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되풀이되는 ‘부채 한도’ 위기, 이번엔 괜찮을까

1143

미국 연방 정부는 매년 사용할 수 있는 빚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습니다. 나라 살림을 하는 정부가 수입과 지출을 규모 있게 운용하고 이 과정에서 너무 많은 빚이 생기면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사용할 수 있는 빚의 액수를 법으로 정하는 것입니다. 현재 전 세계 자유국가에서 이렇게 법으로 국가의 부채 한도를 정해 놓은 나라는 미국과 덴마크 단 두 나라 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할 목적으로 1939년 처음 이 부채 한도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당시 미 연방 정부의 부채 한도는 약 450억 달러였다고 하는데요. 2023년 현재 연방 의회가 책정한 부채 한도는 31조4000억 달러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왜 다른 나라처럼 부채 한도를 두지 않거나 유동적으로 한도를 늘릴 수 있도록 하지 않고 복잡하게 의회가 매년 정하도록 했을까요?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미국이 부채 한도를 두기 시작한 것은 1939년인데요. 그 이전에는 국채 발행액을 연방 의회가 항목별로 승인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복잡했습니다. 그러자 이를 조금 더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부채 한도만 정하려는 게 원래 취지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미국이 지금처럼 만성 적자에 시달릴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겠지요.
1960년 이후 올해까지 연방 의회는 부채 한도를 78번 인상한 것으로 기록됐습니다. 또 2001년 이후 단 한번의 회계연도도 재정 흑자를 낸 적이 없어 부채 한도도 20번을 인상했습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경우 정부 부채가 상한선에 이르기 전에 연방 의회가 먼저 한도를 올려줘 문제를 해결하곤 했는데요. 하지만 최근에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예전과 달리 협치에 나서기보다는 경쟁 관계에 더 치중하면서 서로 힘겨루기로 줄타기를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1년 8월, 오바마 행정부와 연방 하원 다수당이던 공화당이 부채 한도 인상을 두고 막판까지 극한의 대립을 벌이다가 디폴트 시한 이틀 전에 겨우 타결한 사례인데요. 당시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의 국가 신용 등급을 한 단계 강등하기도 했습니다.

정쟁으로 국가 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잇따라 나타나자 이런 불안 요소를 없애자는 의견이 나옵니다. 심지어 ‘수정헌법 14조’에 근거해 대통령 직권으로 부채 한도를 올릴 수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일부 헌법학자들은 수정헌법 14조가 대통령에게 부채 한도를 상향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채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고 해석합니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 측근들이 이런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실제로 실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첫해에도 부채 한도를 상향 조정했었는데요. 2021년 12월, 부채 한도를 기존의 한도보다 2조 5000억 달러 늘려 지금의 31조 4000억 달러로 책정했는데 올해 다시 디폴트 비상이 걸린 것입니다.
세계 최강국이자 돈이 넘쳐나는 나라로 알려진 미국이 빚이 너무 많아 이를 제때 갚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진다는 것이 조금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요. 어느 나라든 세금 등으로 거둬들이는 돈보다 지출하는 돈이 많으면 개인과 마찬가지로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불이행’, 즉 디폴트 사태를 맞게 됩니다. 공무원 월급과 군대 유지, 각종 복지제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액수의 돈이 필요한데 미국은 이 부족한 예산을 국채 발행 등으로 충당해왔습니다.
국채는 개인간 차용증처럼 정부가 돈을 빌리고 그 증거로 써주는 차용증으로 보면 되는데요. 그만큼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신용이 있고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로 사용되는 배경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빌린 돈도 만기일에는 갚아야 하는데 이를 갚지 못하거나 이자를 주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이는 채무불이행이 되고, 국가 부도 사태가 발생하게 됩니다.
미국 연방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매년 4000억 달러에서 3조 달러에 이르는 적자를 기록
해 오고 있는데요. 그만큼 엄청난 부채가 쌓이면서 국가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이미 지난 1월로 이번 예산연도의 부채 한도는 모두 다 소진한 상황입니다. 이에 연방 정부는 그 동안 ‘특별 조치’를 통해 아주 급하지 않은 지출은 멈추고 한도 내에서 채무를 이행하며 위기를 넘겨왔는데요.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한계에 왔다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판단입니다.
바이든 정부는 채무불이행 사태는 막아야 한다며 행정부가 돈을 더 쓸 수 있도록 연방 의회가 어서 부채 한도를 올려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중간 선거 이후 하원 다수당이 된 공화당은 조건을 내겁니다. 부채 한도를 필요한 만큼 올려줄 테니 대신 불필요한 정부 예산을 삭감하자고 제안합니다. 서로 팽팽하게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모양새인데요. 누군가 양보하지 않으면 미국은 사상 초유의 국가 채무불이행 사태를 맞게 되겠죠.

이런 상황에서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7일 디폴트 가능성을 재차 경고한 것인데요. 옐런 장관은 “우리는 지금 몇 달 동안 특별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바닥나고 있다”면서 “의회가 부채한도를 올리지 않는 한 6월 초에는 우리가 청구서를 지불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부채한도를 높이지 못하면 가파르게 경기가 하강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타냈는데요. 이제 약 3주 정도 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습니다. 부채 한도 문제가 평행선을 달리는 정쟁의 여파로 디폴트로 이어질 지 아니면 극적으로 솔로몬의 지혜로 해결될 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