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천지에서 ‘혐오 범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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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혐오 범죄(hate crime)’라는 표현을 언론이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아십니까?

미국은 오래 전부터 혐오 범죄 또는 증오 범죄라고 부를 수 있는 범죄들이 만연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청교도 이민자들이 정착하면서 토착민과 함께 살아가기보다는 그들을 착취하고 말살하는 정책을 써왔구요, 이후에는 흑인이나 중국인들을 노예나 거의 노예 수준으로 대우하며 차별하는 범죄를 일상처럼 저질렀습니다. 또 백인우월주의에 바탕을 둔 KKK단의 악행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유명합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인종 차별에 묻혀 제대로 언급되지도 않았지요. 현대에 들어와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면서 이들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 함께 이들을 핍박하는 세력이 조직화되는 경향도 나타납니다. 이외에도 정치적인 신념이나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위협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여전합니다.

지난 20세기 역사의 대부분도 혐오 범죄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크고 작은 혐오 범죄가 많이 발생했는데요.

따지고 보면 혐오 범죄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1980년도 전에는 버젓이 혐오 범죄가 발생했지만 아예 혐오와 범죄를 같이 붙여서 쓴 기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1968년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이 인종이나 신념, 피부색, 신앙이나 출신 국가 때문에 그 누구라도 폭력이나 위협을 당하면 이를 범죄로 규정한다고 명문화한 기념비적인 민권법에 서명할 때에도 ‘혐오 범죄’라는 지금과 같은 개념은 없었으니까요.

1990년 조지  H.W. 부시 당시 대통령이 ‘혐오 범죄 통계 법’에 서명하면서 비로소 혐오 범죄는 일반에게 한 단어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 법은 법무부 장관이 혐오 범죄에 관한 연례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 정부와 시 정부는 자발적으로 연방수사국(FBI)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있어 최종 결과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2020년을 예로 들면 인구 10만명이 넘는 도시 가운데 60개 경찰국에서 혐오 범죄 자료를 아예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도시 LA의 가장 최근 통계자료인 2021년도 집계를 보면 암울하기만 한데요. 여전히 소수계인 흑인, 유대인, 성소수자(LGBTQ), 아시안, 라틴계에 대한 혐오 범죄가 더 많습니다.

지난 흘러온 세월 동안 해당 범죄들이 혐오 범죄로 분류되거나 체계적으로 보고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적어도 이런 통계가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LA에서 어떤 범죄가 혐오 범죄로 계산되느냐 하는 것은 증오 범죄가 얼마나 깊게 제도화되었는지와 연관이 있습니다. 여러 단체, 그리고 심지어 ‘바로 여기서’ 해당 범죄자를 처벌해야 할 임무가 있는 공권력까지도 혐오 범죄를 저질러 왔으니까요.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남가주에는 ‘레인저스(Rangers)’로 불리는 단체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보통 멕시코계 범죄자인 ‘반디도스(bandidos)’를 잡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체 방범위원회를 조직하고 스스로  판사가 되고 배심원이 되어 사법적 판단을 내렸고 심지어 사형집행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 구현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인 셈입니다.

1849년을 전후한 골드러시 시절에는 동부지역에서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서부를 찾은 백인들이 캘리포니아 토착민과 라티노를 대상으로 금이나 금광을 빼앗기 위해 무수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유명한 범죄왕 잭 파워스(Jack Powers)도 그 무리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캘리포니아에 자리잡은 주민들 사이에서 더 많은 혐오 범죄가 저질러졌다고 증언합니다. 엘몬테 레인저스의 경우 아무런 권한 없이 일부 죄수를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1850년대의 LA는 인구가 5000명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당시 살인사건이 평균 하루에 1건이었습니다. 현재 400만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상황에서 2020년이후 평균 하루에 한 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 옛날 얼마나 무법천지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 역사가는 이런 상황에 대해 캘리포니아 토착민과 아메리카 원주민을 모두 대상으로 하는 ‘인종 전쟁’ 수준이었다고 말합니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 원래부터 살고 있던, 우리가 그 동안 인디언이라고 불렀던 원주민들은 1830년대에 선교 사역이 세속화되면서 이른바 해방된 신분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이도 잠시, 이들은 곧 비천한 일에 고용되어 술을 급여로 받거나 받은 돈으로 술을 사는 삶의 형태를 보입니다. 술에 취한 원주민들은 각종 사건사고와 연관되는 일이 많아지고 이들은 공권력에 의해 체포되고 매주 월요일 오전 목장주나 농장주가 잡혀온 원주민의 보석금을 대납하고 일꾼으로 데려가곤 했습니다.

