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회담에서 ‘펜타닐’이 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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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에이팩(APEC)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도 참석했었는데요. 이런 큰 행사는 한 자리에서 주요 국가의 정상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어 외교적으로는 새로운 물꼬를 트거나 관계를 더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두 정상도 예외는 아닌데요. 조 바이든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15일 단독 정상회담을 4시간 가량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두 정상은 정상 간 핫라인(직통전화) 가동과 군 통신선 재개를 합의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합의 사항이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띄면서 ‘왜’라는 의문이 생기는 이슈도 있었습니다. 바로 펜타닐 문제인데요. 두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신종 마약 펜타닐 생산과 관련 품목 수출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자고 약속했습니다. 도대체 펜타닐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면 국가 원수 차원에서,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오늘은 그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펜타닐은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
로 꼽힙니다. 총기난사 사건이 많이 일어나면서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펜타닐 문제는 이보다 훨씬 위험하고 사회적 여파가 큰 이슈입니다. 한 나라가 이 문제 때문에 망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요. 18~49세 사이 연령대 미국인의 사망 원인 1위가 펜타닐 과다 복용일 정도입니다.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펜타닐 등 합성 오피오이드, 즉 마약성 진통제 과다 복용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하루에만 193명으로 지금은 200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마약을 복용하면 똑바로 서지 못하고 허리가 꺾인 채 서 있거나 걷는 모습이 좀비같다고 해서 펜타닐을 ‘좀비 마약’으로도 부르는데요. 헤로인의 100배, 모르핀보다 200배 이상 더 강력한 진통제로 말기 암 환자처럼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쓰이던 약물입니다. 하지만 2015년 이후 펜타닐을 마약으로 사용하는 수가 급증하면서 사망자도 비례해 늘고 있습니다. 연방 당국은 펜타닐 오남용으로 미국인의 기대수명도 줄고 있다고 분석할 정도인데요. 실제로 2021년 기준으로 미국인 기대 수명은 25년 만의 최저치인 76.4세로 내려 앉았고 그 배경에 펜타닐 관련 사망자 급증이 있는 것입니다. 치사량은 단 2mg입니다.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잭팟, 좋은 친구라는 은어로 불리지만 실제는 좀비를 만들어내는 악마의 마약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왜 지금 시점에서 APEC과 같은 중요한 행사, 그리고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끄집어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시급성 때문입니다.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고 내년에 대선이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위에서도 잠깐 살펴봤듯이 펜타닐이 미국의 청소년부터 장년층까지 젊은 세대의 사망 원인 1위가 될 정도로 심각해 하루라도 빨리 펜타닐 확산을 막아야 합니다.  또 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대통령 후보가 유권자의 마음을 얻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펜타닐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중국의 협조를 요청한 것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때부터 미국은 중국에게 펜타닐 핵심 원료 생산과 판매를 규제하는 데 협력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양국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중국이 관련 규제에 사실상 손을 놓게 됩니다. 그러나 급한 쪽은 미국. 올해 들어서부터 미국은 1월초부터 펜타닐 이슈를 관련국 정상회담에서 주요 의제로 다룹니다. 중국은 물론이고 국경을 인접한 멕시코와 캐나다에게도 펜타닐 근절을 위해 협력하자고 다그칩니다. 중국과 함께 최대 펜타닐 공급처로 떠오르고 있는 멕시코에 대해서는 마약 조직 소탕에 적극 나서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런 결과로 멕시코 역사상 최대 마약왕인 ‘엘 차포’, 호아킨 아르치발도 구스만 로에라의 아들 오비디오 구스만을 전격 체포하는 성과를 보입니다. 이 작전에는 경찰력 뿐 아니라 국가방위대와 군까지 참여한 거의 전쟁에 버금가는 인원이 동원됐습니다.

그렇다면 펜타닐 문제를 놓고 미국은 왜 중국에게 공조를 요구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현재 미국에서 유통되는 펜타닐은 대개 멕시코에서 만들어져 불법 유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멕시코의 펜타닐 생산업자들은 그 원료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것이 연방 정부의 판단입니다. 그 동안 연방 정부가 다른 마약 단속에 집중하면서 펜타닐의 유통 경로를 차단하는 데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중국과의 관계 악화는 설상가상인 격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으면 미국민의 피해는 더 악화할 것이고 여러 측면에서 펜타닐 문제 해결은 시급한 과제가 된 것입니다.

미국은 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중국 정부에 압박을 가했는데요. 연방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10월 3일 보도자료를 통해 중국 기반 12개 업체와 개인 13명, 캐나다에 기반을 둔 2개 업체와 개인 1명 등을 펜타닐 제조 공급 혐의로 제재 대상에 지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메릭 갈랜드 연방 법무장관은 이날 중국 소재 관련 기업 8곳과 이들 회사 직원 12명에 대한 8개 공소장을 공개하면서 “미국인들의 죽음으로 귀결되는 국제적 펜타닐 공급망이 종종 중국 내 화학회사들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중국이 펜타닐 원료를 만드는 화학회사를 직접 단속하기로 했습니다. 또 중국이 국내 업계에 펜타닐, 전구체 화학물질, 약품 제조에 사용되는 알약 압착 장비의 제조/수출에 대한 법적 제한을 상기시키는 통지문을 발행하는 것에도 합의했습니다.

따라서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펜타닐 규제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일단 바이든 대통령이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됩니다. 물론 중국이 약속을 이행할 것인지, 또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 등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일단 공식적으로 두 정상 간 회담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합의를 끌어낸 것은 큰 성과임에는 분명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한 시 주석의 헌신에 감사한다”고 까지 고마움을 표현했는데요. 그리고 바로 다음날 합의에 대한 대가로 인권 침해 혐의로 기소된 중국 공안부 산하 범죄연구소 네트워크인 법의학 연구소에 대한 미국 기술 접근 제한을 해제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중국과 가까운 한국도 국민 건강을 위해 펜타닐에 대한 대책을 미리부터 수립하고 더 강력한 마약 규제에 나서는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