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권과 옷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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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가 현실로 #낙태권 폐기 #파장은

지난 주말 내내 전국이 시위로 들끓었습니다. LA는 물론이고 대도시마다 수백, 수천 명이 거리로 나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죠. 대표적인 구호가 ‘내 몸은 내가 선택(My Body, My Choice)’이었는데요. 지난 24일 연방대법원이 지난 49년간 헌법에서 보장해온 여성의 낙태권을 폐기하면서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똑개비뉴스 구독자분들 중에서는 낙태권 논란에 기시감이 든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낙태권이 오랜 논쟁거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텍사스주가 지난해 9월1일부터 일명 ‘태아 심장박동법(fetal heartbeat bill)’을 시행하면서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지는 이미 예고됐었기 때문입니다. 뉴스레터를 통해 자세히 소개해드리기도 했습니다. 이번 판결이 왜 이렇게 논란이 되고 있는지 쉽게 정리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이번 판결 내용이 뭐야?

쉽게 요약하자면, 여성이 임신 상태를 멈출 수 있도록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더 이상 보장하지 않겠는다는 것입니다. 1973년 여성의 낙태권(임신중절권)을 확립한 기념비적인 ‘로 대(對) 웨이드(Roe vs. Wade)’ 판례를 연방대법관 9명 중 5명의 찬성으로 뒤집었죠. 이전까지 주정부별 해석의 영역이었던 낙태권 문제는 이 판결로 헌법상 권리로 인정됐습니다. 이를 뒤집은 이번 판결은 반세기 동안 연방 차원에서 보장됐던 임신중절권 보호막이 없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에 따라 임신한 여성의 낙태권을 어느정도 보장하느냐는 1973년 이전에 그랬던 것 처럼 각 주의 정부와 의회가 결정하게 됐죠.

로 대 웨이드? 들어본 것 같은데

미국에서 여성의 임신중절 권리를 보장한 보루였다고 평가받는 판결입니다.  ‘로’는 당시 소송의 원고 이름인 ‘제인 로(Jane Roe)’에서, ‘웨이드’는 당시 담당 검사였던 ‘헨리 웨이드(Henry Wade)’에서 유래했습니다. 원고인 제인 로는 신원 보호를 위해 사용한 가명입니다. 원고의 실명은 노마 매코비라는 여성이죠.

그래서 어떤 사연이 있었는데?

1969년 당시 21세였던 매코비는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강간을 당해 임신했다면서 낙태수술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텍사스주는 원칙적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었죠. 경제적 상황도 어려워 타주에서 중절수술을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코비는 새라 웨딩턴과 린다 커피라는 두 여성 변호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죠. 그리고 1970년 3월 ‘낙태 금지에 관한 텍사스주 법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헌법으로 보장된 사생활에 관한 권리에 위배된다’는 취지로 소송을 냈습니다.

그래서 그때 판결은 언제, 어떻게 나왔어?

당시에도 이 논란은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맥코비는 두 변호사와 관련 시민운동가들의 지원을 받아 소송할 수 있었는데요. 3년간 이어진 법정 공방에서 제인 로와 헨리 웨이드는 각각 한 번씩의 패소끝에 항소를 했고, 대법원까지 올라간 이 소송은 결국 매코비(제인 로)측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1973년 1월 대법원은 ‘7대 2’로 여성의 낙태 권리가 미국 수정헌법 14조상 사생활 보호 권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태아가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약 임신 28주) 전까지는 여성이 어떤 이유에서든 임신 중단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판결했죠.

그때도 파장이 컸겠는데

NYT 등 이를 옹호하는 진영에선 ‘획기적(landmark)인 판결’이라고 평가했었죠. 당연히 전국적인 화제가 됐고 매코비는 ‘출산권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후 매코비는 정작 판결과 정반대의 선택을 하면서 낙태권 찬반 양쪽에서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어떤 선택을 했길래?

