니다. 우선 무엇보다 재택근무와 전자상거래 증가로 사무실과 소매점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기관에서는 미국에서 향후 5년 동안 약 5만 개의 소매점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또 모기지 이자율이 오르면서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전체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데다 기술/금융 기업의 대규모 인력 감축 등의 여파로 공실률이 높아지고 이는 사무용 부동산 가격의 대폭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피스 빌딩 가격은 2022년 초 이후 25% 하락했는데요. 쇼핑몰 가격 역시 2022년 초 이후 19%, 2016년 이후부터 따지면 44% 떨어졌습니다. 인플레이션도 상업용 부동산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인플레가 어느 정도 잡히고 있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그 동안 각종 비용이 많이 올랐습니다. 건설 비용은 물론이고 에너지 비용, 임금 상승으로 이어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부동산 개발 및 임대 비용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 초까지 이어진 지속적인 금리 인상은 부동산 소유자의 이자 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담이 느니까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의 연체율도 높아지는 것이겠지요.
전반적인 시장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6일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의 22층짜리 건물은 2019년 약 3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됐는데요. 현재 매물로 나와 곧 입찰이 마감되는데 약 6000만 달러에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4년 만에 가치가 80% 하락한 것인데요. 거의 폭락 수준입니다.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 회사 CBRE그룹은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의 공실률이 30%에 육박하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전의 7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전국적으로도 비슷한데요. 코스타그룹이 1분기 자료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 전국적으로 임차인을 찾지 못하고 비어있는 오피스 비율이 12.9%로 2000년 집계 시작 이후 최고치라고 합니다.
부동산 정보업체 트렙(Trepp)에 따르면 작년 말 상업용 부동산 대출 규모는 5조6000억 달러로 집계됐는데요. 이 가운데 은행 비중이 50.6%이고 여기서 또 중소 은행이 67.3%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가운데 올해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상업용 부동산 담보증권(CMBS)의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큰 불안 요소로 작용합니다. 내년까지 도래하는 대출 만기 규모가 1조 달러를 훌쩍 넘어서기 때문인데요. 만기 도래 때 부동산 회사들은 최근 고금리에 따라 이자를 올려줘야 하고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대출 여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심지어 은행권이 불안해지면서 한층 깐깐해진 대출 잣대를 들이미는 중소 은행들이 아예 돈을 빌려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상업용 부동산이 강제 매각되거나 가격이 추가 급락해 중소 은행들에 부메랑으로 돌아와 또 다른 리스크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가능해집니다.
이미 임대 수익이 줄어든 부동산 회사가 건물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린 원금과 이자 상환을 제때 하지 못하는 경우도 늘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인데요.
여기에 더해 최근 들어 대형 오피스 빌딩을 담보로 잡은 자산 운용사들의 ‘디폴트’ 선언이 이어지고 있는 점도 불안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전 세계에서 8000억 달러 넘는 자산을 굴리는 자산운용사 브룩필드는 지난 2월 LA에 위치한 빌딩 2개를 담보로 빌린 7억5000만 달러 상당의 대출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결정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부동산 투자회사 ‘컬럼비아부동산신탁’도 뉴욕 등에 있는 오피스 건물 7개를 담보로 잡히고 빌린 17억 달러 상당의 대출을 제때 상환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는데요. 업계는 대형자산운용사의 디폴트 선언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입니다.
하지만 오피스를 제외한 나머지 상업용 부동산의 지표가 그나마 탄탄해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대출 부실이 상업용 부동산 시장 전체로 파급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희망적인 분석도 있습니다. 데이터센터와 창고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상업용 부동산 문제가 더 크게 확산하지 않고 경제가 안정적으로 굴러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