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신고하라는 텍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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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심장박동법 #내 몸의 주인은 누구

미국이 48년 만에 낙태 논쟁으로 들썩이고 있습니다. 지난 1일부터 텍사스주에서 일명 ‘태아 심장박동법(fetal heartbeat bill)’이 시행되면서 그 파장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죠. 다들 아시다시피 미국에서는 낙태권 찬성과 반대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바로미터 여겨지고 있습니다. 여성의 권리에 관한 문제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이슈입니다. 관련 소식을 정리해드립니다.

‘심장박동법’이 뭐야?

텍사스에서는 그동안 임신 20주부터 낙태를 금지해왔습니다. 그런데 1일부터 시행된 심장박동법은 이 낙태 금지 시기를 태아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시기로 앞당기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습니다. 통상 임신 6주가 되면 심장박동이 감지되는데요. 임신 초기라서 아기를 가졌다는 것을 모를 수 있는 시점이죠. 이 시기를 낙태 금지 시점으로 설정해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1일 로이터 통신은 “텍사스가 미국에서 가장 엄격한 낙태금지법을 제정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승리”라고도 표현했죠.

가장 엄격하다니 뭐가 다른데?

이 법은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따른 원하지 않는 임신의 경우조차 낙태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의학적 응급상황을 빼고는 낙태를 완전히 금지한 법이죠. 지금까지 나온 타주의 낙태금지법과 가장 다른 점은 이 법을 주 정부가 단속하지 않는 대신 법을 어긴 사실을 인지한 시민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주 정부는 불법 낙태 시술병원 등을 상대로 직접 소송을 거는 시민에게 최소 1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죠. 여성 인권 단체들은 “심장박동법에서 가장 악랄한 것이 시민에게 소송을 허용하도록 한 것”이라며 “일종의 자경단 시스템”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왜 악랄하다는거야?

과거 불법 낙태 단속 권한은 정부 당국에 있었고, 따라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텍사스 주법은 주 정부가 낙태 단속에서 손을 떼는 대신 일반인이 문제를 제기하도록 규정하는 바람에 낙태 옹호론자들이 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됐기 때문입니다.

낙태 옹호단체들이 법 시행을 막지 않았어?

시도했었죠. 텍사스의 이 심장박동법을 막아달라고 낙태권 옹호단체들이 가처분신청을 냈었는데요. 1일 연방대법원이 이 요청을 5:4로 기각함에 따라 이날부터 법이 시행된 것입니다.

텍사스주에서만 시행되는 법이잖아. 왜 전국적 이슈가 된 거야?

이번 대법원의 결정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여성의 낙태권을 계속 허용할지를 놓고 대법원의 본안 심리가 예정된 상태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현재 미국은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인 임신 23~24주 이전에는 낙태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법이 아니라 1973년 1월 ‘로 대(對) 웨이드(Roe vs. Wade)’로 불리는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확립된 여성의 권리입니다. 그 후 50년 가까이 낙태를 허용해온 연방대법원의 판례가 이번 텍사스 심장박동법 시행으로 뒤집어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죠.

잠깐만,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이 뭐야?

미국에서는 1970년대 초까지 대부분 주에서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가 불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여성의 낙태권을 사생활에 대한 기본권의 일종으로 인정하면서 낙태를 최초로 합법화한 판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는 뭐고 웨이드는 뭐야?

로(Roe)는 소송 당사자고 웨이드는 담당 검사 헨리 웨이드의 이름입니다. 로는 소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제인 도(Jane Doe)’처럼 신원 보호를 위해 사용한 가명입니다. 실제 이름은 노마 매코비라는 여성이죠.

어떤 사연이 있었는데?