먼저 소송의 원인이었던 ‘원치않던 아이’를 출산합니다. 물론 소송 후 항소 등 과정이 길어졌기 때문에 중절수술을 할 수 없었죠. 우여곡절 끝에 낳은 딸은 매코비의 세 번째 아기였죠. 원고인 ‘로’를 따서 ‘로 베이비(Roe baby)’로 불렸다고 합니다. 어쨌든 딸을 키우기 어려웠던 매코비는 딸을 입양보냅니다. 딸은 셸리 린 손톤이라는 이름으로 자랐죠. 그리고 16년이 지난 1989년 매코비는 한 인터뷰에서 딸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딸이 거부하자 “낙태 안한 걸 고맙게 생각하라”며 ‘엄마’답지 않은 발언으로 비난을 받습니다. 그리고 6년뒤인 1995년 자기 부정의 길을 선택하는데요.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로 침례를 받은 뒤 그동안 근무해온 낙태지원 보건소를 그만두고 낙태 반대 비영리단체에 투신합니다. 그러다 그는 다시 낙태 지지 쪽으로 돌아서게되는데요. 2017년 사망 직전 임종의 고백이라고 부른 마지막 인터뷰에서 “돈을 받고 낙태 반대 캠페인에 가담했다”고 주장했죠. 낙태에 찬성했든 반대했든 매코비는 1973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사회 분열의 아이콘’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참 기구한 인생이네, 다시 판례 얘길해줘. 49년전엔 낙태가 된다고 했는데 다시 뒤집은 이유가 뭐야

헌법에 임신중절권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이 작성한 다수 의견문을 보면 연방대법원은 “헌법에는 낙태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그런 권리는 헌법상 어떤 조항에 의해서도 암묵적으로도 보호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1973년 로 앤 웨이드 판결 당시 임신중절권이 헌법에 언급되지 않았어도 폭넓은 헌법 권리에 해당한다고 본 해석을 기각한 것이죠.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트럼프 정부에서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잇따라 임명돼 연방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성향으로 평가되는 등 대법원이 보수화된 데 따른 것이기도 합니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브렛 캐버노 등 대법관 3명 모두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에 찬성했는데요. 보수 대법관중 이번 판례를 주도한 인물은 새뮤얼 알리토(72)입니다.

어떤 사람이야?

연방대법관 9명 중에서도 가장 보수색이 짙은 인물로 평가되는데요. 2006년 1월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 지명으로 대법관에 올랐죠. 지난달 폴리티코 보도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는 대법관 다수 의견 초안이 폭로됐는데, 이 초안을 쓴 작성자로 지목된 사람이 알리토 대법관입니다. 이 초안은 결국 연방대법원이 24일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는 결말로 그대로 이어졌죠.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낙태권 폐기에 대해 “알리토 대법관이 수십년에 걸쳐 쌓아온 체계적 전략에 정점을 찍은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어떻게 했길래?

그는 35세이던 1985년 법무부에서 일할 당시 로 대 웨이드 사건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도록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 권고했다고 합니다. 연방대법원까지 사건이 올라가면 당시 대법관의 보수와 진보 구도상 로 대 웨이드 판례가 파기될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요. 이후 30여 년에 걸쳐 알리토 대법관은 자신의 구상을 완성해 결국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자신의 손으로 끝낸 셈이 됐습니다. 그의 낙태권에 대한 ‘적대’는 비로소 다수의견서에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로 판결은 그 출발부터 터무니없이 틀렸다. 그 법적 추론은 이례적으로 약하고 해악을 끼치는 결과를 낳았다”고 적시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다 정치네. 판결 배경은 알겠어.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절반에 가까운 주에서 낙태가 사실상 금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불법 시술이나 원정 낙태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죠.

어느 주에서 금지되는 건데?

낙태권 옹호 단체 구트마허연구소에서 집계한 ‘확실한 낙태 금지 시행’ 지역은 50개 주 중 26개 주입니다. 대부분 낙태에 반대하는 공화당이 우위인 곳이죠. 26개주 중 22개주는 성격상 크게 3개 범주로 구분됩니다.
대법원 판결과 동시에 낙태 규제 시행이 가능한 ‘트리거 조항’이 적용된 13개주: 아칸소, 아이다호, 켄터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미주리, 노스다코타, 오클라호마, 사우스다코타, 테네시, 텍사스, 유타, 와이오밍
로 대 웨이드 판례로 낙태 금지법이 있었지만 시행 못했던 5개주: 앨라배마, 애리조나, 미시간, 웨스트버지니아, 위스콘신
임신 6주 또는 8주 이후 낙태 금지 규제를 둔 4개주: 조지아, 아이오와, 오하이오, 사우스캐롤라이나

판례가 나왔어도 어느 정도 시한을 두고 시행되는 거 아냐?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트리거 조항을 갖고 있는 13개주중 10개주에서 24일 판결 직후부터 임신 중절수술을 속속 중단했습니다. 앨라배마의 한 병원에서는 24일 병원을 찾아온 환자들에게 임신중절 수술을 할 수 없게 됐다고 알리자 대기실이 눈물바다가 됐다고 AP 통신이 전했습니다. 낙태권 옹호 단체인 ‘플랜드 패런트후드(Planned Parenthood)’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약 3600만명의 가임기 여성이 낙태권을 박탈당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럼 임신중절은 할 수 없게되는건가?

