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만 3000켤레’ 사치의 여왕, 대통령 엄마로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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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대선 #독재자 아들 당선 #왜

9일 주류 언론들의 국제 소식 헤드라인은 세계에서 2번째로 섬이 많은 나라인 필리핀에 온통 쏠렸습니다.
9일 치러진 대선 때문인데요. 부정축재로 쫓겨난 독재자의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강력한 철권정치로 ‘폭군’으로 불리는 현 대통령의 딸이 부통령에 뽑혔습니다. 차기 정권은 ‘독재정권+철권정권’이라는 최초의 조합이 탄생했죠. 물론 두 사람이 아버지들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직 섣부른 전망입니다. 하지만 분명 국민에겐 최선의 선택은 아닐 텐데요.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는지 언론들의 해석이 분분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경험하고 계신 것처럼 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 밥상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필리핀의 선택과 그 파장을 쉽게 정리했습니다.

먼저, 누가 당선된거야?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1989년 사망)의 장남인 ‘페르디난드 봉봉 로무알데스 마르코스 주니어’(64·봉봉) 전 상원의원이 차기 17대 대통령에 사실상 당선됐습니다. 또 부통령엔 로드리고 두테르테(77) 현 대통령의 딸 사라 두테르테(43) 다바오 시장이 선출됐습니다.

몇표차이 인지 개표 결과가 궁금해

현지 ABS-CBN 방송은 9일 오후 10시32분(현지시간) 현재 봉봉 후보가 2407만표를 얻어 경쟁자인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1144만표)을 무려 1263만표차로 크게 앞선 것으로 비공식 집계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개표율이 73.9%인 상황에서 두 후보의 득표 격차가 배가 넘게 벌어진 것이어서 마르코스의 사실상 당선이 확실시됩니다. 또 사라 후보는 2천388만표를 얻어 721만표를 획득한 프란시스 팡길리난 상원의원을 3배가 넘는 차이로 앞서고 있습니다.

잠깐, 마르코스라는 이름 많이 들어봤는데?

차기 대통령인 봉봉의 아버지 마르코스는 1965년부터 1986년까지 21년간 장기집권하면서 독재자로 악명을 떨친 인물입니다. 재임 기간 일가족의 공직 나눠먹기와 부정부패, 필리핀 경제 파탄 등으로 인권 단체와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았죠. 특히 1972년부터 10년간 계엄령을 선포해 수천명의 반대파를 체포해 고문하고 살해하면서 독재자로서 악명을 떨쳤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계엄령 기간 3257명이 사법적 절차나 근거 없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시민들이 1986년 ‘피플 파워’를 일으켜 항거하자 하야한 뒤 하와이로 망명했고, 3년 뒤 사망했습니다. 한인들 중에는 마르코스 정권의 부패정도를 ‘이멜다’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실겁니다.

이멜다라니?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내인 전 영부인 이멜다 로무알데스 마르코스(92)입니다. ‘사치의 여왕’으로 불릴 정도로 부패한 정치인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필리핀 국민들이 “마르코스는 용서할 수 있어도 이멜다는 용서 못한다”고 할 정도로 그녀의 사치향락은 ‘전설적’이었다고 합니다. 마르코스와 이멜다가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을 때 대통령궁 지하에는 가로 21m. 세로 21m의 방이 발견됐는데요. 이멜다가 사치품들을 보관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발견된 사치품 목록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명품 브랜드 구두 3000켤레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백벌의 디자이너 드레스, 수백개의 명품 핸드백, 보석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고 합니다.  이멜다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데 쓰이는 돈은 모두 국가재정에서 지출됐습니다.
당시 마르코스와 이멜다 부부가 해외로 빼돌린 재산은 국가 전체 외채 규모와 맞먹는 100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국가경제가 파탄날 정도 아냐?