이런 무법천지 세상은 똑개비 뉴스 207호에서 전해드렸던 LA 중국인 대학살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1871년 10월 LA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인 18명이 교수형 형식으로 처형되는 일이 발생한 것인데요. 뉴욕타임스는 당시 “지금까지 그 어떤 문명 사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치욕적인 일이며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라고 보도합니다. 또 로스앤젤레스는 천사들의 여왕 도시라고 자부하지만 ‘범죄와 타락의 온상’으로 저주받았다고 표현했는데요. 중국인 학살 사건은 2001년까지 잊혀진 역사로 숨겨져 있다 그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게이브리얼 친 UC데이비스 법대 교수는 2021년 “이 사건은 인종 청소였고 성공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인 학살 사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똑개비 뉴스 207호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1920년대는 전국적으로 백인 우월주의 세력인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이 다시 부활합니다. LA에서도 세력이 커지는데요. KKK단으로 불리는 이 단체는 남북전쟁 당시 패한 남부연맹에 대한 향수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LA 지역에서 이들은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제국’으로 부르며 실체가 아주 분명한 정부를 전복시키려 합니다. 1924년 무렵 애너하임은 캘리포니아 KKK단의 본거지 역할을 할 정도로 이들 세력이 시의회와 공권력을 장악했었다고 합니다. KKK단이 저지른 악행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남가주에서도 컬버시티, 버뱅크, 글렌데일, 그리고 다수의 사우스 베이 지역 도시들은 이른바 ‘일몰 도시(sundown towns)’로 불렸는데요. 이들 도시는 KKK단이 장악하고 아메리칸 나치당 지부가 왕성히 활동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유색인종은 일몰 전에 타운을 떠나라는 표지판을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KKK단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자세히 살펴볼 기회를 만들겠습니다.

KKK단 외에도 ‘실버 셔츠(Silver Shirts)’라는 미국 내에서 자생적으로 조직된 파시스트 그룹이 있었고 ‘분트(Bund)’를 위시한 친 나치 정당이나 단체들도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1943년 6월에는 ‘주트수트 폭동(Zoot Suit Riots)’이 며칠에 걸쳐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주트수트는 흑인을 비롯 라티노나 필리핀계 등 소수 인종 젊은이들이 즐겨입던 복장 스타일을 말하는데 LA 거리에서 육군과 해군 병사들이 집단적으로 이들 복장을 한 사람들을 구타하고 옷을 찢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외에도 공권력에 속한 개인들이 인종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해 사회 문제화 된 사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1992년 LA 한인타운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4.29 폭동 역시 백인 경관들이 흑인 범죄 용의자를 비인간적으로 폭행한 것이 시발점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예전보다는 선출직이든 아니든 공권력에 대해 더 나은 것을 기대하고 그들이 잘못했을 때 책임지게 하는 것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LA 카운티 유권자들은 이런 면에서 더 강화된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롱비치 경찰국을 이끌었던 로버트 루나를 새로운 셰리프 조직의 장으로 뽑았습니다. 또 캐런 배스를 LA의 첫 여성 시장이자 역대 두번째 흑인 시장으로 선출해 현재 LA경찰국을 맡고 있는 마이클 무어 경찰국장의 연임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LA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팻 모리슨은 “고위 경찰이 공개적으로 KKK단에 합류하고 이들과 거래하는 나쁜 옛날은 남아 있지만 의심의 여지 없이 그런 나쁜 것들은 이제 감사하게도 구태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넘어 상대를 적대시하고 폭력까지 행사하는 일이 지상에서 뿌리 채 뽑히는 것을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