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는 영어로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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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로브 #미나리 볶음밥 생각

언제나 그렇듯 미나리는 상큼합니다. 지난 28일 저녁에는 복매운탕 후식으로 종종 나오는 미나리 볶음밥이 무척이나 먹고 싶었습니다. TV로 지켜본 상큼한 미나리 소식 때문이죠. 이날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인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Minari)가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지난해 시상식에서 ‘기생충’의 영광을 재현한데다 차별 논란을 딛고 얻은 결과라 미나리의 향은 더 짙었습니다. 영화가 남긴 의미, 내용, 만든이, 앞으로 갈 길 등 미나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아직 영화를 못보신 분들이 계신다면 이번 뉴스레터를 읽으신 뒤에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그런데 수상 부문이 이상해. 왜 외국어영화상이야?

미나리가 이번 골든글로브에서 논란의 중심이 된 이유죠. 골든글로브의 수상 작품과 배우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가 선정합니다. HFPA의 규정에 따르면 영화내 대화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 외국어영화로 분류합니다. 미나리에선 영어보단 우리말이 더 많이 쓰였죠. 그래서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원칙에 따른 결정이라고 하지만 차별 논란을 불렀습니다.

왜 차별인데?

미나리는 미국 영화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 정이삭(42) 감독이 만들었죠. 또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플랜B’가 제작했습니다. 아칸소가 영화속 배경이죠. 외국어영화일 순 있어도 미국 영화가 아니라는 판단은 모순이죠. 뿐만 아니라 이미 ‘영어 50% 이상’의 원칙은 깨진 지 오래됐습니다. 지난 2009년 HFPA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녀석들(Inglourious Basterds)’이라는 영화를 작품상 후보에 올렸었죠. 이 영화의 영어 비중은 30%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나리의 ‘국적 논란’을 주류 언론에서도 지적했습니다. 특히 CNN은 골든글로브가 미나리를 작품상 후보에서 배제한 것에 대해 “미국 인구의 20% 이상이 집에서 영어 이외의 언어를 사용한다”면서 “할리우드내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꼬집었죠. 또, LA타임스는 87명의 HFPA 회원 가운데 흑인이 한 명도 없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내용은 어떤 영화야?

19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미국에 온 한인 가족이 아칸소 시골 마을에 정착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그대로 투영된 작품입니다. 영화처럼 이민 1세대인 정 감독의 아버지 역시 주인공 제이컵(스티븐 연)처럼, 병아리의 성별을 구별하는 감별사로 19년간 일했죠. 이 때문에 정 감독이 다섯 살 때 그의 가족도 콜로라도 덴버에서 아칸소로 이사했습니다. 한국 채소를 가꾸기 위해 손수 트랙터를 몰고 농장을 가꾸는 영화의 설정도 정 감독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윤여정이 연기한 할머니 순자도 정 감독의 할머니가 모델이었다고 합니다. 정 감독의 부모님께서는 영화를 보고 당연히 감동하셨죠. 그런데 관람 뒤에 ‘꿈에서도 영화가 나온다’면서 두려워 하셨다고 해요. 그만큼 당시 힘들고 고된 삶을 사셨다는 뜻이겠죠.

이민가정 다룬 영화는 많았잖아? 미나리가 다른가?

이민가정 이야기는 할리우드의 단골 소재입니다. 하지만 미나리는 기존 영화들과 다소 다릅니다. 다른 영화들이 미국내 아시아계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가족이라는 소재를 사용했다면 미나리는 문화적 충돌과 인종차별, 가족의 갈등에 주목합니다. 다투고 화해하고 사랑하는 이야기죠. 언어는 다르지만 가족이라는 보편성이 공감대를 부릅니다. 손자 제이콥이 “할머니한테 한국냄새가 난다”고 투덜거리다가 할머니와 함께 화투를 치는 장면이 ‘미나리’ 답죠.

정 감독 소개해줘

1978년 콜로라도 덴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칸소 시골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죠. 원래 그는 작가 지망생으로 명문 예일대에 진학했지만 이내 꿈을 접었다고 해요. 그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예일대에서 지방 할당 쿼터를 채우기 위해 아칸소주 출신인 나를 겨우 입학시킨 게 아닌가 싶었다. 그 정도로 다른 학생들은 우수한데 내 실력은 끔찍했다”고 회상했었습니다. 그래서 진로를 바꿔 의사가 되려 했답니다.

잠깐만, 의사에서 감독이 됐다고?