매코비는 1969년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강간을 당해서 임신했다고 주장하면서 낙태수술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임신부의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 아니고 또 성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 보고서가 없다는 이유로 낙태수술을 거부당했죠. 그러자 매코비는 1970년 새라 웨딩턴과 린다 커피라는 두 여성 변호사를 찾아가 텍사스 주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하게 됩니다.
이 소송은 결국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됐고 1973년 1월 22일 대법원은 7대2로 낙태 금지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여담이지만 역사적인 판례를 이끌어낸 소송 제기자인 매코비는 이후에 아이러니하게도 낙태하려 했던 아이를 낳았고 수십 년 뒤에는 낙태 반대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위헌 판단 근거는 뭐야?

연방대법원은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기, 그러니까 임신 6개월 이상 된 시점이 되기 전까지는 임신한 여성이 어떤 이유로든 임신 상태에서 벗어나는 결정을 스스로 내릴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죠. 낙태를 처벌하는 대부분의 법률이 미 수정헌법 14조의 ‘적법절차 조항에 의한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침해로, 위헌이라고 본 겁니다. 하지만 출산 직전 3개월간은 태아가 자궁 밖에서도 생존할 가능성을 인정해 생명체로서 존중되어야 하는 만큼 낙태가 금지될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그러니까 사실상 임신 6개월까지는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낙태를 할 수 없게 한 겁니다. 이 판결로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각 주와 연방 법률들은 폐지됐습니다.

50년 가까이 유지된 이 판결이 왜 뒤집힐 수 있다는거야?

앞에서 말씀드렸듯 텍사스주법과 별도로 대법원의 본안 심리가 예정된 상황입니다. 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로는 거의 모든 낙태를 금지한 미시시피주의 법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의 심리를 진행키로 한 상태죠.

미시시피주 소송은 또 뭐야?

이번 사건은 미시시피주에 하나밖에 없는 낙태 시술소 측이 해당 법률이 위헌이라며 제기한 소송이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간 것입니다. 1심과 2심에서는 미시시피주의 낙태 제한 법률이 부당하다는 판결이 내려졌었죠. 대법원 판결은 향후 서면 공방, 공개 변론 등을 거쳐 내년 6월쯤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연방대법원의 이 심리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힐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현재 대법원의 정치성향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보수 6명 대 진보 3명으로 보수가 절대 우위입니다. 특히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전 대법관의 별세 후 공석을 채운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자녀 중 한 명이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임신중절을 선택하지 않고 출산하기도 했습니다. 낙태 반대 의사를 본인이 직접 실천한 셈이죠.

낙태와 관련된 가장 최근 판결은 뭐야?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6월 루이지애나주의 낙태권 제한 조치가 헌법에 보장된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판결 당시에는 긴즈버그 대법관이 생존해 있어 보수 5 대 진보 4의 진용이 꾸려져 있었죠. 당시 보수 성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진보 쪽의 손을 들어주면서 반대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대통령은 어떤 입장이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연일 날선 발언을 내놓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3일 백악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텍사스주의 낙태금지법은 “터무니없고 거의 비 미국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대법원 탓에 수백만 여성들이 고통받게 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죠. 대통령은 백악관 젠더정책위원회와 법무부에 법적 대응 방안 검토를 지시했습니다.

텍사스주 심장박동법이 타주에도 여파를 미칠까?

이번 텍사스주의 새 법은 미 전역에 걸쳐 낙태제한을 강화하려는 공화당의 광범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현재 최소 12개주에서 임신 초기부터 낙태를 제한하는 법안을 제정했지만 모두 법원에 가로막혀 시행되지는 못하고 있죠. 이번 대법원의 결정 취지대로라면 낙태 금지를 추진해온 다른 보수 성향 주들이 텍사스를 모방한 법을 만들 경우 시행까지 가능해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CNN방송은 대법원이 미시시피주 심리에 대해 판결을 내릴 시점에는 이미 일부 주들이 낙태를 효과적으로 금지하는 등 지형이 바뀌어 있을 수 있다며 이 경우 보수 대법관들이 굳이 기존 낙태권 판례를 뒤집을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