낙태를 허용하는 주에 가서 수술을 받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낙태가 금지된 주에서 임신한 여성이 낙태가 허용된 주로 낙태를 위해 이동하는 원정 시술이 늘어날 것이라는 뜻이죠. 텍사스주를 예로 들면 ‘원정 시술’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시술소(뉴멕시코주)까지 540마일을 이동해야 합니다. 아니면 아예 국경을 넘어 멕시코에서 시술을 하는 여성도 있겠죠. 사정상 먼 거리를 이동하기 어려운 빈곤 계층은 무허가 시술소를 찾아 뒷거리를 전전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이런 걱정이 반영된 것이 반대 시위 현장에서 목격되는 ‘옷걸이’들입니다.

옷걸이라니?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철사로 된 옷걸이인데요. 낙태가 불법인 상황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옷걸이를 자가 낙태 도구로 사용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부작용에 시달리거나 숨지는 일이 벌어지면서 옷걸이는 ‘낙태 합법화’ 운동의 상징이 됐죠. ‘낙태를 금지하면 위험한 불법시술을 조장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시사지 애틀랜틱은 옷걸이를 “다른 어떤 것도 충분하지 않을 때 절망에서 비롯된 최후의 수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번 판결에 여론 추이는 어때?

가장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10명중 6명 정도가 낙태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CBS방송이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와 함께 지난 24∼25일 성인 159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9%는 ‘대법원 판결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41%는 ‘지지한다’고 응답했습니다. 또 58%는 낙태를 합법화하는 연방 차원의 법률 제정에 찬성했고, 42%는 반대했죠. 이번 판결은 총기 규제 등 예민한 이슈들과 맞물려 국론이 쪼개지는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정치권 반응은 어때

11월 중간선거를 4개월 여 앞두고 있는 미묘한 시기에 핵폭탄급 판결이 터진 상황이라 양당 모두 분주합니다. 민주당은 대법원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들이 더 많은 여론의 우위를 토대로 중간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삼으려는 반면 공화당은 낙태 문제 대신 인플레이션 등 경제실정 이슈가 묻히지 않도록 방점을 두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민주당은 낙태를 이슈로 중간선거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으로 보입니다.

양당 전략을 전망해줘

민주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중간선거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이번 판결이 분위기 전환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제히 이 문제를 최전방의 이슈로 부각하려고 달려들고 있죠.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해야 낙태권을 보장하기 위한 연방 차원의 법률을 제정할 수 있고, 주 단위에서도 여성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는 논리인데요. 특히 민주당은 이번 판결이 교외 지역 여성 유권자의 지지를 자극할 호재로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교외는 진보 색채가 강한 도시와 보수 성향이 강한 시골 사이에 위치한 중간지대입니다. 도시에 직장을 둔 대졸, 중산층 이상 백인이 많이 모여 살며 특정 정당을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아 승부를 결정짓는 ‘스윙 보터’로 통하죠

공화당은 어때?

공화당에선 선거의 근본 구도가 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번 판결의 영향이 단기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옵니다. 공화당의 선거운동 전문가인 존 브라벤더는 워싱턴포스트(WP)에 “보편적 이슈는 경제에 대한 우려”라면서 “이것이 다른 어떤 이슈보다 선거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낙태 판결이 공화당에 일부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맹점으로 꼽히는 경제 실정을 고리로 선거전을 이어가겠다는 뜻인데요. 서맨사 블록 공화당 의회선거위원회 대변인은 “대법원의 판결은 낙태 문제를 주정부로 되돌려준 것”이라며 “유권자의 가장 큰 우려는 오르는 물가, 치솟는 범죄, 남부 국경지대의 재앙이라는 사실을 바꾸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