맞습니다. 60년대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신흥 국가였습니다. 65년 아시아개발은행(ADB)의 본부가 한국ㆍ이란ㆍ일본 등을 제치고 마닐라에 생긴 것도 이 때문이었죠. 그러나 마르코스 시기를 거치며 필리핀은 역대급 부채에 시달리며 파산 직전까지 갔고, 83년 채무 불이행(디폴트)을 피하기 위해 세계은행 등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습니다. 마르코스 시절 생긴 필리핀의 국가 빚은 2025년이 돼야 청산할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왕좌에서 쫓겨났던 이멜다는 36년만에 아들 봉봉이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보냈던 말라카냥궁(마닐라의 대통령 관저)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됐습니다.

남편은 독재자고 아내는 사치의 여왕인데. 어떻게 그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된 거야?

정치분석가들은 크게 2가지를 당선 요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먼저 앞서 말씀드렸던 사라 두테르테(43) 부통령 당선인과의 협력 덕분입니다. 사라는 원래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인물입니다. 사라의 유명세는 당연히 아버지인 현 두테르테 대통령의 후광에서 나왔죠.

잠깐 두테르테도 독재자 아냐?

마르코스를 ‘부패를 일삼은 독재자’라고 한다면 두테르테는 ‘부패ㆍ악과 싸우는 독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테르테는 필리핀에 만연한 범죄와 부패, 빈곤을 근절하기 위해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힘입어 2016년 16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취임 6개월내 모든 범죄자를 처형하겠다”는 초법적 범죄와 전쟁 공약이 당선 요인이었죠. 그는 공약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취임 후 5개월간 경찰에 사살된 마약 관련 범죄자가 2000명을 넘겼죠. 마구잡이식으로 사살된 범죄자 중에는 무고한 인물도 당연히 섞여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정식 수사에 나서면서 두테르테의 인권 탄압은 세계의 지탄을 받게됩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테르테는 여전히 필리핀 내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8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죠. 그 후광을 등에 업은 딸 사라는 사실 이번 대선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왜 부통령이 된거야?

사실 사라의 부통령 출마는 반전에 반전이 거듭된 드라마였습니다. 대선 출마가 점쳐졌던 사라는 지난해 11월 부통령 후보로 깜짝 등록하면서 반전이 시작됐습니다. 사라 시장의 발표 직후 두테르테 대통령은 자신이 이끄는 민주필리핀(PDP-Laban)당의 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딸과 부통령직을 걸고 맞붙겠다고 나선 것이죠. 두테르테 대통령은 당시 한 인터뷰에서 “딸의 부통령 출마는 전혀 몰랐던 일이다. 여권 대선 주자 중 사라의 지지율은 27%였던 반면 봉봉은 17%에 그쳤는데 그런 사라가 갑자기 부통령 후보에 등록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며 그 배후로 봉봉을 지목했습니다. 이 발언으로 봉봉과 사라가 두테르테 뒤에서 ‘권력 나눠먹기’로 야합을 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정치 분석가인 로만 카시플은 “마르코스 2세와 두테르테 2세가 뒤에서 손을 잡고 6년의 대통령 임기 가운데 각각 3년씩 집권하는 방안을 협상하고 있다. 두 독재자 가문의 권력 나눠 먹기”라고 비판했었죠. 필리핀 인권단체 카라파탄도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단히 심각한 위협”이라고 우려했던 이유입니다.

봉봉과 사라가 손을 잡았다고 해서 국민들이 뽑지 않았으면 당선되지 않았을거 아냐. 왜 국민들이 이들을 선택한거야?

시민권력에 의해 쫓겨난 전 대통령의 아들이 다시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는 배경엔 일부 유력한 가문이 국가의 정치, 행정 권력을 독점하는 필리핀의 대물림 정치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필리핀 지방 관료의 약 80%, 국회의원의 약 67%가 필리핀 내 유력 가문 출신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유권자의 과반수가 마르코스 독재를 경험하지 않은 청년층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7월 기준 필리핀의 6046만 명의 등록 유권자 가운데 3141만명이 18~40세의 젊은층이었습니다. 전체 등록 유권자의 52%가 청년표인 셈입니다. 조나단 코퍼스 하버드대 부교수는 “독재 시절에 관한 근현대사 교육을 받지 않은 필리핀의 50대 이하가 전체 유권자의 52%를 차지한다”며 “잘못된 정보가 광범위하게 퍼져 젊은 층이 과거 독재를 정확히 이해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봉봉의 지지자 다수는 30세 미만의 젊은 유권자입니다. 봉봉은 아버지 마르코스의 철권정치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가가는 전략을 취했고, 주효했다는 평가입니다. 미국의 정치 전문매체 더 디플로맷은 지난 달 30일 분석기사를 통해 “이번 필리핀 대선에서는 소셜네트워크미디어(SNS)의 선전이 또 한번 판세를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봉봉과 그의 캠프가 SNS를 통해 아버지 마르코스의 집권 시기를 “필리핀의 황금기”라는 이미지로 덧씌우고 있다고 매체는 덧붙였죠.

