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케네디 암살범, 55년 지나도 가석방 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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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LA 앰베서더 호텔에서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F. 케네디가 암살당합니다. 형이 암살당한 지 5년만인데요. 암살범은 팔레스타인계 요르단 사람인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입니다. 그는 체포돼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여러 차례 가석방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거절됩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55년이 지났습니다. 시르한의 나이도 이제 78세입니다. 2021년 2명의 캘리포니아 주 가석방 심사위원은 그의 가석방을 권고합니다. 이전까지 15번을 신청했지만 모두 거부되고 처음으로 가석방 권고 결정이 내려진 겁니다. 그러나 개빈 뉴섬 주지사는 그가 “공공 안전에 현재 위협을 준다”며 그 결정을 번복합니다. 시르한은 3년 안에 다시 가석방을 검토하는 청문회를 요청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1일 샌디에이고 소재 R.J. 도노반 교정 시설에서 열린 관련 청문회에서 그의 요청은 또 거부됐습니다.
뉴섬 주지사는 성명서에서 가석방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 “수십 년간의 감옥 생활 후에도 시르한은 자신을 로버트 케네디 연방 상원의원을 암살로 이끈 결함에 대해 밝히지 못했다”면서 “시르한은 그가 과거에 행한 위험한 결정과 똑같은 형태의 결정을 막을 수 있는 통찰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뉴섬 주지사는 또 “시르한의 부족한 통찰력에 대한 가장 뚜렷한 증거는 그가 저지른 케네디 상원의원 암살에 대해 말이 바뀌고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시르한은 처음에는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1972년 사형 선고가 위헌이라는 주 대법원의 판결 이후 종신형으로 감형됐습니다. 시르한은 이전에 알코올 과다 소비로 인한 기억상실증을 주장하고 공개 재판에서 범행은 인정하지만 살인은 하지 않았다고 부인한 바 있습니다.
미주 한인 언론은 이 기사를 거의 다루지 않았는데요. 주류 언론에서는 이번 가석방 거부와 관련해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여론도 있습니다. 이는 지난번 가석방 거부 때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케네디 전 연방 상원의원이 생전에 추구했던 사법 정신과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연방 법무장관을 지낸 케네디 전 의원은 재소자 인권 향상과 사법당국의 과잉 형량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963년 흉악범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했던 샌프란시스코만에 있는 앨커트래츠 섬 교도소 폐쇄 결정을 내린 것도 케네디 전 의원의 법무장관 시절이었습니다.
반세기 넘게 세월이 흘렀음에도 시르한의 가석방을 막고 있는 것은 정치적 판단 때문이라고 법조계는 보고 있습니다. 케네디 가문의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차차기 대선 주자를 꿈꾸고 있는 개빈 뉴섬 주지사가 케네디 가문의 신경을 건드리는 일에 서명할리는 만무하다는 것이 정치권과 법조계의 시각입니다. 특히 약 2년전 소환 투표를 치를 정도로 정치적으로 흔들렸던 상황과 앞으로 치러야 할 대선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면 뉴섬 주지사 입장에서는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겠지요. 뉴섬 주지사는 개인적으로도 케네디 전 의원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적인 애정과 향후 정치적 야망이 걸린 사안에 쉽게 서명할 수 없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에 더해 케네디 가문은 모든 경로를 통해 반대 로비를 펼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케네디 전 의원의 부인인 에델(95) 여사와 자녀 6명은 바로 직전의 가석방 권고 결정이 나왔을 때도 뉴섬 주지사에게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편지를 보낸 바 있습니다. 케네디 전 의원은 에델 여사와의 사이에 11명의 자녀를 뒀는데요, 이중 2명이 사망하고 9명이 생존해 있습니다. 11번째 자녀는 케네디 전 의원이 사망한 뒤에 출생했습니다.

미국에서 케네디는 여러 가지 감정으로 비쳐지는 이름인데요. 동전의 양면 같이 한편으론 동경의 대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비판의 도마에도 자주 오릅니다. 지난주 똑개비 뉴스 231호에서 ‘살인자의 새 삶, 희생자 가족의 고통’을 살펴봤었는데 케네디 전 의원 가족에게도 살인자에 대한 용서는 아마도 끝까지 허용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로버트 케네디는 바비 케네디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형에 가려 제대로 평가가 되지 않는 면도 없지 않은데 케네디 대통령이 가장 신임한 조언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특히 소수 민족과 유색 인종, 가난한 사람 등 소외된 계층을 위한 정의감이 남달랐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암살 당시 그의 나이는 42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