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영국을 동경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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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도 중순이 훌쩍 지나고 있습니다. 이제 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낮 최고기온은 80도대를 나타내고 있네요.
이번 주는 지난 8일 96세로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이야기로 연일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선왕에 이어 25세에 즉위해 70년 동안 영국은 물론이고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인물인데요.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운명했다고 전해집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재위 기간을 정확히 계산하면 70년 214일이 나오는데요.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인 63년 216일을 훌쩍 넘어 영국 역사상 가장 길고,  세계적으로도 루이 14세 프랑스 국왕의 72년 110일에 이은 두 번째 재위 기간입니다. 이 기간 그를 거쳐간 영국 총리가 15명이나 된다고 하네요.
왕위는 큰아들인 찰스 왕세자가 물려받았는데요. 왕세자로 책봉된 이후 무려 64년을 기다린 끝에 74세에 드디어 왕관을 쓰게 됐습니다.
앞으로 엘리자베스 2세의 공식 장례일정과 찰스 국왕의 대관식 등이 예정돼 있는데요. 미국 언론들은 앞으로도 이들 행사를 경쟁적으로 크게 보도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렇게 영국과 관련된, 특히 왕실과 관련된 사건이나 이벤트를 심하다 싶을 정도로 크게 보도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이번 주 똑개비 210호는 영국 사랑에 깊이 빠져 있는 미국 사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국가라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처럼 적대적일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부터 분명히 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
식민지이기는 했지만 한일 관계처럼 서로 피맺힌 원한이 생길 정도의 사건이나 착취 같은 일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차피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던 땅을 영국계 등 백인들이 차지한 것이었고 이들이 세력을 넓혀나가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갈등이 생기면서 미국이 탄생한 것이니까요.
오히려 미국 독립주의자들은 신생국을 만들기는 했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영국을 거의 모든 면에서 아주 부러워하고 따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법률, 정부 조직, 음식, 교육, 예술 등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교과서나 지침서가 필요한데 영국이 바로 그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일 것 같은데요. 이런 관계와 배경이 한 편으론 의식적으로, 또 다른 한 편에선 무의식적으로 쌓이면서 지난 250년 세월을 이어온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국은 미국에 없는 것을 가진 나라”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 정도로 미국인들이 우러러볼 수 밖에 없는 위치에서, 이미 급이 다른 상황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었던 그런 관계였던 것이지요. 부러움인 동시에 콤플렉스라고나 할까요.
고인이 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관련된 에피소드, 다이애나 황태자비와 관련된 사건들 외에도 어떻게 보면 시시콜콜한 왕실 관련 가십 같은 것에도 미국 언론들은 보도 경쟁을 하고 미국인들은 시청률에 기여하며 빠져들곤 합니다.
약 10년 전쯤에도 당시 영국 왕실에서 왕위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자와 그의 부인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과 그 이후의 행적이 현대판 신데렐라 동화처럼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었지요.
한국 사람들이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하듯 미국인들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고 대화하고 의견을 교환합니다.
미국인들의 이런 영국 동경은 영화나 상류사회 모임 등을 통해 더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데요.

영국식 엑센트를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명 영국 배우들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을 정도입니다. 상류층에서 영국식 파티와 에티켓 문화가 곧 품격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영국식 엑센트 사용은 미국인에게는 한국에서 마치 조선시대 양반들의 어투를 쓰는 것 같은 그런 느낌과 비교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거 방식에서도 잔디밭으로 둘러싸인 미국인들의 주택이 영국 귀족의 생활방식에서 왔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영국에서도 귀족들이 지위의 상징 가운데 하나로 잔디밭을 선호했는데,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처음에는 영국 귀족 같은 기분을 내기 위해 부유층에서 잔디밭을 집의 앞뒤로 두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하인이나 소작농, 또는 노예들이 잔디밭을 관리했을 것이고 이는 결국 자신의 부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했겠지요. 충분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재력이 뒷받침돼야 잔디밭을 둘 수 있으니까요. 지금도 잔디밭 유지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갑니다.

이외에도 오늘날까지 영국 귀족제가 살아남은 배경에는 미국 부자들이 자기 딸들을 가난한 영국 귀족에게 시집을 많이 보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입니다.
미국인들이 왜 그렇게 영국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열광하거나 관심을 보이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