아무리 그래도 과거 아버지의 잘못이 그냥 없던 일로 되진 않을 텐데?

봉봉은 후보시절 ‘국가 통합’을 여러차례 강조해왔습니다.(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죠?)
그 이유는 반발하는 국민 여론 때문이겠죠. 당연히 앞으로 필리핀 역시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봉봉을 가장 반대하는 쪽은 진보 단체들입니다. 이들은 마르코스 치하의 암울한 과거 및 권력형 비리를 떠올리면서 “독재자의 아들은 출마 자격이 없다”고 주장해왔죠. 시민단체들은 봉봉의 후보자 자격 박탈 청원을 냈다가 기각되자 대법원에 소송을 내기로 한 상태입니다. 봉봉이 아버지의 전철을 따른다면 시민들이 다시 들고 일어나 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는 이유죠. 또 봉봉은 당장 취임하면 선친이 집권 당시 빼돌린 천문학적인 액수의 정부 재산을 환수하는 작업을 이행해야 합니다.

무슨 소리야? 아버지때 부정재산을 아들이 환수한다니?

마르코스 치하에서 남편이 암살된 고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86년 취임 직후 마르코스 일가의 재산 환수를 위해 대통령 직속 ‘바른정부위원회(PCGG)’를 설치했는데요. PCGG는 지금까지 마르코스 일가를 상대로 1710억 페소(약 325만 달러)를 환수했고 현재 추가로 1250억 페소(238만달러)를 되돌려받는 작업을 진행중입니다. 따라서 마르코스는 대통령에 취임하면 직속 기구인 PCGG를 통해 자신의 가문이 부정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반납하는 작업을 감독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만일 마르코스가 이번 대선 유세 과정에서 선친의 독재 행적을 미화한 것처럼 부정축재 사실을 전면 부정하거나 환수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한다면 시민들의 저항이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외교 관계 변화가 있을까?

일단 미국 입장에서는 환영하기 어려운 결과입니다. CNN과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봉봉이 현 두테르테 대통령의 외교 정책인 반미친중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봉봉은 대선 출마 후 중국과의 관계를 묻는 언론 매체의 질문에 “두 나라가 직접 대화를 하겠다”고 밝혀왔었죠. 이는 동맹인 미국과 상의하지 않고 중국과의 관계를 독자적으로 설정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또 부통령에 당선된 두테르테의 딸 사라와 러닝 메이트로 제휴를 맺었기 때문에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필리핀이 친중국 정책을 펼칠 경우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중국 해상 포위망’에 구멍이 날 수 있다고 CNN은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필리핀은 왜 필리핀이라고 불러?

16세기 스페인의 국왕이었던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딴 국호입니다. 필리핀을 처음으로 찾은 유럽인인 스페인인 루이 로페스 데 비얄로보스가 이 지역의 이름을 ‘이슬라스 펠리피나스(Islas Filipinas)’라고 불렀는데요. 필리핀의 타갈로그 말에는 F 발음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페인어 ‘Filipinas’를 ‘Pilipinas’로 받아들였고, 영어로는 ‘Philippines’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한국 언론들이 종종 필리핀의 약칭을 한문으로 ‘比(비)’로 쓰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일본이 만든 필리핀의 한자 표현인 ‘비율빈(比律賓)’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중국어로는 ‘菲律濱’으로 표시합니다.