의대 진학을 위해 인문학 필수학점을 채우려 영화 수업에 등록한 것이 메가폰을 잡게 된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7인의 사무라이’ 감독인 구로사와 아키라와 ‘화양연화’, ‘중경삼림’의 왕자웨이 감독 작품에 빠져들었다고 해요. 예일대 졸업 1년을 앞두고 의대 진학을 포기하고 유타대학에 편입해 영화를 공부했죠. 졸업 후 2006년 그는 심리치료사인 아내 발레리와 함께 내전과 종족 학살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아프리카 르완다로 갑니다. 결혼할 때 아내와 했던 약속이라고 해요. 아내는 르완다의 기독교 선교단체에서 치료사로 봉사했고, 그는 현지 학생들에게 영화촬영을 가르쳤죠. 그때 르완다에서 찍은 작품이 데뷔작 ‘문유랑가보(Munyurangabo)’입니다. 3만달러의 저예산으로 11일 만에 촬영했는데요. 비록 시나리오, 촬영, 편집, 연출까지 떠맡았던 1인 영화지만 2007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선정돼 그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 때죠.

데뷔작부터 미나리 수상까지 14년이 걸린거네

그렇습니다. 영화판은 그에게도 탄탄대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미나리를 만들기 전에 감독을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마흔 즈음 그는 모교인 유타대 한국 인천 캠퍼스에서 교편을 잡았었는데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그는 “마흔이 되어가면서 인생에서 변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고 좀 더 현실적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얼마전 봉준호 감독과의 영상 대담에서도 그는 “내 딸이 일곱살이다. 영화속 아버지처럼 나도 무책임하게 영화라는 꿈만 바라보고 살았다”고 고백했죠. 정 감독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모든 걸 대본에 쏟아넣은 작품”이 미나리였다고 해요.

정 감독 참 감개무량했겠네.

아시다시피 올해 골든글로브는 대면 수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정 감독은 수상 소감을 영상으로 뉴욕의 자택에서 딸 리비아와 함께 했는데요. 미나리가 수상작으로 호명되자 리비아는 아빠를 와락 끌어안았고 “(아빠가 상받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어요(I prayed, I prayed)”라고 외치는 장면이 그대로 방송됐죠. 리비아의 해맑은 웃음은 지켜보는 이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죠. LA타임스도 이 모습을 올해 골든글로브 명장면 중 하나로 꼽았을 정도에요.

수상 소감, 뭐라고 했어?

지난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명언을 떠오르게 한 소감이었는데요. 당시 봉 감독은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고 했죠.
정 감독의 소감 역시 무릎을 치게 했습니다. “제 딸이 이 영화를 만들게 한 이유”라고 소감을 시작한 정 감독은 미국 제작사와 미국 국적의 감독이 만든 미나리가 한국어 비중이 높다는 이유로 외국어영화로 분류된데 대해 뼈있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들어보시죠.
미나리는 가족의 이야기다.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하려 노력하는 가족의 이야기이고, 그 언어는 단지 영어나 그 어떤 외국어가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온 진심의 언어(language of the heart)”라며 “우리 모두 서로에게 이 ‘사랑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특히 올해는.(Minari is about a family trying to learn how to speak a language of its own. It goes deeper than any American language and any foreign language; it’s a language of the heart. I’m trying to learn it myself and to pass it on, and I hope we’ll all learn how to speak this language of love to each other, especially this year)”

오스카 수상 기대해도 돼?

지금까지 기록으로만 봐도 미나리는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총 75관왕(157개 부문 노미네이트)에 올랐습니다. 특히 외할머니 순자 역의 윤여정은 연기가 주목받아 각종 영화제·시상식에서 총 26관왕을 차지했죠. 골든글로브는 아카데미의 전초전으로 불립니다. 아시다시피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골든글로브 3개 부문 후보에 올라 외국어영화상을 탔고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4관왕에 올랐었죠. 아카데미는 지난해부터 외국어영화상의 이름을 바꿔 국제영화상으로 시상하고 있어 외국어 사용 여부는 주요 부문 수상 기준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충분히 수상을 기대해볼 만 하죠. 언론들은 ‘미나리, 이제 아카데미만 남았다’고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후보 발표는 2주뒤인 15일, 시상식은 다음달 25일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왜 제목이 미나리야?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자라”
영화속 대사입니다. 정 감독은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우리 가족과 닮았다”고 제목을 정한 배경을 말한 바 있죠. 미나리의 수상 소식에 dpa 통신도 “미나리가 강인함을 상징하는 한국의 전통 약초에서 제목을 따왔다”면서 “미나리는 (한인 이민자) 가족이 고난 앞에서 찾아낸 끈기와 신뢰에 대한 은유”라고 소개했습니다.
혹시 미나리가 영어로 뭔지 아시나요? 드랍워트(Dropwort)라고 합니다. 그런데 드랍워트라는 식물명을 아는 미국인이 몇 명이나 될까요? 미나리의 수상으로 앞으로 드랍워트는 미국인들에게도 ‘미나리(Minari)’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